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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실이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출연연에 대한 내용은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문서 참고하십시오.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정부출연연구기관 (24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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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설기관 |
1. 개요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이란 정부가 출연하고 연구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기관을 말한다. 제3조(연구기관의 설립 제한) 이 법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연구기관"이라 한다)을 설립하지 못한다. 다만, 과학기술 분야 연구기관의 설립에 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 제4조(법인격) 이 법에 따라 설립되는 연구기관 및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하 "연구회"라 한다)는 법인으로 한다. 제8조(연구기관의 설립) ① 이 법에 따라 설립되는 연구기관은 별표와 같다. 제30조(동일 명칭의 사용 금지) ① 이 법에 따른 연구기관이 아닌 자는 이 법에 따라 설립된 연구기관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1] 제32조(준용규정) 연구기관 및 연구회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이 경우 「민법」의 규정 중 "주무관청"은 "국무총리"로 본다. |
정부출연연구기관이란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ㆍ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특수법인으로서 설립된 연구기관들 및 그 부설연구기관들을 말한다. 부설연구기관들을 포함하여 모두 국무총리(국무조정실) 산하 공공기관(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이다. 한편,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설립근거에 관해서는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라는 별도의 법률이 제정되어 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라는 특정 부처가 단독으로 관할하는 데 비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인문사회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은 특정 부처가 아닌 그보다 상위 기관인 국무총리(국무조정실)가 관할한다. 당연히 인문사회분야 출연연들은 조세재정, 경제산업, 교육, 국토개발, 과학기술 및 정보통신(정책, 예산, 제도), 노동, 법제사법, 보건, 환경, 일반행정, 여성 등 여러가지 분야가 있다보니 특정 부처 하나가 총괄 관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이유로 김대중 정부 당시 국가 연구기관들을 국무총리가 총괄하는 3개 연구회로 나눠서 관리하는 체제를 만들었던 것인데, 이명박 정부 시절 작은 정부를 추구한답시고 연구회 중 1개를 킬하는 바람에 편제가 엉망진창이 되고[2] 또한 이 당시 연구기관들을 아예 가칭 '국가연구개발원'이라는 1개의 기관으로 통합시키려 했었기에 이 당시 근무했던 사람들에겐 '거버넌스 개편'이란 말이 익숙하며 치를 떤다. 이 혼란이 박근혜 정부에 가서야 수습되면서 현재처럼 경제인문 - 국무총리실. 과학기술 - 과기정통부로 정리된 것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좀 더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2. 해당 단체
- 한국개발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3] 1971년 한국개발연구원법에 근거하여 경제기획원 산하 특수법인 한국개발연구원이 출범했다. 1981년(8월 6일 ~ 10월 15일)에는 한국개발연구원장이 국제경제연구원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1999년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소관으로 바뀌었고 200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이 되었다. 원장과 부원장 아래 연구본부 등을 두고 있다. 1982년 미국 워싱턴에 한국경제센터(KEI)를 개소했다. 1997년부터 1998년 사이 금융개혁위원회 사무국이 설치·운영되기도 했다.
- 국제정책대학원대학교 - 세종시에 있다.[4] 1995년 한국개발연구원법 개정으로 국제대학원대학 설립 근거를 만들었고 1998년 3월 한국개발연구원 부설 국제대학원대학이 개교했다. 1999년 11월 국제대학원대학을 국제정책대학원대학교로 바꾸었다.
-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 - 2000년 1월 한국개발연구원 내 공공투자관리센터가 설치되었다가 2005년 1월 민간투자지원센터를 흡수하여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의한 법정 부설기관이 되었다.
- 국제개발협력센터(CID) - 2009년 9월 국제개발협력센터가 설치되었다.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5] 1991년 한국조세연구원법이 신설되고, 1992년 재무부 산하 한국조세연구원이 출범했으며 1999년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소관 한국조세연구원, 200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한국조세연구원으로 거쳐 2013년 7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으로 바뀌었다. 원장과 부원장 아래 연구기획실 등 여러 부서를 두고 있다.
