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1-05 14:40:25

이태원(소설가)

{{{#white 이태원
李台元
}}}
파일:소설가 이태원.jpg
출생 1942년 4월 26일[1]
경상북도 칠곡군 칠곡면 읍내동 교동마을
(현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
사망 2008년 4월 13일[2]
본관 경주 이씨
학력 대구칠곡초등학교 (졸업 / 42회)
경북중학교 (졸업 / 42회)
경북고등학교 (졸업 / 42회)
경력 동아일보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공모 당선, 중앙문단 데뷔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국제 PEN클럽 협회 회원
소설가 협회 회원
민족문화 작가회의 회원
작품 - 「객사」, 「개국」, 「낙동강」, 「우리들의 봄 춘자, 「우리들의 죽음」, 「초야」, 「꿈꾸는 버러지들」, 「향가」, 「가로등」, 「0의 행진」, 「유아무야」, 「단양 아리랑」, 「밤길」, 「졸고 있는 말」, 「사명」, 「하늘이여 땅이여」 등 30여 편의 작품
- 장편 : 「객사」, 「개국」, 「낙동강」, 「0의 행진」, 「초야」, 「꿈꾸는 버러지들」, 「가로등」
- 중편 : 「유야무야」, 「우리들의 봄 춘자」, 「단양 아리랑」
- 단편 : 「밤길」, 「졸고 있는 말」, 「돌을 던져라」, 「사명」, 「하늘이여 땅이여」
- 인터넷 연재소설 : 「우리들의 죽음」, 「향가」 등 20여 편
- 신문연재 : 「개국」(1978년, 대구매일신문), 「낙동강」(1980년, 대구매일신문),
「객사」(2013년 1월 8일~ 2015년 8월 14일, 대구팔공신문),
「낙동강」(2015년 8월 18일 ~ 연재 중, 대구팔공신문)

1. 개요2. 생애3. 기타4. 작품목록

[clearfix]

1. 개요

역사의 물줄기에 인간의 발을 담그는 작가.
송파문학 2008년 13호 中 소설가 오은주

대한민국소설가.

2. 생애

일제강점기 말이던 1942년 4월 26일 경상북도 칠곡군 칠곡면 읍내동 교동(校洞) 부락(현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 교동마을)에서 태어난 이태원은 1955년에 칠곡초등학교를 42회로 졸업하고, 1961년에 경북중·고등학교를 42회로 졸업하였다.

글재주가 뛰어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지방문학지에 응모한 단편소설이 당선돼 소설가로서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장돌림이나 잡역부의 생활을 하며 서민들의 밑바닥 삶을 직접 체험하면서차근차근 문학적인 기틀을 잡아가게 되었다.

1960년 4.19 혁명 때 가산을 모두 날리고 살기 위해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집안의 맏아들로서 생계 활동을 하였다.

그는 생계활동을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장돌림이나 잡역부의 생활을 하며 서민들의 밑바닥 삶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며 여가시간에는 문학창작활동을 이어나갔다.

1970년, 동아일보 창간 50주년 기념 공모전에 장편소설 ‘객사(客舍)’를 응모하여 당선됨으로써 중앙문단에 등단하게 되었다. 1975년을 기점으로 인권탄압 시대에 작가들이 항거하면서 만든 자유실천문인협회에 가입해 고은, 이호철, 이문구, 박태준, 황석영 등과 함께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하였다. 노동 작가에서 역사작가로 변신한 그는 1978년 대하소설 ‘개국(開國)’을 대구매일신문에 연재했고, 1980년대에는 대하소설 ‘낙동강’을 대구매일신문에 연재하는 등 목숨보다 더 아끼던 수십 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후 2008년 3월 8일 67세로 삶을 마감하였다.[3]

3. 기타

4. 작품목록



[1] 음력 3월 12일.[2] 음력 3월 8일[3] 글 : 서정호(徐正호) <문인, 칠곡초교 40회>[4] 당해 28세[5] 동아일보 1970년 12월 28일자 석간 5면 문화지에 당선관련 신문기사가 실렸다.[6] 고은, 이호철, 이문구, 박태순, 황석영 등 한국문단의 기라성 같은 소설가와 함께 활동했다.[7] 현 KBS-2TV[8] 국립극단 제 90회 공연[9] 문단 사상 초유로 국립극단과 세 TV 방송국에서 특집극으로 방영된 유일한 초대형 작품[10] 1979년 3월 15일 ~ 16일 오후 7:30분 대구시민회관에서 국립극단 공연[11] 송파문학 인터뷰 中 소설가 이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