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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크리스토퍼 커틀러 Jay Christopher Cutler | |
출생 | 1983년 4월 29일 ([age(1983-04-29)]세)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인디애나 주 샌타클로스 |
신체 | 191cm, 105kg |
포지션 | 쿼터백 |
프로입단 | 2006년 NFL 드래프트 1라운드 11순위 애리조나 카디널스 지명 |
소속팀 | 덴버 브롱코스 (2006~2008) 시카고 베어스 (2009~2016) 마이애미 돌핀스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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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NFL 미식축구 선수로 현역시절 포지션은 쿼터백이었다.2. 커리어
2.1. 데뷔 이전
태어나기는 조지아 주에서 태어났지만 인디애나 주 산타클라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시카고 베어스 팬으로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명문 학교지만 풋볼 쪽은 영 아닌 FBS/SEC의 밴더빌트 대학교에 진학하여 팀의 주전 쿼터백으로 맹활약하였으며 약체팀 선수임에도 큰 주목을 받았다. 드래프트 컴바인에서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총알 패스를 뿌리는 좋은 모습을 보이며 당시 2005년 로즈보울에서 역대 최고의 명승부를 연출하며 전체 1위 후보로 떠오르던 전미 최고의 쿼터백 유망주들인 USC의 맷 라이너트[1], 텍사스 롱혼스의 빈스 영[2] 다음 가는 넘버 3 쿼터백 유망주로 성장했으며, 결국 덴버 브롱코스가 2006년 드래프트 전체 11번으로 선택했다.2.2. 덴버 브롱코스 시절
덴버 브롱코스는 해당 문서에도 설명이 되어 있지만, 팀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인 존 엘웨이가 1998 시즌에 슈퍼볼을 우승하고 정상에 있을 때 명예롭게 은퇴한 이후 그 후계자를 찾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엘웨이 직후 주전이었던 브라이언 그리시는 4년간 공격을 책임졌으나 부상 후유증과 엘웨이와 비교해서 너무 떨어지는 평이한 실력 때문에 팀에서 짤렸고, 커틀러가 들어올 당시의 주전 쿼터백은 애리조나 카디널스에서 FA로 영입해온 뒤 브롱코스 쿼터백으로서 4년째에 들어가는 제이크 플러머였다. 그런데 플러머는 리그 최약체팀에서 뛰었던 이력도 이력이지만 보수적인 정통파 프로스타일 쿼터백과는 거리가 먼 모바일 쿼터백[3]이었기 때문에 엘웨이가 보여준 패싱이나 리더십을 그리워하던 팬들은 플러머가 못하기만 하면 맹비난 일색이었고, 97~98 우승 멤버들 중 남아있는 베테랑이나 엘웨이를 따르던 선수들이 플러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등 라커룸에서의 알력도 어느정도 있었으며 그 때문에 기대받던 커틀러의 데뷔를 요구하던 팬들도 있었다. 헤드코치 마이크 섀너핸[4] 역시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종종 반항하던 제이크 플러머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런 문제에 한몫했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일이 터졌다.2006년 시즌 후반 7승 2패로 지구 1위를 달리다 2연패를 당하며 7승 4패로 처지자, 그 시점에서 갑자기 팀 하락세의 책임을 물어 섀너핸 감독이 플러머를 밀어내고 커틀러를 주전으로 앉힌 것. 쿼터백 항목을 보면 알지만 팀에서 쿼터백을 바꾸려면 공격전술 자체를 싹 갈아야 할 정도로 쿼터백은 중요한 포지션인데 시즌 중에 생초짜 신인을 주전 쿼터백으로 쓴다는 것은 팀내 사정이 어쨌든 너무 위험한 모험인 것이다. 덴버 팬들은 당연히 커틀러파와 플러머파로 나뉘어서 치열하게 대립했고, 전문가들도 너무 모험적이라는 견해가 컸다. 플러머가 그 전 시즌에 브롱코스를 AFC 챔피언십 경기까지 인도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논란이 더욱 거셌다.