- 재정성과평가센터 - 2007년 3월 성과관리센터로 출발하여 2014년 1월 재정성과평가센터로 바뀌었다.
- 공공기관연구센터 - 2009년 9월 공공기관정책연구센터로 출발하여 2014년 공공기관연구센터로 바뀌었다.
- 국가회계재정통계센터 - 2010년 7월 국가회계기준센터로 출발하여 2014년 1월 국가회계재정통계센터로 바뀌었다.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 1989년 8월 경제기획원 인가 재단법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으로 출범하여 1989년 12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법에 근거하여 경제기획원 산하 특수법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으로 재탄생했다. 1999년 1월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소관을 거쳐 200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으로 바뀌었다. 2002년 3월 DDA[6]종합연구센터 사무국을 설치했으며, 2005년 12월 SNU-KIEP EU센터(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학연구소)[7]를, 2014년 5월 KU-KIEP-SBS EU센터(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8]를 각각 설립하기도 했다. 2004년 12월 국제행사의 유치 · 개최 등에 관한 규정에 근거하여 국제행사 전문연구기관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2018년 1월 기준 비정규직이 없는 기관이 되었다.
- 세계지역연구센터 - 1992년 1월 사단법인 국제민간경제협의회를 해산·흡수하여 부설 북방지역센터를 신설했다. 북방지역센터는 1992년 10월 지역정보센터로 변경되었다가 1997년 10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본원으로 통합되었다. 2000년 4월 다시 세계지역연구센터로 재설치되었고 2011년 3월 신흥지역연구센터로 확대되었으며 2018년 4월 세계지역연구센터로 환원되었다.
- 한미경제연구소(KEI) - 미국 워싱턴에 있다. 1990년 1월 미국 한미경제연구소(KEI) 감독업무가 한국개발연구원에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으로 이관되었다. 소장은 주로 주한외교공관에 근무했던 외교관 출신 등 미국인이 맡는 듯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예산을 지원하던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SAIS) 부설 한미연구소(USKI)[9]와는 다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SAIS) 부설 한미연구소(USKI)는 한국에서 2018년 6월부터 지원을 중단키로 결정하자 2018년 5월 해체되었다.
- 북경사무소 - 1995년 3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북경사무소를 신설했다.
- APEC연구컨소시엄 사무국 - 1990년 1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사무국을 이관받았다가 1991년 사단법인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을 설립하여 기구를 독립시켰다가 2011년 3월 사단법인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 해산·흡수하여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업무가 APEC연구컨소시엄 사무국에 통합되었다.
- 통일연구원 - 서울 서초구에 있다.[10] 1990년 8월 민족통일연구원법 제정으로 1991년 국토통일원 산하 특수법인 민족통일연구원으로 출범했다. 1999년 통일연구원으로 바뀌었다. 원장과 부원장 아래 기획조정실, 통일정책연구실, 북한연구실, 평화연구실, 인도협력연구실, 경영지원실 등을 두고 있다. 통일연구원장 역임한 후엔 은근히 통일부 장관 물망에 오르곤 한다.
- 통일정책연구협의회 - 서울 서초구 통일연구원 내에 있다. 1998년 12월 통일 관련 연구기관들의 협조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 직원들이 통일정책연구협의회 사무처장과 간사를 겸임하고 있으며 참여기관으로 통일연구원을 비롯하여 치안정책연구소,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경기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국립국어원, 국토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북한연구소, 산업연구원, 세종연구소, 에너지경제연구원, 육아정책연구소,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제주평화연구원, 평화문제연구소, 한국개발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교통연구원, 한국국방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법제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산업은행,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한국지방행정연구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행정연구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국환경연구원 등이 있다.
