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23:52:23

제이영

<colbgcolor=#f4ecd5><colcolor=#015566> 제이영
鄭載榮 | J Young
파일:1=틀=부산해운대  제이영 작가 작업실. 사진=권동철. 2024.1.jpg
출생 1965년 5월 13일 ([age(1965-05-13)]세)
경상북도 예천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화가
학력 홍익대학교 대학원
웹사이트 제이영 홈페이지

1. 개요2. 생애3. 년대별작품영상4. 작품세계 발자취5. 개인전·단체전·아트페어6. 제이영 화론(畵論)7. 외부링크

[clearfix]

1. 개요

제이영(J Young, 본명:정재영, 본명 한자:鄭載榮, 1965년 5월 13일~)은 한국의 풍토성이 내재된 정신성을 바탕으로 동·서양 융합의 역사성을 표출하는 대한민국 미술가이다.

2. 생애

파일:2=제이영 작가 생애.jpg
(왼쪽부터)아버지 함께 1969. 중앙미술대전시상식 어머니와 함께 1992. 아내와 함께 1992. 울산현대아트갤러리 개인전으로 뒤에 설치작업이 보인다. 2000년. 사진제공=제이영.
1965년 5월 13일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대심3길 35-7번지에서 아버지 정종팔(鄭鍾八,1937~1994) 어머니 김순님(金順姙,1939~2024)사이 2남1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청주정씨(淸州 鄭氏) 녹사공파(錄事公派) 28대손이다. 유년시절 유복한 가정에서 구김 없이 자랐다. 예천초등학교 때부터 점토, 물감과 붓을 가지고 놀았다. 낙서를 긁적이며 도자기를 만들어 보고 부모님과 함께 소풍 간 안동예천지역의 노봉서원(魯峯書院), 도산서원(陶山書院) 등에 대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1977년 예천대창중학교에 입학하여 1학년 때 부터 방과 후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때부터 권상헌(權相憲,1943~)미술교사로부터 지도받아 1983년 대창고등학교 졸업 때 까지 배웠다. 중·고교시절 교내·외 각종 미술대회에서 다수입상 하였고 화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1986~90) 및 동대학원 서양화전공졸업(1994)했다.

대학시절 “나의 작품을 인정해주고 ‘자신이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나아가라’며 많은 용기를 북돋아 준” 박서보(朴栖甫,1931~2023), “꼼꼼한 지도력으로 교육자로 가는 길에 대해 영향을 준” 최명영(崔明永,1941~),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자란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그려라”라고 지도해 준 이두식(李斗植,1947~2013), 이일(李逸,1932~1997)교수에게 지도받았다. 중앙미술대전 특선(1991), 중앙미술대전 최우수상(92),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양화 부문우수상(93)을 수상했다.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武蔵野美術大学) 장려연구원(2005~2006)을 지냈고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부교수(2003~2009)를 역임했다. 제이영은 1993년 4월 반려자 이혜자(李惠子,1967~2015)와 결혼하였고 슬하에 1남1여를 두었다.

3. 년대별작품영상

4. 작품세계 발자취

파일:4-1=제이영 작가1987-1991년.jpg
(왼쪽부터)Untitled, 116×80㎝, Mixed media on paper, 1987. Untitled, 165×132㎝ Mixed media on panel, 1988. Collection, 180×60㎝, 60×60㎝, Mixed media on panel, 1990. Untitled, 74×110㎝, Print on paper, 1991. 사진제공=제이영.
◇자연이 준 오브제 모노톤 색칠행위(1987~1991년)=화이트나 블랙 모노톤의 형태가 없는 단순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자연에서 얻어진 돌, 모래, 나뭇가지 등 오브재로 칠하는 행위에 빠져들어 화면을 구성했다. “미술대학 1학년 즈음부터 추상미술에 몰두했다. 하루에 4절지 30~40장 에스키스(Esquisse)를 미친 듯이 그려냈다. 그 후 과제물을 한 점을 해 오라고 하면 30점 이상을 당시 김태호(金泰浩,1948~ 2022)선생에게 제출하는 기염(氣焰)을 토했다. 또 100호 열점이 졸업 작품 숫자인데 나는 100호 이상을 하루에 한 점씩 계속 작업하여 졸업 즈음 큰 트럭 두 차로 작품을 실어 학교실기실로 가져가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어떤 철학보다 수없이 오브제를 붙이고 물감을 뿌리고 붓으로 터치하는 행위의 즐거움에 빠져 들었기 때문에 많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 때는 밤을 새워 가면서 그려도 즐겁기만 했다.[1]

