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 진삼(晉三) / 귀암(龜巖) |
본관 | 연일 정씨[1] |
출생 | 1868년 1월 15일 |
경상도 영천군 자양면 월연동 (현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2] 월연마을 962번지) | |
사망 | 1931년 6월 22일[3] (향년 63세) |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덕리 대장골 |
상훈 | 대통령표창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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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15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독립유공자 정치우는 그의 친동생이고, 정치화는 8촌 삼종형(三從兄)이다.
2. 생애
1868년 1월 15일 경상도 영천군 자양면 월연동(현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월연마을 962번지)에서 아버지 정유경(鄭裕璟, 1835. 6. 22 ~ 1888. 6. 22)[4]과 어머니 청안 이씨 이경이(李敬伊)[5] 사이에서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8살 되던 1875년부터 1886년까지 집안 어른들로부터 한학을 수학했고, 1890년부터 고향 마을의 추모당에서 훈장을 지내며 문중 및 마을 자제들을 가르쳤다.1906년 3월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은 시종관 정환직(鄭煥直)[6]이 그의 장남인 정용기(鄭鏞基)[7]에게 의병을 일으키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정용기가 고향 영천군으로 내려가 이한구 등을 규합하여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조직하자, 영천군 지역을 담당하면서 의병과 군수품을 모집하였으며, 1907년까지 산남의진의 후방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였다. 또 일본군 카네오리 겐이치(兼折元一)를 처단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후 산남의진이 해산되자 은거하다가 1931년 6월 22일 별세하였다.
201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유해는 당초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 중귀미마을에 안장되었다가 이후 청통면 신덕리 대장골에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