-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 서울 서초구에 있다. 1988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법에 근거하여 법무부 산하 특수법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출범했다. 1999년 국무조정실 인문사회연구회 소관을 거쳐 경제·인문사회연구원 소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으로 바뀌었다. 원장 아래 형사법제연구실, 범죄조사연구실, 부패·경제범죄연구실, 범죄예방·처우연구실, 법무·사법개혁연구실, 기획조정실, 경영지원실 등을 둔다. 주로 검사 출신 파견이 많지만 판사, 경찰, 교도관도 파견을 오는 경우가 있다. 경찰청 쪽에서 치안정책연구소를 모태로 (가칭)한국치안정책연구원과 같은 법인격을 가진 공공기관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 한국행정연구원 - 서울 은평구에 있다.[11] 1991년 한국행정연구원법에 근거하여 총무처 산하 특수법인 한국행정연구원이 출범했다. 1999년 국무조정실 인문사회연구회 소관을 거쳐 200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한국행정연구원으로 바뀌었다. 2001년 7월 정부업무평가 전문연구기관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원장 아래 경영부원장이 지휘하는 기획조정본부, 국정관리연구본부와 대외부원장이 지휘하는 국정관리지원본부 등을 두고 있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 진천 덕산읍에 있다.[12] 1995년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가 교육과정평가원을 설치하는 교육개혁안을 발표한 후 교육부 국립교육평가원을 모태로 1998년 교육부 산하 특수법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범했다. 1999년 국무조정실 인문사회연구회 소관을 거쳐 200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으로 바뀌었다. 원장 직속의 대학수학능력시험본부와 부원장 하의 기획조정본부, 교육과정·교과서본부, 교수학습본부, 교육평가본부, 경영지원본부, 정보관리본부 등을 두고 있다.
- 산업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13] 1976년 1월 중동문제연구소로 출범하여 1977년 1월 국제경제연구원육성법에 근거하여 경제기획원 산하 특수법인 국제경제연구원으로 확대되었고, 1982년 1월 재단법인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14]와 통합하여 한국산업경제기술연구원법에 근거한 상공부 산하 특수법인 한국산업경제기술연구원(KIET)으로 바뀌었다가 1984년 8월 산업연구원법에 근거한 상공부 산하 산업연구원(KIET)이 되었다. 1999년 국무조정실 경제사회연구회 소관으로 바뀌었고 2005년 다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으로 바뀌었다. 원장, 부원장 아래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서비스산업연구본부, 산업정책연구본부, 중소벤처기업연구본부, 산업통상연구본부, 동향·통계분석본부, 기획조정본부 등을 두고 있다.
- 국가균형발전연구센터
- 방위산업연구센터
- 에너지경제연구원 - 울산 중구에 있다.[15] 1986년 5월 기존 특정연구기관육성법에 의해 특정연구기관으로 지정되어 있던 재단법인 한국동력자원연구소를 모태로 에너지경제연구원법에 의한 동력자원부 산하 특수법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출범했다. 1999년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소관 에너지경제연구원을 거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으로 바뀌었다. 원장, 부원장 아래 에너지전환정책연구본부, 에너지산업연구본부, 에너지정보·국제협력본부, 연구기획조정실, 경영지원실 등을 두고 있다.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 진천 덕산읍에 있다.[16] 1985년 2월 재단법인 통신정책연구소(ICR)로 출발하여 1987년 통신개발연구원법에 의해 체신부 산하 특수법인 통신개발연구원으로 확대되었다. 1997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법에 의하여 정보통신부 산하 특수법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1999년 국무조정실 경제사회연구회 소관을 거쳐 2005년 경제·인무사회연구회 소관으로 바뀌었다. 원장 아래 기획조정실, ICT전략연구실, 통신전파연구실, 방송미디어연구실, ICT통계정보연구실, 국제협력연구실, 경영전략연구실, 행정실 등을 두고 있다.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 1971년 보건사회부 국립가족계획연구소를 모태로 가족계획연구원법에 근거하여 보건사회부 산하 특수법인 가족계획연구원이 출범했고, 1976년 한국보건개발연구원법에 의해 보건사회부 산하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이 출범했는데, 1981년 7월 가족계획연구원과 한국보건개발연구원을 통합하여 한국인구보건연구원으로 재출범했다. 1989년 보건사회부의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연구 기능을 흡수하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되었다. 1999년 국무조정실 경제사회연구회 소관으로 바뀌었고, 200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이 되었다. 원장, 부원장 아래 연구기획조정실, 미래전략연구실, 보건정책연구실, 소득보장정책연구실, 사회서비스정책연구실, 인구정책연구실, 정보통계연구실, 경영지원실 등을 둔다.