1989년 홍익대학교 회화과4학년 10명이 모여 ‘황금사과’ 미술그룹을 만들었다. 멤버는 백광현, 이용백, 정재영, 이상윤, 박기현, 이기범, 백종성, 윤갑용, 장형진, 홍동희 등으로 1990년 관훈미술관에서 다양한 언어를 지닌 개성 넘치는 작품으로 창립전 열었다. 1991년 가을 토탈미술관에서 해체전을 가졌다. “당시 ‘황금사과’멤버들은 흔히 이야기하는 신세대 작가들로서 우리사회가 점차 진입하기 시작했던 소비 문화적 징후를 자기작업의 모티브로 삼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중적 소비문화의 패턴과 전자이미지, 자의식 과잉의 연설로 무장했던 이들의 작업은 90년대 초반 당시 소위 일컫는 모더니즘민중미술이란 대립이후의 소강국면에 하나의 새로운 흐름으로 간주될 만큼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된다.[2]

파일:4-2=제이영 작가 1991-현재.jpg
(왼쪽부터)Like-150㎜, Installation, 1996. Like-150㎜, 49×74㎝ Mixed media on paper, 2017. Like-150㎜, 72.7×50㎝, Mixed media on canvas, 2020. Like-150㎜, 131×197㎝Mixed media on canvas, 2022. Like-150㎜, 90.9×65.1㎝, Mixed media on canvas, 2024. 사진제공=제이영.
◇입체와 평면 그 긴밀한 관계의 밀도(1991~현재)=밀도 있는 바탕이나 표현을 하게 되면서 작품의 가장 왕성한 성숙기로 가고 있는 시점이다. 다양한 오브제나 드로잉, 낙서, 수필, 기록 등을 써 넣어 밑 작업에 내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자유롭게 정말로 하고 싶은 예술을 표출한 것의 산물과 다름이 없다. “제이영 작업에 있어서 입체작업과 평면작업이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 또한 특기해야 할 사항이다. 작업방식은 상호보완적임과 동시에 개념상의 유사성을 띠고 있다. 이미지를 지움으로써 사물의 존재를 개념적으로 무화시키는 행위를 수행한다. 그와 같은 일련의 행위들은 회화의 본질을 다치지 않으면서 드로잉의 의미를 묻는 일임에 다름 아니다.[3]

“작가는 평면을 밋밋하게 하기 위해 젯소로 균질화 시킨 다음 그 위에 돌가루, 안료 따위를 적당하게 섞어 올린다. 일단 고밀도 평면을 구축한 뒤 연필, 콘테, 목탄으로 긋거나 혹은 붓, 나이프, 그리고 스퀴지로 끄적이거나 뭉개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마무리 된다. 제작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특기할만한 사실은 그의 작업 자체가 농밀한 평면성을 갖추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고, 밑칠이 끝난 뒤에 단 한 번의 필선에 의해 작품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도록 한다는 사실이다.[4]” “제이영 회화는 백색으로 그려내는, 하지만 대상을 슬쩍 숨겨놓는 은밀한 화면이다. 그것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예지(叡智)없이는 표현 불가능한 세계이다. 동양화 정신에 견주자면 사의적인 표현방식이다. 자연의 형태가 아니라 기운의 형태이다.[5]

