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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외교관 출신 탈북자. 주 이집트 대사를 지내던 중인 1997년 8월, 미국으로 망명했다.2. 생애
1948년 2월 1일생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종합대학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모로코에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왔으며 1976년 외교부에 입부, 1982년 외교부 부국장, 1988년 중동담당 5국장을 거쳐 1992년 9월, 중동 담당 외교부 부부장을 지냈다. 1994년 7월 1일, 김영섭의 뒤를 이어 주 이집트 북한 대사로 임명되었다. 그의 아내는 꽃 파는 처녀에서 꽃분이 역을 맡아 인민배우 칭호 및 국기훈장 1급을 받은 적도 있는 배우 최해옥이었다.그의 이집트 부임은 시작부터 영 꼬였는데 7월 12일로 예정되었던 신임장 봉정이 김일성 상중이라는 이유로 무바라크에게 거절되었고, 부임하고 몇달이나 지나서 정식으로 대사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 틈을 타서 한국은 북한에 대한 불리한 정보를 이집트에 전달하는 한편, 이집트 정보부 장관 술레이만을 한국에 초청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외교 로비를 벌여서 1995년에 수교를 하는데 성공했다.
그런가 하면 1996년, 평소에 북한 체제에 대한 불온한 발언을 일삼던 장승길의 차남 장철민이 탈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1] 장철민은 당시 카이로에서 학비가 싼 영국 영사관 소속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필리핀인 애인이 생겼다. 외교관 아들이 외국여자와 연애를 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걸 본 장승길은 장철민을 방에 가두었는데 이에 장철민의 불만이 폭발하여 한국 대사관에 망명 의사를 타진하였다. 이에 당시 주 이집트 한국대사인 임성준은 부모님 속 썩이지 말라고 훈계했지만 장철민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한국 망명을 시켰다간 한국의 납치라고 북한이 난리칠 것을 우려한 한국은 미국 대사관을 통해서 장철민을 캐나다로 망명시켰다. 어쨌거나 장승길 대사는 중국 대사관에서 만난 임성준 대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고 한다.
이후 장승길은 본국으로 소환당했지만 용서를 받았는지 다시 임지로 부임, 1997년 2월 29일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이집트 해운항만부 차관과 함께 해운협력협정을 체결하고 8월 19일, 이집트 기획국제협력장관과 투자장려 및 보호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는 등 공개활동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장승길은 부인 최해옥, 파리 대표부 경제참사관인 형 장승호 등과 함께 1997년 8월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들의 실종에 외교가가 발칵 뒤집혔고 8월 26일, 미국 국무부 대변인 제임스 루빈이 종전까지 모른다고 하던 입장을 번복하고 미국이 이들의 망명을 받아들였음을 인정했다.
8월 27일, 북한 외무성은 성명을 발표하여 이들은 이미 7월 말에 국가자금 횡령, 부패타락 및 기밀 누설죄로 철직 및 소환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면서 이들의 망명을 두고 범죄자들의 비열한 도주라고 비난, 미국 측에 이들의 신병을 인도할 것을 요구하였고 8월 27일로 예정된 3차 북미 미사일 회담 및 4차 예비회담 불참을 시사하였다. 9월 2일, 북한은 다시 성명을 발표해 장승길 형제는 CIA공작으로 망명한 것이며 다시금 신병인도를 요구했다.
그가 망명한 계기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말이 무성하며, 2015년 중앙일보 기사에서 미국 모처에서 미국 측의 보호를 받으며 슈퍼마켓을 차렸다는 것 외에는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3. 참고문헌
- 정태익, 외교사연구센터 오럴히스토리 총서 15권: 한국 외교와 외교관 -이집트 수교와 대러 외교-(서울: 국립외교원, 2018).
[1] 북한은 외교관 자녀가 2명 이상이면 보통 1명은 평양에 볼모로 남기는데, 장남은 볼모로 평양에 남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