- 육아정책연구소 - 서울 서초구에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한국교육개발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사이의 양해각서에 근거하여 2005년 3개 원의 공동 부설기관으로 육아정책개발센터(2009년 육아정책연구소로 명칭 변경)가 설치된 것이 시초였으나 2008년 육아정책개발센터 설치·운영 규정 개정으로 협력기관을 2개로 조정하면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빠졌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설기관이 되어 있다.
- 한국노동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17] 1988년 노동부 허가로 재단법인 한국노동연구원으로 출범하였다가 1989년 한국노동연구원법에 의거하여 특수법인 한국노동연구원이 되었다. 1999년 노동부에서 국무조정실 산하로 이관되어 경제사회연구회 소관 한국노동연구원이 되었다. 2005년 7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한국노동연구원으로 바뀌었다. 원장과 부원장 아래 고용정책연구본부, 노사관계연구본부, 사회정책연구본부 등을 두고 있다. 간혹 전현직 한국노동연구원장이 고용노동부장관으로 발탁되기도 한다.
- 한국직업능력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18] 1996년 2월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가 평생직업교육체제의 구축을 위해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설립을 제안하여 1997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법에 근거하여 교육부와 노동부가 공동 출연[19]하여 특수법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출범했다.[20] 1999년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소관으로 바뀌었으며 200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되었다. 원장과 부원장 아래 전략기획본부, 미래인재·자격연구본부, 평생직업교육연구본부, 고용·능력평가연구본부, 국가진로교육연구본부, 경영지원본부 등을 두고 있다. 2000년 10월 UNESCO 직업기술교육훈련지역센터(UNESCO Regional Center)가 개소했으며 2017년 1월 국가진로교육센터로 지정되기도 했다. 2021년 5월 18일에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다.
- 한국해양수산개발원 - 부산 영도구에 있다.[21] 1984년 2월 해운업법에 근거하여 해운항만청 허가로 한국해운기술원[22]으로 출범하여 1988년 12월 해운산업연구원으로 바뀌었다가 1997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법에 근거하여 해운산업연구원,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정책연구부, 한국농촌경제연구소 산림수산경제연구부 수산부문, 국립수산진흥원 수산경제연구실,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수산경제연구원 등 5개 기관 및 부서가 통합되어 해양수산부 산하 특수법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으로 재출범하였다. 1999년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소관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되었다. 원장과 부원장 아래 기획조정본부, 정책동향연구본부, 해양연구본부, 수산연구본부, 해운해사연구본부, 항만·물류연구본부, 경영지원본부 등을 두고 있다.
- 수산업관측센터[23] - 2004년 4월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수산업관측센터를 신설했다.