이렇게 시끌시끌한 가운데 제이 커틀러는 첫 공식경기에 선발 출전했고, 데뷔전인 시애틀 시호크스전은 상당한 선전을 했지만 막판에 끝내기 필드골로 아쉽게 20-23으로 패배했다. 이후 남은 경기에서 2승 2패, 총 2승 3패를 거두고 최종성적 9승 7패로 덴버 브롱코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아깝게 실패했다. 그리고 헤드코치 섀너핸과 커틀러는 엄청난 비난에 직면해야했다.[5]
이런 시행착오 끝에 2007년부터 팀의 주전 쿼터백으로 정착한 제이 커틀러는 자기 앞에 뽑혔던 맷 라이너트와 빈스 영이 모두 실패작이라는 비판을 받던 그 시기부터 실력을 보여주며 2007년에는 3497야드 20터치다운 14인터셉트 레이팅 88.1, 2008년에는 4526야드 25터치다운 18인터셉트 레이팅 86으로 프로볼에 발탁되는 등 활약했지만 팀은 수비진의 붕괴로 2007년 7승 9패, 2008년 8승 8패의 성적을 내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팀을 오랫동안 이끌었던 헤드코치 마이크 섀너핸은 책임을 지고 사퇴, 워싱턴 레드스킨스로 이적한다.
그 뒤 신임 헤드코치로 부임한 조쉬 맥대니얼스는 제이 커틀러의 강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져 인터셉트가 잦은 패스와 경기 운영, 그리고 내성적인 성격등을 이유로 클럽하우스에서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측면 등 여러가지 면에서 주전 교체를 생각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일방적으로 커틀러를 트레이드 시장에 올려놓고 다른 팀들의 오퍼를 듣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자 팀에 크게 마음이 상한 커틀러는 구단주에게 자신을 트레이드할 것을 종용했고, 결국 2009년 4월 3일에 브롱코스가 시카고 베어스의 쿼터백 카일 오턴과 드래프트 픽 다수를 받는 조건하에 베어스로 트레이드된다.
2.3. 시카고 베어스 시절
시카고 베어스는 1920년에 팀이 창단한 이후부터 줄곧 올드스쿨을 주장하며 수비와 러싱 공격을 중심으로 플레이하던 팀이라 팀 역사상 3000야드를 던져본 쿼터백이 100년 가까운 역사에 단 4명밖에 없을 정도로 쿼터백과는 인연이 없는 팀이었다. 공교롭게도 커틀러와 트레이드된 상대는 2008년 시카고 베어스의 주전 쿼터백이자 나름 준수한 활약을 했던 퍼듀대학 출신 카일 오턴. 그래서 시카고 베어스에서는 역시 커틀러를 영입한데 대해 팀 역사상 최고의 쿼터백을 데려온 것이다라는 찬양과 함께 경기 내외적으로 잡음이 좀 있고 쿼터백 최악의 환경[6]인 시카고에서 같은 성적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부정적 시선이 공존했다.여러 우려 끝에 시카고 베어스의 주전이 된 커틀러는 첫 해에 실망스런 성적을 냈다. 야드 수는 시카고 베어스 팀 역사상 단일 시즌 2위에 해당하는 3666야드에 커리어 하이인 27개의 터치다운을 성공시키긴 했지만 인터셉션도 리그 최악인 26회를 던지는 등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팀은 7승 9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물론 팬들에게 엄청난 까임을 당했지만 사실 시즌 중 쌕을 35번 당할 만큼 시카고 베어스는 덴버 브롱코스에 비해 공격 라인맨들의 쿼터백 보호가 약했고, 러닝백 맷 포르테를 제외하면 커틀러의 패스를 받을 와이드 리시버진이 리그 하위권 기량이었기 때문에 그런 서포팅 캐스트의 약함에도 이 정도 성적을 낸 것은 대단한 거라는 전문가들의 쉴드도 있었다.
