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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6-08-24 07:26:35

전남국

전남국
全南國
멸망
국기 국장
1980년 5월 22일 ~ 1980년 5월 26일
위치 광주광역시
수도 광주
정치체제 공산주의
국가원수 슨상님
언어 서남 방언
민족 전라디언
종교 슨상교, 주체사상
주요사건 1980년 5월 21일 건국
계엄군의 진압으로 1980년 5월 26일 멸망
통화
성립 이전 전라남도
멸망 이후 전라남도


서울대비상학생총회가 "미친개 같은 유신잔당의 손에 우리 형제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남의 일처럼 지켜보고만 있겠습니까?"를 끼워넣어 전국에 뿌린 날은 5월 22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광주에는 군인은커녕 그림자조차 없었다. 5월 20일의 시위 구호는 "전남국을 세우자"였다. 5월 21일 시민군이 기관총 등을 발사하자 계엄군은 모두 광주 외곽으로 철수하였으며, 5월 21일 오후 광주에 해방구가 설치된 이래 광주경찰서는 시민군 명령을 받게 되었다. 군인이 있기는커녕 경찰조차 시민군 지배를 받고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 광주주재기자였던 김영택 기자는 당연히 광주시민군 옹호 기사를 쓰는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그 상황을 "광주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자, 서울대비상학생총회 사기꾼들에게 속은 전국 국민 머리 속에 새겨진 5월 22일~26일의 광주상황은 공수부대가 광주시민들을 죽이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5월 22일 촬영된 위 사진에서 실제 장면은 얼마나 다른가. 그 안에 있었던 김영택 기자가 본 5월 22일~26일의 "광주공화국" 상황은 그가 복면부대라고 부르는 5.18무장단체로부터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었던바, 그는 그 사실을 이렇게 서술한다:

<독자들은 광주사태 당시 복면을 한 이른바 [시민군]들이, 탈취한 차량을 타고 시내를 질주하는 광경을 텔레비젼 화면이나 신문의 사진에서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 [복면부대]는 18일과 19일의 시위, 특히 21일 시위대가 계엄군의 정면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만 해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이 등장한 것은 계엄군이 철수하고 도청이 학생들의 수중에 들어가 이른바 [광주공화국]시대가 열리면서부터였다.
이들은 누구였을까? 이들이 과연 [민주화]를 외치는 순수한 시위대원들이었을까. 이것이 기자가 갖는 네 번째 의문이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4208.html 에서 작은 제목 <[복면부대]의 정체> 이하 세 단락.)

"광주공화국" 기간 동안에 죽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5.18무장단체의 과실로 발생한 윤화사고로 인한 사망자들 수가 많았다. "광주공화국" 상황의 한 목격자는 그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

『앰뷸런스 소리, 소방차 소리, 불타오르는 건물, 피어오르는 듯한 예광탄 , 클랙션 소리,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를 하듯 쏘아 대는 총소리 등등으로 휩싸인 도시를 보았다. 그때 광주 시내에는 계엄군이 한 명도 없었다. 누가 누구에게 쏘는 총성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나중에 사망자를 부검 해보니 군에선 쓰지 않았던 카빈 총상으로 죽은 이들이 많았다. 광주 탈환 뒤 회수된 아세아 자동차의 트럭을 중엔 뒤집어 지고 부딪친 것이 무척 많았다. 이런 교통사고에 의해 숨진 사람들도 많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