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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6 10:00:11

정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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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현대알루미늄 회장
정몽우
鄭夢禹 | Chung Mong-woo
출생 1945년 2월 24일[1]
경기도 경성부 돈암정
(現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2]
사망 1990년 4월 24일 (향년 45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남서울호텔 (현 르 메르디앙 호텔)
본관 하동 정씨 (河東 鄭氏)[3]
직업 기업인
학력 배재중학교 (졸업)
오산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문과대학 (영문학 / 학사)
부모 아버지 정주영, 어머니 변중석
형제자매 정몽필, 정몽구, 정몽근
누나 정경희
남동생 정몽헌, 정몽준, 정몽윤, 정몽일
여동생 정정인, 정정임
배우자 이행자(1945년생)
자녀 장남 정일선[4]
차남 정문선(1974년생)
삼남 정대선(1977년생)[5]

1. 개요2. 생애
2.1. 사망
3. 약력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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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

2. 생애

1945년 2월 24일,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에서 태어났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과 변중석의 4남이다.[6]

정몽우는 고교 시절에 또래 친구들과 패싸움 도중에 머리를 크게 다치고 난 후 잠깐 우울증을 앓았었는데, 일상생활이 아주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는지 중앙대학교에도 들어가고 연애 결혼으로 숙명여대 퀸카 출신인 이행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큰아들 정일선이 4살이 되던 해인 1974년부터 후유증이 재발한 것인지 뭔지 이때부터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튼 정신질환으로 작은 일도 못 맡자 아버지 정주영은 그런 정몽우를 굉장히 못마땅해 했으며 정몽우는 수많은 자신의 형제들이 너무 유능해서였는지 반대급부로 자신이 무능한 것에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고 한다.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내 자식이라도 자리를 내 줄 수 없다고 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이었지만 그래도 아들내미라고 신경이 쓰이긴 쓰였는지 큰형이자 정주영의 장남인 정몽필이 1982년 교통사고로 죽자 그나마 정몽우에게 내준 게 고려산업개발 사장 자리다. 이후 1987년, 현대건설에서 알루미늄사업부가 분리된 이후부터 현대알루미늄 회장도 맡았으나 직함만 회장이었을 뿐 실제로 경영은 손윗처남인 부회장 이진호가 맡았고,[7] 본인은 경영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8] 게다가 고려산업개발과 현대알루미늄 모두 비상장사로 바지사장/바지회장에 불과한 상태였다.[9] 그런 상태에서 정신질환은 더욱 악화되었고 집 안 모임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고 제사때 간혹 가족들과 어울렸으며 부인과 세 아들만 보내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1990년 4월 24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남서울워싱턴호텔(현 르 메르디앙 호텔)에서 음독 자살하였다.

정몽우 회장 사후인 1991년, 고려산업개발 회장이던 양봉웅의 청부 폭력 사건을 사주했다는 의혹이 덧붙여졌다. 1987년 당시 양봉웅 회장을 린치한 범인들이, 당시 양봉웅 회장과 사이가 나쁘던 정몽우 당시 사장의 사주였다고 진술했기 때문. 그러나, 이미 사주를 했다는 의혹이 있는 정몽우 회장이 사망해서 공소권이 없어 미제사건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정몽우가 사망하면서 그의 둘째 형인 정몽구가 사실상 아버지 역할을 하면서 남겨진 조카들을 공부시키면서 챙겼다. 특히 정몽구는 정몽우의 장남인 정일선을 아낀다고 하는데 정일선이 자신의 아들인 정의선과 동갑에 고려대 동문이며 둘 다 1999년에 현대차 그룹에 입사(정의선은 현대자동차, 정일선은 기아차), 2003년에 부사장(정의선은 현대모비스, 정일선은 현대비앤지스틸), 2005년에 사장(정의선기아차, 정일선은 현대비앤지스틸)을 맡은 것을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세 조카 모두에게 현대비앤지스틸의 지분을 나눠줬으며 지금도 장남 정일선이 사장, 차남 정문선은 부사장을 맡고 있다. 삼남 정대선은 현대비앤지스틸에 입사하긴 했으나 나중에 HN을 창립하면서 별도로 독립하였다.