솔저 필드에 적응을 마친 제이 커틀러는 2010년 시즌에는 야드 수는 전년도보다 줄어들고 쌕은 훨씬 많은 52번이나 당했음에도 인터셉션을 줄이며 안정된 경기 운영을 보여주었고, 수비의 지원에 힘입어 15경기에 선발출전해 10승 5패를 기록하며 시카고 베어스를 플레이오프에 올린다. 다만 애런 로저스가 이끄는 그린베이 패커스와의 NFC 챔피언십 경기에서 부상으로 경기 중반 아웃되는 무기력한 모습 때문에 팬들에게 또 까임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7]
2011년에도 베어스의 시스템에 제대로 적응하며, 첫 10경기에서 베어스를 7승 3패로 이끌며 플레이오프 재진출을 가시권에 두었다. 그러나 11주차 샌디에이고 차저스전에서 오른손 엄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시즌아웃되었다. 해당 경기만은 끝까지 승리로 이끌었지만 이후 베어스는 남은 여섯 경기에서 5패를 당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12년에는 지난해부터 덴버 브롱코스에서 이적해왔고 덴버 시절때부터 같이 뛰었던 와이드 리시버 브랜든 마셜과 콤비를 이루어 함께 안정된 활약을 보이며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하지만 시즌 막판 부상으로 주춤한 동안 그린베이 패커스와 미네소타 바이킹스에 역전을 허용해 10승 6패를 하고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뒤 2014년에는 총 28개의 TD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한 시즌 최다 TD를 갱신했고, 2015년에도 2년 연속 3000 패싱 야드를 돌파했지만 2016년에는 부상 때문에 5경기만 출전하는 데 그치고 백업이었던 맷 바클리와 브라이언 호이어가 주로 경기에 나서게 되었다.
결국 2016년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베어스를 슈퍼볼로 이끌었던 러비 스미스 감독이 해임된 후인 2013년 시즌부터 죽 팀이 플레이오프는 바랄 수도 없는 저조한 성적만 낸 데 대한 책임을 덮어쓰고, 베어스가 본격적인 리빌딩을 하기 위해 이제 나이 많고 비싼 몸 값을 가진 커틀러를 방출하며 샐러리캡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보이는 중.[8] 물론 주전 쿼터백으로서 확실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도 있다.
그래도 선수생활을 계속할 환경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중. 유독 이번 시즌 쿼터백 문제를 겪은 팀들이 한둘이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뉴욕 제츠와 버팔로 빌스와 루머가 나왔다. 하지만 결국 찾아주는 팀이 없어 은퇴를 선언하였다. 아무래도 오프시즌 뜨거운 감자였던 토니 로모나 지미 가로폴로보다 매력이 없었기에 나온 선택인 듯 보인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먼저 은퇴한 토니 로모처럼 방송의 길을 걷게 되었다. FOX에서 애널리스트가 되어 방송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2.4. 마이애미 돌핀스 시절
마이애미 돌핀스의 쿼터백 라이언 태너힐이 시즌 시작 직전에 부상으로 인하여 시즌 아웃되자 1년 천만 달러에 계약하게 되었다.[9] 그러나 영국 축구의 성지라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와일드캣 상황 중 정신줄 놓은 플레이를 선보이는 동시에[10] 7주차에는 갈비뼈 부상, 11주차에 충돌로 드러누워서 돌핀스 팬들이 한탄하는 중. 그 와중에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이기는 업셋을 성공시키기도 했다.[11]최종적으로는 14경기에 선발출전해서 그 경기들에서 6승 8패를 거뒀다. 팀은 최종성적 6승 10패로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1년 계약이라 시즌이 끝나고 다시 자유계약선수가 되었다. 지난해와 달리 공식적인 은퇴 선언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명백하게 "주전 자리가 보장될 경우에만 새 팀과 계약하겠다. 이 나이에 백업 일을 하기 위해서 이사를 하고 매주 전국을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다." 라 못박아놔서 그대로 은퇴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중.
3. 기타
- 재키 로빈슨과 같은 1형 당뇨병이 있다. 2008년 1월 공식적으로 그가 1형 당뇨병임을 진단 받았고, 이 이후로 1형 당뇨병 환자를 위한 복지재단을 창립해 같은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 샌디에이고 차저스의 주전 쿼터백 필립 리버스와 사이가 매우 안좋은데, 그가 차저스와 지구 라이벌 관계인 덴버 브롱코스 소속으로 2008년 먼데이 나잇 풋볼에서 붙었을때 리버스가 그에게 지독한 트래쉬 토크를 했기 때문.
- 시카고 베어스의 대부분의 쿼터백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볼폼 없어보이지만 진짜 베어스 역사상 최고의 쿼터백 중 하나다.