“설치에서 제이영의 혁신은 ‘서양’ 혹은 적어도 ‘세계적’으로 읽힐지 모르지만, 그의 의도와 재료사용은 한국문화, 유교 그리고 (禪)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의 빈번한 텍스트 사용은 서예를 연상시키며, 수묵화의 휘몰아치는 붓놀림에서 캔버스에 물감을 바른다. ‘돌’처럼 초보적인 것을 작품제작의 초점으로 바꾸는 것은 명상(冥想)을 위한 영감으로 자연에 의존하는 아시아철학의 정신과 일치한다.[6]” “제이영 작가는 ‘like-150mm’시리즈에서 ‘숯’을 재료로 빚어낸 작업을 연속으로 발표하고 있다. 한층 더 본질의 사유가 깊은 의식으로 확장된 것이다. 덩어리진 숯이 들어박힌 오브제 작업에서부터 미세한 숯가루가 번쩍이는 질감을 형성하면서 역사라는 시간성의 숨결로 추스르며 지층(地層)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7]

파일:4-3=제이영 작가 2014-현재.jpg
(위 왼쪽부터)Moment, 104×52㎝, Mixed media on panel, 2021. Moment, 39.5×54㎝, Mixed media on panel, 2022. Moment, 73×53㎝, Mixed media on panel, 2023. Moment, 64.5×194㎝, Mixed media on panel, 2023. 사진=박희수. (아래)엠엠아트센터 개인초대전 전시전경, 2024. 사진=권동철.
◇밀면서 당기는 유희와 회귀의 역사(2014~현재)
유년의 기억들이 모호함의 표현으로 드러난다. 경계가 없는 트인 공간세계는 완전한 자유로움의 기호이다. 쌓고 칠하고를 수없이 반복하는 단색조(monochromatic) 노동유희에 빠져든다. 이 절제의 수행성 너머 어떤 뭉개짐의 공간에 드러나는 찰나의 필획(筆劃)은 서양의 물성과 동양의 정신성이 융합되는 현대성의 정취로 드러난다. “큰 붓을 잡는다. 벽돌과 벽돌이 쌓여 담벼락이 되고,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조우가 이뤄지는 축척된 만남이다. 나는 가장 단순한 획을 긋는다. 가고 오고, 당기며 만나고 천천히 밀면서 헤어지는, 어떤 땐 좌(左)로 갔다가 우(右)로 돌아오는 회귀본능 그 인간의 역사처럼.[8]

“제이영은 ‘모멘트(Moment)’시리즈에서 새로운 경험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균형을 이루는 엄격한 예술품으로 우리는 작가가 고려하도록 제시하고 있는 딜레마의 양면을 꽤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추상화 이상이며 또한 현대사회에서 우리경험에 대한 모순된 감정을 정렬하도록 촉구하는 수수께끼와 퍼즐이다.[9]” “서양화가 제이영 작품에 흐르는 사유는 조선후기 문인화적 문기(文氣)가 강하게 내재되어 회귀한다. 영상과 설치 그리고 한국서법예술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전개된 ‘Like-150mm:Eternity of Repetition(반복의 영속)’의 화두는 서화(書畫)적 강줄기를 통해 저 한국미의 (魂)을 품은 필세(筆勢)의 미의식과 다름 아니다.[10]

5. 개인전·단체전·아트페어

△주요개인전=2024 엠엠아트센터(평택), 2023 모제이갤러리(서울), 2023 갤러리 휴(부산), 2021 치모 미술관(중국), 2020 아트파리(프랑스), 2009 킵스 갤러리(뉴욕), 2008 콜트 갤러리( 뮌헨), 2007 예천문화원(예천), 2007 무라마츠 갤러리(도쿄), 2006 시몬 갤러리(도쿄), 2004 금호미술관(서울), 2002 갤러리 라메르(서울), 2001 현대아트갤러리(울산), 1994 화지갤러리( 도쿄), 1994 갤러리 보다(서울).