2.1. 사망

정몽우는 미국 유학을 갔다 오고 난 뒤부터 우울증으로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 4월 23일 오전 정몽우는 잠깐 밖에 바람 좀 쐬러 간다 하고 외출증을 끊어 병원을 나왔다고 한다. 밖으로 나와서 정몽우는 차를 몰고 처남 이진호를 만나러 갔다고 한다. 처남과 만나서 테니스를 2시간 정도 치고 정몽우는 서울 강남 역삼에 있는 한 호텔에 가서 호텔 직원에게 오늘 하루 투숙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현금 20만 원을 맡기고 키를 받고 객실로 올라가 거기서 옷을 갈아입고 1층에 있는 호식당으로 내려와 혼자서 횟거리와 몇 병의 소주를 마셨다고 한다. 정몽우가 소주 몇 병을 먹어 치우는 것을 본 한 요리사가 정몽우에게 너무 폭음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니 정몽우는 “기분 좋을 때도 한 잔 마시고 괴로울 때도 한 잔 마시는 거 아니냐.”라고 매우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식사를 다 마친 정몽우는 검은 봉지를 들고 객실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다음 날, 아침 한 여직원이 정몽우가 투숙해있는 객실를 청소하기 위해 문을 두들기는데 인기척이 없어 문을 따고 들어가니까 정몽우가 쥐약을 입에 문 채 응접의자에 정자세로 앉아 숨져 있었다고 한다. 여직원은 비명을 지르면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하여 수사를 했는데 타살 흔적이 없어 자살로 종결지었다. 또 정몽우 지인은 자신이 평소에 아버지 정주영을 적극적으로 돕지 못하는 것을 자책하고 있던데 다가 평소에 애착이 있던 현대중공업의 노사분규 부담까지 갖게 되어 정신적으로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몽우가 사망한 지 13년 뒤인 2003년 바로 아랫 동생인 정몽헌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3. 약력

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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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945년 1월 12일[2] 광복 직전이었기에 돈암"정"이었다. 두 큰형들은 아버지의 고향인 강원도 통천군, 작은형과 본인, 큰동생 정몽헌은 서울, 동생 정몽준은 피난중 태어난지라 부산, 막내 남동생들은 다시 서울 출신으로 형제들끼리 출생지가 다른 것이 이런 복잡한 근현대사 때문이다.[3] 지예부사공파(知禮部事公派) 25세손 상(相)○, ○채(采), ○문(文), ○림(林) 항렬이나 이를 따르지 않고 범현대가만의 돌림자를 사용하였다.[4]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수행기사 갑질, 폭언, 폭행 # #[5] 2006년, 전 KBS 아나운서 노현정과 결혼[6] 정의선, 정지선, 정교선에게는 작은아버지이고 정기선,정영선,정예선에게는 큰아버지이다. 정대선과 결혼한 전 KBS 아나운서 노현정에게는 시아버지가 된다.[7] 이진호는 FBI 근무중 정주영 회장의 요청으로 현대그룹에 영입됐다.[8] 실제로도 회장 취임 후부터 사망 전까지 2년 반 동안 울산 공장에 내려간 적이 없었다고 하며 생전에 현대알루미늄 서울사무소가 있던 광화문 현대해상 사옥에도 회장실이 없었다.[9] 당장 다른 형제들과 비교하면 상황이 안 좋았는데, 정주영 회장의 차남 정몽구는 현대산업개발, 현대정공 등을 이끌고 있었고, 3남 정몽근은 현대백화점, 5남 정몽헌은 현대상선과 현대전자, 6남 정몽준은 현대중공업의 승계가 확정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다른 형제들(몽구, 몽근, 몽헌, 몽준)이 1988년을 전~후로 주요 계열사 회장 직에 오른 것과 달리 정몽우는 비주력 계열사의 회장과 사장을 겸임하고 있어 입지가 상당히 좁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