{{{#!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나리타야 | ||||||||||
<colbgcolor=#713721><colcolor=#FFF> → | 이치카와 에비조(공석) | <colbgcolor=#713721><colcolor=#FFF> → | 이치카와 단쥬로 | ||||||||
8대 | 11대 | ||||||||||
12대 | |||||||||||
13대 | |||||||||||
오토와야 | |||||||||||
오노에 우시노스케(공석) | → | → | |||||||||
6대 | 7대 | ||||||||||
8대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코라이야 | ||||||||||
마츠모토 킨타로(공석) | <colbgcolor=#713721><colcolor=#FFF> → | <colbgcolor=#713721><colcolor=#FFF> → | <colbgcolor=#713721><colcolor=#FFF> → | ||||||||
8대 | 10대 | 2대 | }}} | ||||||||
나카무라야 | |||||||||||
나카무라 칸타로 | → | → | 나카무라 칸자부로(공석) | ||||||||
6대 | 18대 | }}}}}}}}} |
이치카와 가문의 문장 미마스(三升) |
1. 개요
이치카와 에비조(市川海老蔵、市川蝦蔵、市川ゑび蔵)는 일본 가부키 가문인 이치카와(市川) 종가에서 대를 이어 내려오는 배우의 예명 중 하나이다. 이치카와 종가의 후계자이자 당주격인 이치카와 단쥬로가 될 남성에게 주어지는 세습명으로, 본명이 아니다. 이치카와라는 성도 마찬가지로 배우로서의 예명이고, 본성은 초대부터 현재까지 호리코시(堀越)이다.이치카와 종가의 야고(屋号)[1]는 나리타야(成田屋).
나리타야의 직계(장자) 세습명 구도는 ‘이치카와 신노스케(市川新之助) - 이치카와 에비조(市川海老蔵) - 이치카와 단쥬로(市川團十郎)’다.
2022년 시점에서 마지막 계승자는 11대 이치카와 에비조였으며, 본래는 이치카와가의 전통을 따라 7대 이치카와 신노스케로 활동했다가 2004년에 에비조라는 이름을 받았다. 11대 에비조는 2022년에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을 습명하여 더 이상 에비조가 아니게 되었으므로 2022년부터 이치카와 에비조는 공석이 되었다. 11대의 장남인 호리코시 칸겐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가 이치카와 에비조를 습명받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무난히 커리어를 이어간다면 그가 12대 이치카와 에비조가 될 것이다.
2. 역대 이치카와 에비조
인물명 뒤의 연도는 생몰년이 아니고 이치카와 에비조라는 이름을 사용한 기간이다.- 초대 이치카와 에비조 (1673 - 1675): 1693년에 초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었으며, 가부키 계의 슈퍼히어로물인 아라고토(荒事)를 성립한, 가부키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 2대 이치카와 에비조 (1735 - 1758): 초대의 장남. 후에 아버지를 이어 2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었다.
- 3대 이치카와 에비조 (1772 - 1778): 2대의 수양아들. 마찬가지로 후에 3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었다.
- 4대 이치카와 에비조 (1782 - 1791): 3대의 손자이자 5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아들. 후에 6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었다.
- 5대 이치카와 에비조 (1797 - 1800, 1832 - 1859): 5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손자. 에비조를 물려받기 전 이치카와 신노스케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인물이며 잘 알려진 가부키 18번(歌舞伎十八番)을 정리했다. 1800년에서 1832년까지 7대 이치카와 단쥬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가, 당시 9세이던 아들(6대 에비조)에게 단쥬로(8대)를 물려주고 다시 5대 이치카와 에비조라는 이름을 평생 사용했다. 생전 생활이 매우 방탕했으며 자녀도 매우 많았다. 6대부터 8대까지가 모두 그의 자식들이다.
- 6대 이치카와 에비조 (1825 - 1832): 5대의 장남. 아기 때는 2대 이치카와 신노스케라는 이름을 썼으며 2세에 6대 이치카와 에비조를 물려받았다. 연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로부터 7년 만인 9세에 아버지에게 단쥬로를 물려받아 8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었다. 1854년에 아버지랑 같이 오사카에 공연하러 방문했는데, 현지 여관에서 손목을 그어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했다. 아버지와 함께 생전 생활이 매우 방탕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 7대 이치카와 에비조 (1874): 5대의 삼남. 3대 이치카와 신노스케로 활동했으며 후에는 7대 이치카와 코마조(市川髙麗藏), 초대 이치카와 신쇼(市川新升), 이치카와 하쿠엔(市川白猿)[2]으로 활동하다가 1874년에 비로소 7대 에비조를 물려받았는데…7대 이치카와 에비조로서 활동할 틈도 없이 물려받자마자 사망했다.
- 8대 이치카와 에비조 (1881 - 1886): 5대의 7남. 메이지 시대의 명인이었던 9대 이치카와 단쥬로(5대 에비조 = 7대 단쥬로의 5남)의 동생이기도 하다. 에비조를 물려받기 전에는 4대 이치카와 신노스케 등의 이름으로 활동했었다.
- 9대 이치카와 에비조 (1940 - 1962): 10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수양아들. 친아버지는 9대 단쥬로의 문하생이자 그와 함께 메이지 시대의 가부키 명인이었던 마츠모토 종가 코라이야[3]의 7대 마츠모토 코시로(松本幸四郎). 후에 11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되었다. 본명 '호리코시 하루오(堀越治雄)'.
- 10대 이치카와 에비조 (1969 - 1985): 9대의 장남. 힘있는 연기와 중후한 목소리로 유명하다. 에비조를 물려받기 전에는 6대 이치카와 신노스케로 활동했으며, 1985년 12대 이치카와 단쥬로 자리를 물려받아 2013년 2월 3일 사망할 때까지 12대 이치카와 단쥬로로 활동했다. 본명 '호리코시 나츠오(堀越夏雄)'.
- 11대 이치카와 에비조 (2004 - 2022): 10대의 장남. 현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자세한 내용은 이치카와 단쥬로 문서 참고.
[1] 가부키 배우로서 가지는 집안 이름. 가부키 배우는 본명, 예명, 야고 세 가지로 불리며 각 이름들은 서로 관계가 없다. 한 집안(야고)에서 장남(직계라인) 이외의 아들들은 출가 후 새로운 세습명 구도를 중심으로 또다른 야고를 가지는데, 쉽게 말하면 분가를 이루는 것으로 보면 된다. 야고는 다르지만 같은 문장을 쓰는 것이며, 세습명을 받은 이름의 문장과 야고의 문장 또한 따로 주어진다. 다만 같은 문장을 사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친인척 관계는 아니고, 제자 가문 출신이거나 하는 등의 경우도 있다. 그 예로 카가와 테루유키의 야고인 오모다카야는 이치카와 종가의 제자 가문이라 미마스를 문장으로 사용한다. 야고는 가부키 관객들이 해당 배우를 응원할 때 쓰는데, 실제로 가부키를 관람하러 가면 현(11대) 이치카와 에비조가 무대에 등장할 때 관객들이 앞다투어 "나리타야!"하고 연호하는 것을 감상할 수 있다.[2] 참고로 '하쿠엔'은 '사람보다 못하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정확히는 선조들에 비해 자신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겸양의 의미가 담긴 예명이다. 11대 에비조가 단쥬로를 습명하며 하쿠엔을 같이 습명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3] 가부키 명문가 막내딸로 유명한 유명 여배우 마츠 다카코의 가문이 바로 이 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