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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진나라의 반란자 齊萬年 | 제만년 | |
묘호 | 없음 |
시호 | 없음 |
존호 | 황제(皇帝) |
소속 | 저족 |
휘 | 제만년(齊萬年) |
생몰 | ? ~ 299년 |
재위 | 저족 황제 |
296년 8월 ~ 2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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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의 위진남북조 서진시대 저족의 인물. 서진에 대항해 반란(제만년의 난)을 일으켰다.2. 생애
저족의 통수로 296년 가을 8월 진주, 옹주에서 저족, 강족들이 봉기하자 제만년이 황제로 세워졌고 경양을 포위했다.297년 봄 정월 7만명을 이끌고 양산에 주둔했으며, 주처, 노파, 해계 등에게 육맥에서 공격을 받았고 이들을 격파해 주처를 전사시켰다.
제만년이 일으킨 봉기로 인하여 관중 지방에는 기근이 들고 약양, 천수 등 6개의 군의 백성들을 유랑하고 다니면서 곡식을 찾아 한천으로 들어온 유민이 수만 가구가 되었는데, 이는 파촉 지역에서 성한이 건국되는 영향을 끼쳤다.
결국 299년 중정에서 맹관에게 격파되어 사로잡혔다.
3. 기타
독발수기능의 난을 최종적으로 진압한 마륭이 제만년의 난 때 활약했다는 기록이 없는 점을 근거로 296년 이전에 사망했다고 추정되고 있다.제만년의 난을 진압한 맹관은 2년 후 사마륜이 패망한 후 사마륜을 지지했다는 혐의를 받아 처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