- 인디애나 출신이고 어려서부터 Big Ten 풋볼을 보며 자란 터라 고등학교 시절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처음 오퍼를 받았을 때 밴더빌트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는 웃픈 뒷 이야기가 있다. 밴더빌트로 진학을 결정하계 된 계기는 오퍼를 받은 소식을 아버지에게 알리자 "장학금 준다면 꼭 가라 (You are going)"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사실 SEC도 잘 알았을 텐데 그냥 밴더빌트 풋볼 프로그램이 존재감이 없었다는 것이 정설인 듯 하다 -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덴버 브롱코스에 1라운드에 드래프트된 쿼터백 중 유일하게 프로볼에 선발된 선수이다. 왜 그렇냐면 팀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 존 엘웨이는 볼티모어 콜츠에 드래프트되었기 때문.
- 덴버 브롱코스의 엇나간 존 엘웨이 사랑의 세번째 피해자[12]이기도 하다.
[1] 전체 10번으로 애리조나 카디널스가 지명[2] 전체 3번으로 테네시 타이탄스가 지명[3] 황당한 사실은 존 엘웨이 역시 정통파 프로스타일이라기보다는 스크램블을 자주 쓰는 모바일 쿼터백으로 플러머가 플레이 스타일만 보면 오히려 엘웨이와 닮은 선수였다는 것.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비교되어서 눈에 띄게 까였는지도 모른다.[4] 카일 섀너한의 아버지이다.[5] 그리고 피해자 제이크 플러머는 시즌 종료와 함께 탬파베이 버캐니어스로 쫓겨나듯 트레이드 되었는데 이에 빡쳐서 그냥 은퇴해버린다. 32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한 제이크 플러머는 이후 아메리칸 핸드볼(그 핸드볼이 아니다. 스쿼시 비슷한 타입의 스포츠) 선수로 전업한다.[6] 미식축구도 야외경기이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쿼터백이 상당히 받는다. 시카고는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이 부는 기후에도 불구하고 야외 경기장을 쓰기 때문에 쿼터백이 패스를 던지기 최악의 환경 중 하나로 꼽히고, 반면 덴버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쿠어스 필드 예에서 알 수 있듯 고지대라 쿼터백이 던지는 패스가 일반 구장보다 평균 5%~10%정도는 더 멀리 가는 효과가 있어서 쿼터백에게는 좋은 환경에 속한다. 물론 최상은 바람이나 날씨영향이 전혀 없는 돔경기장.[7] 이때 커틀러가 특히 더 대차게 까인 것은 해당 NFC 챔피언십 경기에서 부상으로 물러난 뒤, 우연히 카메라에 팀메이트와 얘기하면서 웃는 모습이 찍혀서였다.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고 웃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팀이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애런 로저스가 이끄는 패커스에 지고 있어 시즌이 끝날 위기에 실실 웃고 있다면서 일부 팬들의 어그로를 끈 것이다. 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커틀러에게는 팀이야 어찌됐든 상관하지 않고 개인만 챙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붙었고, 이는 이후 계속 그를 따라다니게 된다.[8] 하지만 정작 그래 놓고는 커틀러보다 더 비싼 연봉으로 탬파베이에서 확실한 주전도 아니었던 QB 마이크 글레넌을 영입한 것도 모자라서 드래프트에서 마홈스 거르고 트루비스키를 시전했다. 대체 베어스는 뭘 하자는 생각인지...[9] 커틀러를 찾게 된 배경에는 돌핀스의 감독이 커틀러가 베어스에 있던 시절 오펜시브 코디네이터를 역임했던 애덤 게이스였던 것이 큰 이유였다. 당장 급하게 새 쿼터백을 투입해야 될 상황이니 이전에 게이스의 공격 전술 하에서 경기한 경험이 있는 커틀러를 선택한 것이다.[10] 영상에서 왼쪽 아래 아무것도 안 하고 멍때리는 사람이 커틀러다.[11] 해당 경기에서 커틀러는 인터셉션 없이 3 TD에다가 야드 수도 톰 브래디보다 많이 기록하는 등, 2 INT를 기록한 브래디에 비해 월등히 나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그 주에 리그의 화젯거리가 되었다.[12] 첫번째는 엘웨이 은퇴 직후 주전으로 나선 브라이언 그리시. 데뷔초 주전 경쟁 때 라커룸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 본인이 이 때문에 외적으로 사고를 많이 쳤다. 망가지게 된 건 오클랜드 레이더스 항목에 나오는 어깨 탈구 후유증이긴 하지만. 두번째 피해자는 제이크 플러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