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국군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ce5b6,#49421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81818,#e5e5e5 | <colcolor=#373a3c> 초대 환공 | 제2대 무공 | 제3대 장공 | 제4대 소공 |
제5대 여공 | 제6대 소공 | 제7대 미 | 제8대 영 | |
제9대 여공 | 제10대 문공 | 제11대 목공 | 제12대 영공 | |
제13대 양공 | 제14대 도공 | 제15대 성공 | 제16대 수 | |
제17대 희공 | 제18대 성공 | 제19대 희공 | 제20대 간공 | |
제21대 정공 | 제22대 헌공 | 제23대 성공 | 제24대 애공 | |
제25대 공공 | 제26대 유공 | 제27대 수공 | 제28대 강공 | |
삼황오제 · 하 · 상 · 주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진(秦) · 한 삼국시대 · 진(晉) · 오호십육국 · 북조 · 남조 · 수 · 당 오대십국 · 송 · 서하 · 요 · 금 · 원 · 명 · 청 중화민국 국가원수 · 중화민국 총통 · 중화인민공화국 | }}}}}}}}}}}}}}} |
정(鄭)나라 2대 국군 무공 武公 | |||
성 | 희(姬) | ||
씨 | 정(鄭) | ||
휘 | 굴돌(屈突) | ||
아버지 | 정환공(鄭桓公) 희우(姬友)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744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770년 ~ 기원전 744년 |
[clearfix]
1. 개요
정나라의 2대 군주. 정환공의 아들. 정장공의 아버지. 정환공이 견융족과 싸우다가 죽자 그 뒤를 이었다.2. 재위 기간
정무공 원년(기원전 770년), 정무공은 유왕의 태자 평왕을 도와 낙읍으로 천도하는 것을 도왔다.[1] 그리하여 동주가 시작되었고, 그 공로로 경사 자리를 이었다. 정무공은 영토 확장을 하기 위해 동괵(東虢)과 회나라를 멸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주위의 인, 단, 신, 여, 폐, 보, 의, 도 등 8개 읍을 병탄하고자 했다.정무공 2년(기원전 769년), 정무공은 회나라를 멸하고 거기에 읍을 설치했다.
정무공 4년(기원전 767년), 정무공은 동괵을 멸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차지하고자 하는 8개 읍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원래 도읍이었던 정(鄭)은[2] 견융족 때문에 쑥대밭이 되어 수도를 회나라의 수도로 옮겼고, 그곳을 신정(新鄭)이라고 칭했다.[3] 그는 상나라의 유민들을 노비 신분에서 해방시켰다. 신정은 교통과 물산이 발달하여, 이를 바탕으로 정나라의 국력은 강해지기 시작했다.
정무공 10년(기원전 761년), 정무공은 신(申)나라의 군주의 딸 무강을 아내로 맞았다.
정무공 14년(기원전 757년), 무강에게서 훗날 정장공이 될 희오생을 낳고,
정무공 17년(기원전 754년), 공숙단을 낳았다. 훗날 그 둘은 서로 싸우게 된다.[4]
정무공 27년(기원전 744년), 정무공이 병이 무거워지자 무강은 공숙단을 사랑하여, 그를 태자로 삼으려 했으나 정무공이 거절했다. 같은 해 정무공이 죽고 태자인 희오생(姬寤生)이 그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정장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