- 한국법제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24] 1989년 한국법제연구원법에 근거하여 법제처 산하 특수법인 한국법제연구원이 출범했다.[25] 1999년 국무조정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 소관 한국법제연구원을 거쳐 200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한국법제연구원이 되었다. 원장과 부원장 아래 기획조정본부, 행정·자치·안전법제연구실, 사회문화·복지법제연구실, 산업·경제·금융법제연구실, 국토·환경·에너지법제연구실, 법제조사평가연구실, 통일법제연구실, 법령번역센터 및 사무국 등을 두고 있다.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 서울 은평구에 있다. 1975년 세계여성의 해를 맞아 선포한 UN의 권고에 따라 1980년 세계여성대회의 한국대표 기조연설에서 국가적 차원의 여성문제 전담기관 설립을 공포하였고 1982년 한국여성개발원법에 따라 보건사회부 국립부녀직업보도소와 국립여성복지원을 통합하여 보건사회부 산하 특수법인 한국여성개발원이 출범했다. 1991년 4월 정무장관(2)실 산하로 이관되었다가 1999년 국무조정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 소관 한국여성개발원을 거쳐 200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한국여성개발원이 되었다. 2007년 5월 다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으로 바뀌었다. 원장 아래 기획조정본부, 정책연구실, 성평등정책확산전략실, 경영지원실 등을 두고 있다.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26] 1989년 청소년육성법에 근거하여 체육부 산하 한국청소년연구원으로 출범하여 1993년 1월 한국청소년개발원으로 확대·개편되었다. 1997년 10월 세계청소년연구개발협의회(WARDY)를 창립했다. 1999년 1월 국무조정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 소관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되었고, 2007년 5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으로 바뀌었다. 원장 아래
부원장 없이기획조정본부, 활동·참여연구실, 보호·복지연구실, 자립·역량연구실, 통계·패널연구실, 경영지원실 등을 두고 있다. - 한국교통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27] 1985년 교통부 허가로 1986년 재단법인 교통개발연구원으로 출범하였다가 1987년 도시교통정비촉진법에 의거하여 특수법인 교통개발연구원으로 바뀌었다. 1999년 1월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소관 교통개발연구원으로 바뀌었으며 2005년 7월 명칭이 한국교통연구원으로 바뀌었다. 원장과 부원장 아래 기획경영본부, 4차산업혁명교통연구본부, 종합교통연구본부, 도로교통연구본부, 철도교통연구본부, 항공교통연구본부, 물류연구본부, 글로벌교통연구본부, 교통빅데이터연구본부, 민자도로관리지원센터 등을 두고 있다. 1996년 6월 교통개발연구원의 관광연구업무를 한국관광연구원으로 이관하였다.
- 한국환경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28] 1992년 환경처 허가로 재단법인 한국환경기술개발원으로 출범하여 1997년 9월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에 따라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으로 바뀌었다. 1999년 1월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소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으로 이관되었고 200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이 되었다. 원장과 부원장 아래 기획전략부, 경영관리부, 지속가능전략연구본부, 기후대기안전연구본부, 물국토연구본부, 환경평가본부 등을 두고 있다. 2021년 8월 17일 한국환경연구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 - 세종 반곡동 한국환경연구원 별관에 있다. 2009년 7월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가 설립되었다.
- 한국교육개발원 - 진천 덕산읍에 있다.[29] 1972년 재단법인 한국교육개발원으로 출범하여 1973년 한국교육개발원육성법에 근거하여 문교부 산하 특수법인 한국교육개발원으로 바뀌었다. 1999년 국무조정실 인문사회연구회 소관으로 바뀌었다가 2005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한국교육개발원이 되었다. 1997년 10월 직업기술교육연구업무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으로 이관하였다. 2001년 한국바로알리기사업 주무기관으로 지정되었으나 2003년 3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관하였다. 1979년 1월 교육과정 연구개발 전담기구로 지정되었고, 1981년 12월 교육과정 개편 및 교과용 도서 연구개발기관으로 지정되었다. 1974년 3월 문교부 중앙시청각교육원으로부터 라디오 학교방송 운영업무를 이관받았고, 1990년 12월 교육방송 전담기구로 부설 교육방송(EBS)[30]을 설치하였다. 2008년 2월 평생교육진흥원(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법인으로 이관·독립하였다. 2012년 11월 방송통신중학교를 설치·운영하기 시작했고, 2017년 6월 국가교육통계센터(교육통계센터 기능은 1997년부터 수임)로 지정되었다. 원장과 부원장(겸 기획조정본부장) 아래 기획조정본부, 초·중등교육연구본부, 고등교육연구본부, 미래교육연구본부, 교육정책지원연구본부, 국가교육통계연구본부, 경영지원본부 등을 두고 있다.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 나주 빛가람동에 있다.[31] 1967년 9월 농촌진흥청 농업경영연구소로 발족하여 1970년 4월 농림부 국립농업경영연구소를 거쳐 1973년 농수산부 국립농업경영연구소가 되었다. 1978년 4월 재단법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으로 재출범하였다가 1978년 12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육성법 제정으로 농수산부 산하 특수법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으로 바뀌었다. 1999년 1월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사회연구회 소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으로 이관되었다. 1995년 부설 농림기술관리센터를 설치하였으나 2009년 9월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으로 이관되면서 폐지되었고, 2005년 4월 부설 농촌정보문화센터가 설치되었으나 2012년 5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으로 이관되면서 폐지되었다. 원장과 부원장 아래 미래정책연구실, 기획조정실, 경영지원실, 대외협력정보실을 비롯하여 농업농촌정책연구본부, 농림산업정책연구본부, 글로벌협력연구본부 등을 두고 있다.
