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13:24

제이 굴드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제이 굴드
Jay Gould
파일:1000136035.jpg
본명 제이슨 굴드
Jason Gould
출생 1836년 5월 27일
미국 뉴욕주 록스버리
사망 1892년 12월 2일 (향년 56세)
미국 뉴욕주 뉴욕시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기업인
자녀 6명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기업인. 철도분야에서 투기활동으로 악명이 높았다. 도금 시대에 악명이 높았던 강도 귀족 중 한 명이다.

2. 생애

제이 굴드는 뉴욕 록스버리에서 낙농장을 운영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 속에서 성장했지만 외할아버지인 알렉산더 T. 모어가 사업가여서 호바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하기도 했지만, 이내 그만두고 철물상에서 일하기도 했다. 철물상에서 일하면서도 굴드는 개인 공부를 지속했고, 1854년 뉴욕 얼스터 카운티 지도를 자체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살던 와중 지도 제작 조사 와중 만났던 사람과 함께 가죽 무두질에 사용되는 탄닌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이 잘 되어가자 굴드는 기드온 리[1]의 사위이자 가죽 도매상인 찰스 모티머 렙과 사업 파트머를 맺었다. 하지만 1857년 공황[2] 당시 렙은 파산했지만 굴드는 철도 산업에 거품이 꼈다는 걸 예측하고 자산을 모은 뒤 거품이 꺼지자 사람들이 급매로 내놓은 부동산을 대규모로 매입했다. 1859년 저리로 철도회사에 투자를 시작한 굴드는 남북 전쟁으로 철도업이 호황을 이루자 계속해서 철도업에 투자를 하였다. 굴드는 남북전쟁 기간 동안 뉴욕시의 철도 주식에 대한 더 많은 투기를 벌였고, 1863년 렌셀러 앤드 새러토가 철도의 관리자로 임명되었다.

한편 대니얼 드루라는 인물은 미국에서 가장 성장성이 높았던 철도회사의 주가를 조작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그래서 드루는 3명의 인물을 끌어들이는데 그 중 한 명이 제이 굴드였다. 또한 대니얼 드루는 철도왕이라 불렸던 강도 귀족 코닐리어스 밴더빌트와 함께 뉴욕-할렘 철도 사업 인가를 받기 위해 주의회와 시의회 정치인에게 뇌물을 뿌렸고, 인가가 나자 이리 철도의 주가는 폭등했다. 그러나 드루가 작전단을 조작해서 주가를 끌어내리려고 하자, 코닐리어스는 화가 나서 드루 일당과 한판을 벌이는데, 세간에서는 이를 이리 전쟁이라 불렀다.

이리 전쟁에서 굴드는 대니얼 드루, 제임스 피스크와 함께 폭력배를 동원하여 이리 철도의 주식을 강제로 매입해 이사회를 장악했다. 이사회를 장악한 굴드와 파스크는 자신의 스승인 대니얼 드루를 배신했다. 이들 2명은 불법 신주를 회사의 자금으로 이용해서 공매도 작전을 벌이는 드루의 결제 물량 일부를 빼돌려 가격 급등을 방관해 드루에게 130만달러의 손실을 입게 만들었다. 또한 이 시기 굴드와 피스크가 당시 뉴욕시를 지배하던 미국 민주당 정치 기구 태머니홀과 끈끈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굴드와 피스크는 든든한 뒷배를 두자 금 시장을 장악하기로 결정한다. 굴드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율리시스 그랜트의 여동생 버지니아의 남편인 아벨 코빈과 짝짜궁해서 금을 최대한 많이 사들이고 가격을 높이 끌어올린 다음에 되팔아서 막대한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 1869년 9월 24일 금값이 온스당 145달러에서 162달러로 치솟았다. 이는 굴드와 피스크의 가격 조작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자 당시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은 시중에 금을 풀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로인해 금값은 순식간에 폭락했다. 이 사건의 배후인 굴드와 피스크는 기소가 되었지만, 태머니 홀의 실세인 윌리엄 M. 트위드의 입김이 닿아있는 판사로 인해 면죄부를 받았다. 이 금투기 사건으로 굴드는 언론에서 마음대로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인물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일로 이리 철도에서 손을 떼고 서부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3] 1873년 유니언 퍼시픽 철도 주식의 매집해 경영권을 장악한 굴드는 1879년 까지 주요한 서부 철도를 장악하는데 몰두하였는데, 그 장악률이 당시 미국 철도의 9분의 1이었다. 그렇게 사업에 몰두하던 제이 굴드는 세인트루이스 철도 협회를 조직해, 이를 장악 동서철도의 병목현상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892년 결핵으로 사망하였다.


[1] 제60대 뉴욕시장이자 뉴욕 정재계의 거물[2] 미국에서 촉발된 세계 최초 대공황으로 당시 첨단 산업이었던 철도 산업에 대규모로 투자했다가 거품이 꺼져버린 사건[3] 캐나다에 살던 고든-고든 경에게 백만 달러의 사기를 당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