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정보는 해산 당시를 기준으로 함 | ||
[ruby(日本進保黨, ruby=にほんしんぽとう)] | 일본진보당 | ||
영어 명칭 | Japan Progressive Party | |
창당일 | 1945년 11월 16일 | |
해산일 | 1947년 3월 31일 | |
전신 | 대정익찬회(실질적) | |
후신 | 일본민주당 | |
이념 | 보수주의 반공주의 초기 국체 수호 제국헌법 수호 통제경제 유지 후기 의회민주주의 보수자유주의 | |
총재 |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郎) | |
부총재 | 이시구로 타케시게(石黒武重) | |
의 석 수 | 중의원 | 94석 / 468석 (18.67%) |
1. 개요
1945년 11월 결성된 일본진보당은 전직 대정익찬회 출신 관료나 사업가, 정치인들이 모여 결성한 정당이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입헌민정당 출신이 가장 많다고 서술했는데, 실제로는 입헌정우회 출신의 혁신파(친군파)와 중립파(통일파) 인사들도 많이 참가해서, 당 간부 중에 입헌민정당 출신이 많기는 하지만 수적으로 민정당 출신이 가장 많다고 보기는 힘들다. 전후 주요 정당들 중 가장 오른쪽에 있어서, 전시 통제경제와 제국헌법, 국체를 적극 수호하려는 정당이었다. 동시에 GHQ의 전범용의자 공직추방령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정당이기도 하다. 당 창립 당시 소속 의원이 총 273명이었는데 이중 무려 259명이 공직추방을 당했다.다만 모든 당 간부들이 전범 출신은 아니라, 대정익찬회 출신이 아님에도 초대 당 총재이며 입헌민정당의 마지막 총재였던 마치다 추지와의 인연으로 당에 가입한 가와사키 카츠[1]나 사이토 타카오[2] 같은 경우도 있었다.
공직추방령으로 당 간부와 의원 대부분이 추방당한 이후로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극우에서 벗어나 급격한 온건화[3]를 추진하기 시작했고, 젊은 인사들을 대거 영입해 이미지 쇄신을 노리게 되었다. 그 결과 1946년 선거 직전에는 당 간부 대부분을 대정익찬회와 무관한 인사로 채우는 데 성공했고, 선거 결과 94석을 얻으며 제2당이 되었다. 실질적으로 창당 시와 해산 시의 인적 구성이 매우 불연속적이라 다른 당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1947년 일본민주당으로 통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