1996년 해양수산부 출범 여파가 미쳐1997년 5월 한국해양수산개발원으로 수산업무를 이관하기도 했다. 1978년 농경연연우회가 발족했다. - 농업관측본부[32] - 1999년 1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내 농업관측센터가 설립되었다가 2016년 9월 농업관측본부로 격상되었다. 2013년 4월 농업관측센터 세종상황실(대전 유성구)이 설치되었다.
- 국토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33] 1978년 국토개발연구원 육성법에 근거하여 건설부 산하 특수법인 국토개발연구원이 출범했다. 1981년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지역개발연구소를 흡수하였고, 1999년 1월 국무조정실 경제사회연구회 소관 국토연구원으로 바뀌었다. 원장과 부원장 아래 국토계획·지역연구본부, 도시연구본부, 주택·토지연구본부, 국토인프라연구본부, 국토정보연구본부, 기획경영본부, 글로벌개발협력센터 등을 두고 있다.
- 건축도시공간연구소 - 세종 어진동에 있다. 2006년 6월 대통령 자문기구인 건설기술·건축문화선진화위원회에서 대통령 보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건축도시분야 국책연구기관 설립을 지시하여 2006년 10월 국무조정실에서 국토연구원 부설기관으로 연구소 설립 추진을 결정하였고, 2007년 6월 국토연구원 부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과학기술정책연구원 - 세종 반곡동에 있다. 1987년 1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과학기술정책연구평가센터(CSTP)로 출발하여 1993년 5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 부설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STEPI)로 바뀌었다. 1998년 5월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와 산업기술정책연구소(ITEP)의 정책연구기능을 통합하여 경제사회연구회 소관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개편하는 방침이 확정되어 1999년 2월 국가연구개발사업 기획·평가·관리 기능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으로 이관하고, 1999년 4월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ITEP)의 산업기술정책연구 기능을 이관받아 1999년 5월 인문사회연구회 소관의 법인격을 가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으로 출범했다. 2005년 7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되었다. 원장 직할로 경영지원실을 두고 부원장 아래 전략기획실, 혁신시스템연구본부, 혁신성장정책연구본부, 글로벌혁신전략연구본부, R&D재정사업평가센터 등을 두고 있다.