△주요단체전=2017 The Passion(양평군립미술관), 2007 제3회 VISON 2007-한국청년작가초대전(서울메트로미술관), 2004 전북미술의 조명(전북도립미술관), 2001 환경미술전-이상도시( 서울시립미술관), 1993 장안문에서 천안문까지(중국미술관), 1992 제15회 중앙미술대전(호암미술관), 1990 황금사과전(관훈미술관), 1988 동아미술대전(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87 대한민국미술대전(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주요아트페어=2003 시카고 아트페어(Art Chicago). 2017~2018, 2020 아트 파리(Art Paris). 2021 아트쾰른(Art Cologne), 아트 제네바(Art Geneva), 화랑미술제(2021~2022), 아트부산(2021~2024), BAMA(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2022~2024) 등.

6. 제이영 화론(畵論)

파일:6=화론-제이영 작가 작업 장면과 작업실에서 바라 본 해운대 앞바다. 사진=권동철. 2024.1..jpg
제이영 작가 작업 장면과 작업실에서 바라 본 해운대 앞바다. 사진=권동철. 2024.1.
나는 경북예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초가집과 기와집들이 섞여있는 마을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장남감이 없었던 시대에 그 골목길에서 돌과 흙을 가지고 열심히 놀았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 동네에 집을 짓는 공사가 시작됐는데 그때만 해도 노동의 품을 나누던 시대였다.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흙으로 벽돌을 만들고 땅을 다지고 목수 일을 하면서 집을 짓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어린 나의 눈에 명확하게 읽혀지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후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 공정을 기억 속에 입력했다.

미술공부를 하려 도회지로 나왔던 내가 어느 해 고향에 가서 한적한 산길과 들녘을 걷다가 유년시절에 보았던 겹겹으로 올려놓은 담장, 고인돌과 선돌 등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뭔가 머릿속을 강렬하게 스치는 영감이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훗날 담장은 하나하나 손끝터치로 겹겹이 집적(集積)되며 표출된다.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 차곡차곡 기록되는 인류의 역사처럼…. 돌 역시 변화무쌍한 인간의 마음과 달리 수천 년 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에서 나는 불변의 이미지를 숙고했던 것이다.

◇간결하고 절제된 경(敬)의 현대미
나의 고향 예천은 조선의 유교사상이 아직도 그 지역의 정신성에 자리하고 있다. 나의 내면에도 그러한 감성을 지금까지 지속해 오고 있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태극무늬로 휘돌아 가는 회룡포(回龍浦)의 부드러운 물살기억은 내 작업에서 수행적 서예성과 밀접하게 교감을 이루는 풍광이다. 그러한 풍토가 나의 예술세계에 영감으로 선사한 것은 단조롭고도 간결한 절제의 의식이다. 그것은 나에게 여백미를 품은 경(敬)의 정신 위에 현대정신의 아름다움을 펼치게 하는 근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제이영 작가 작업실에서. 대담정리=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2024.9]

7. 외부링크

(전시장 IN) 서양화가 제이영‥한국미의 심층 필세의 생명의식


[1] 제이영, 회상-미술행위의 즐거움, 2023.[2] 윤진섭 미술평론가, 정재영 1회 개인전-자의식 세계의 진술과 평면의 언설, 1994.[3] 윤진섭 미술평론가, 정재영 1회 개인전-자의식 세계의 진술과 평면의 언설, 1994.[4] 서성록 미술평론가, 심상의 채집, 1995.[5] 유근오 미술평론가, 백색 충동을 통해 발현되는 자연, 2004.[6] 바바라 폴락 (Barbara Pollack)미술평론가, 돌 하나‥그리고 모든 잊힌 얼굴들, 2014.[7] 이일영 미술칼럼니스트, 본질의 사유를 품은 겹과 층의 미학, 2023.[8] 제이영 작가, 붓의 정신 마음의 찰나, 2024.[9] 바바라 폴락 미술평론가, 돌 하나‥그리고 모든 잊힌 얼굴들, 2014.[10] 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한국미의 심층 필세의 생명의식,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