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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11 17:30:31

장재언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종교인, 정치인.

2. 생애

1942년 함경북도에서 출생,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활동 초기에는 장재철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세례명은 어디에서 받았는진 모르겠지만 사무엘이다.

1989년 1월,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장으로 등장, 조선종교인협회 부회장을 겸하였으며, 1989년 11월, 최덕신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0년 3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범민련 북측본부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1992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 3차 회의에서 외교위원회 위원에 보선되었다. 1993년 1월, 리계백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4년 7월, 조선종교인협회 회장으로 승진했다.

1996년 9월, 려연구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1998년 6월,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 1998년 12월에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 임명이 확인되었다. # 1999년 6월, 천주교인협회가 조선카톨력교협회로 개편되면서 조카협 초대 중앙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99년 7월 김병식 장의위원을 지냈다. 이 시점부터 장재언의 이름으로 활동했다. 남북 데탕트 시기 태풍 매미,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조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남 협박도 서슴지 않아 2000년 이산가족 상봉 이후 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의 생활수준이 차이난다고 발언하자 갖은 협박과 저주를 퍼부으며 이산가족 상봉 취소를 시사했고, 방한 시에는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장에 있지도 않던 장충식 총재를 겨냥하여 "죄에 죽고 올바르게 재생해야 한다"라고 저주하였다.
문: 장충식 한적총재가 현재 서울에 없는데.
▲1차 때 저는 평양에서 직접 따뜻이 맞이했다. 그런데 서울에 와보니 장총재가 없다. 왜 그런지는 장 총재 자신이 잘알 것이다. 죄에 죽고 올바르게 재생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평양상봉과 공동선언으로 통일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때에 통일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상대를 자극하는 언행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민족의 분열에 대해 민족의 성원이라면 조국애로 지향해 나가야 한다. 장총재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장 총재는 제가 오기 임박해 다른 나라로 갔다. 그 몰골이야말로 가련하다. 죄에 죽고 올바르게 재생하기 바란다.
문: 장 총재 발언도 적절치 못하지만 북측의 계속적인 문제제기도 적절치 못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우리는 올바르다. 민족의 염원에 도전하는 것은 민족 성원으로 할일이 아니다. 장 총재가 밖으로 나간 이유를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

2002년 3월 27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다른 종교인들과 함께 김일성 탄생 90주년 김일성훈장을 받았으며 2003년 8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2003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북한 건국 55주년을 기념하여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2004년 12월, 6.15공동선언실천 북측 분비위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09년 3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2013년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 이후 이를 축하하는 전문을 보냈다.

2014년 3월,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나 2015년 10월, 뇌출혈로 인해 쓰러지고 강지영에게 직무를 물려주고 은퇴했다. #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