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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2 02:32:05

제임스 피스크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제임스 피스크
James Fisk
파일:1000136044.jpg
본명 제임스 피스크 주니어
James Fisk Jr.
출생 1835년 4월 1일
미국 버몬트주 포넬
사망 1872년 1월 7일 (향년 36세)
미국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그랜드센트럴 호텔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금융인, 투자자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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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투자자.

2. 생애

버몬트주 포넬에서 태어났고 기초학력을 이수한 후 15세부터 호텔 직원으로 일하면서 아버지에게 비즈니스를 배웠다. 이후 필름 판매원이 되었으나 실패했고 워싱턴 DC에서 직조물 장사를 시작했다. 남북전쟁이 발생하자 미합중국 육군과 계약했고 적진을 뚫고 면화를 북군에게 보내줘 큰 이득을 얻었다.

이후 뉴욕시로 이주해 브로커일을 시작했다. 당시 이리 전쟁이라 불리는 이리 철도를 두고 기존의 사장 대니얼 드루, 주주 제이 굴드와 인수하려는 코닐리어스 밴더빌트와 경합을 벌이자 드루, 굴드와 연합해 등록되지 않은 미등록 불법 주식을 마구 찍어내어 뉴욕증권거래소 및 미국 재무부에 신고하지 않고 시장 내외에서 주식을 마구 팔아치우며 밴더빌트의 공개매수 시도를 정말 기어이 좌절시킨다.

이후 이리 철도를 매각해 이득을 얻고 이탈하며 밴더빌트를 철저히 농락했다. 이후 굴드와 연합해 드루의 재산을 뺏으며 일약 스타가 된다.

1869년 올버니-서스퀴헤너 철도를 뺏기 위해 사장인 조셉 H. 램지와 폭력배를 동원한 패싸움을 벌였으나 뉴욕주 경찰, 민병대가 진압했고 당시 존 피어폰트 모건이 램지편을 들며 패배했다.

이후 정부를 상대로 금 투기를 시작했다. 당시 대통령이였던 율리시스 그랜트의 처제인 에이블 코빈을 통해 그랜트와 만나 통화팽창 정책을 주장했고 금을 풀자 금을 매입하기 시작했고 코빈을 통해 금 매각을 중지시켜달라는 편지를 쓰게했다. 이에 자신이 속아넘어간 사실을 깨달은 그랜트는 재무장관 조지 보트웰에게 금 매도를 지시했다. 1869년 9월 24일 금요일 금값은 135달러까지 떨어졌으나 굴드, 피스크는 160달러를 제시하자 뉴욕 금거래소는 혼란에 빠졌고 굴드에게 돈을 걸었던 소액투자자들은 폭도로 변했고 굴드, 피스크는 도망갔다. 돈을 받지 못한 소액투자자들은 빚더미에 앉아 정신병자가 되거나 총으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 검은 금요일 사건이라 불린다.

이후로도 굴드와 좋은 관계를 맺다가 내연녀 조시 맨스필드와 삼각관계에 있었고 사업적으로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에드워드 스타일스 스톡스와 돈 문제로 인해 다투다가 우발적인 총격 두 발을 맞고 사망했다.[1]


[1] 스톡스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관련 기업인이 도와줘 징역 4년만 살고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