3. 관련 항목
[1] 이를 위반한 자는 과태료의 제재를 받는다(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제35조).[2] 이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자부)는 관할기관만 60개에 이르는 초 매머드 부처가 되었었다.[3] 2013년 12월 이전했다. 사실 후술되어있는 상당수 연구기관들도 세종특별자치시로 이전했다.[4] 2014년 12월 세종으로 이전했다.[5] 1999년에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었으나 2014년 세종으로 이전했다.[6] Doha Development Round.. 도하개발어젠다라고 하며 무역장벽 제거를 목적으로 2001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가 주최한 다자간 무역 협상이다.[7] 국내 최초로 서울대학교 내에 유럽연합 전문연구기구가 설립된 케이스이다. EU는 EU센터 운영을 위해 3년 6개월 간 80만 유로(약 9억원)를 지원하며 서울대학교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같은 기간 동안 각각 4억 5천만원씩 부담한다.[8] KU-KIEP-SBS EU센터는 4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4년 5월 1일 공식적으로 발족했으며 총 42개월 동안 11억 원 가량의 EU의 재정지원금 및 컨소시엄 기관들의 출연금 등 약 20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는다.[9] 2006년 한·미 동맹 관계 증진을 위해 설립된 싱크탱크다. 초기 한국 정부로부터 6억원가량 지원을 받기 시작해 지원금이 꾸준히 늘어 매년 20억원 가까이 지원을 받아오곤 했다. 북한 전문 사이트인 ‘38노스’를 운영했었다.[10] 1991년 중구 장충동에서 개원하여 1997년 강북구 수유동을 거쳐 2015년 서초구 반포동으로 이전했다.[11] 독립청사 없이 지내다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세종으로 내려가자 2015년 그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세종 이전 떡밥이 돌고 있다.[12] 1999년 6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종로구 삼청동, 2010년 4월 중구 정동을 거쳐 2018년 2월 진천으로 이전했다.[13] 서울 홍릉에 있었으나 2014년 12월 세종으로 이전했다.[14] 1969년 5월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육성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재단법인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이다.[15] 2014년 12월 울산으로 이전했다.[16] 1986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1989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을 거쳐 1994년 과천 주암동 정부과천청사에 입주했다가 2014년 진천으로 옮겨갔다.[17]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었으나 2014년 10월 세종으로 이전했다.[18]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었으나 2014년 세종으로 이전했다.[19] 당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이사장 및 원장은 교육부 장관과 노동부 장관이 공동제청하여 대통령이 임명하였고, 부원장은 원장의 제청으로 노동부 장관과 미리 협의한 교육부 장관이 임명하였다.[20] 출범 후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산업인력영이공단(현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업무 중 직업교육훈련과 관련된 기능을 이관받았다.[21]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다가 2015년 부산으로 이전했다.[22] 해운항만청의 입김이 미쳤으며 한국해운기술원의운영등에관한규정도 있었다.[23] 설치에 관한 법적 근거를 갖고 있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제5조 (농림업관측 및 수산업관측 등) 및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7조 (농수산업관측 전담기관의 지정 등) 참조.[24]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었으나 2014년 세종으로 이전했다.[25] 기존의 재단법인 법령편찬보급회와 재단법인 입법기술연구소를 통합하여 한국법제연구원의 모태로 하였다.[26] 2014년 12월 서울 서대문구에서 세종으로 이전했다.[27] 1992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1999년 3월 고양 일산서구를 거쳐 2014년 12월 세종으로 이전했다.[28] 2014년 세종으로 이전했다.[29]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있었으나[30] 당시 한국교육개발원 방송본부가 프로그램의 연구, 기획 및 제작을 담당하고, 교육방송 송출시스템은 KBS가 수탁하는 형식이었는데 1980년 교육방송(KBS-3)가 개국하고 한국교육개발원 교육방송이 KBS 3TV로부터 분리되어 EBS라는 이름으로 송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교육개발원 내 교육방송은 부설 멀티미디어교육연구센터와 함께 1997년 1월 한국교육방송원으로 분리·독립하였고, 교육과정연구업무도 한국교육방송원으로 이관되었다. 이후 2000년 한국교육방송원은 한국교육방송공사로 바뀐다.[31] 서울 동대문구에 있었으나 2015년 8월 나주로 이전했다.[32] 농경원 내 부서 중 유일하게 법적 근거를 갖고 있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제5조 (농림업관측 및 수산업관측 등) 및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7조 (농수산업관측 전담기관의 지정 등) 참조...[33] 1978년 개원 당시 서울 중구 충무로 극동빌딩(현 남산스퀘어) 내에 있었으나 1982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 1985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994년 안양 동안구 관양동을 거쳐 2017년 1월 세종으로 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