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업계의 수호자들." THE PROTECTORS OF OUR INDUSTRIES. |
초창기의 성공적인 유머 잡지 퍽(Puck)에서 강도 귀족을 묘사한 일러스트. 버나드 길럼(Bernhard Gillam) 作. 당시 산업계의 고된 노동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던 노동자들과 그 뒤에서 호의호식하는 부자들(왼쪽부터 사이러스 필드, 제이 굴드, 러셀 세이지(뒷모습), 코닐리어스 밴더빌트)을 동시에 풍자했다. |
1. 개요
Robber baronIf You Have to Ask the Price, You Can't Afford It.
"가격 같은 걸 물어보는 사람은, 이런 걸 살 수 없다."[직역]
존 피어폰트 모건[2], 자신이 소유한 요트 가격을 묻는 지인에게[3]
"가격 같은 걸 물어보는 사람은, 이런 걸 살 수 없다."[직역]
존 피어폰트 모건[2], 자신이 소유한 요트 가격을 묻는 지인에게[3]
'강도 귀족'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일명 도금 시대에 트러스트를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미국의 대부호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도적 귀족이라고도 부른다.
2. 등장 배경
영어의 '강도 귀족(Robber Baron)'은 독일어 '강도 기사(Raubritter)'에서 온 말이다.[4] 중세 시대에 몰락한 귀족과 가난한 기사들이 강도로 돌변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강도 귀족이라는 용어는 13세기 독일의 라인강 일대에서 불법 통행세를 걷던 군소 영주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당시에 라인강에서 통행세를 걷으려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13세기 중반 이후 대공위시대 등의 혼란을 거치며 황제의 통제력이 약해지자 라인강 유역의 군소 영주들이 주요 길목마다 성이나 탑을 세우고 통행세를 걷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큰 피해를 본 상업도시들은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 강도 귀족들의 성을 파괴하는 식으로 맞섰다. 따라서 강도 귀족들의 수가 크게 줄었지만, 중세 말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남북 전쟁 이후의 재건시대에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전란기의 혼란을 틈타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부를 키운 거대 자본가들이 나타나자, 미국에서 강도 귀족이라는 단어가 재등장했다. 그 첫 사례는 1859년에 뉴욕 타임즈가 철도 산업가 코닐리어스 밴더빌트를 비판하기 위해 쓴 기사였다.
3. 특징
미국의 강도 귀족들은 축재를 위해서라면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들은 트러스트로 상징되는 독과점을 자행했고, 용역깡패들을 동원해[5] 주주와 노조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다.[6] 강도 귀족들의 또 다른 특징은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전통적인 귀족들이 부르주아를 견제하고 있었고 사회주의 사상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반면 자본가를 견제할 시스템이 마땅찮았던 미국에서는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압도하는 상황이었다. 고로, 미국의 대자본가들은 정치인에게 돈 좀 찔러주면 어지간한 문제들은 해결할 수 있었다.강도 귀족의 대두로 미국 사회 내에서 나타난 변화도 중요하다. 본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개념은 19세기 중반까지는 자영농(yeoman)으로서의 자족적인 삶을 뜻했다. 하지만 강도 귀족들이 주도하는 '도금시대'에 접어들며 자유로운 자영농이라는 꿈은 허황된 것으로 치부됐고, 대다수의 자영농은 공업 자본주의의 일개 부품인 노동자로 전락했다.[7]
'도금 시대'(The Gilded Age)라는 용어는 소설가 마크 트웨인과 찰스 더들리 워너가 쓴 소설 《도금 시대, 오늘날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겉은 휘황찬란하지만 속은 썩어문드러졌던 당대의 사회상이 지닌 본질을 함축한 용어다.
4. 현대의 사용
1930년대의 대공황 시기에도 미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미국의 자본주의가 비정상적인 발전경로를 거쳤으며 그 이유는 강도 귀족의 탐욕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지지를 받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꽤 영향을 끼쳤지만, 2차대전이 끝난 이후로는 우파 지식인들의 강력한 반론에 부딪히기도 했다.한동안 잠잠하다가 2008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전 세계를 덮치자 월가의 대규모 금융자본가들을 비난하려는 용도로 강도 귀족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또한, 러시아에서 푸틴과 결탁한 올리가르히들에게도 강도 귀족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자유주의가 미약한 러시아에서는 국가권력이 기업권력을 상회하므로 미국의 강도귀족과는 다른 점이 많다.
21세기 들어선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의 거대 기업들의 무차별적인 인수합병과 경쟁기업들을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고사시키는 행위들이 비슷한 맥락에서 비판을 받는 추세이기도 하다. 폴 크루그먼은 아마존닷컴이 물품 공급자들의 납품단가를 협박을 통해 고의적으로 낮추는 식으로 유통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뉴욕 대학교 MBA 교수인 스콧 갤러웨이는 애플, 구글, 아마존닷컴, 페이스북을 이른바 'BIG FOUR'로 규정하고[8] 이들 회사의 시장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스탠다드오일과 비슷하게 기업분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유력 정치인 중에서는 엘리자베스 워런이 비슷한 맥락에서 거대 IT 기업들의 과도한 인수합병을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9] 더 가디언도 테크 기업들의 독과점이 신도금시대(new Gilded Age)가 도래하게 만들었음을 비판하고 이를 지지하는 칼럼을 내놓았다. 결국 상기된 테크 기업 4개사는 반독점법 위반 여부에 대해 사상 최대 규모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될 예정이다. #
이는 IT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디어 업계 역시 넷플릭스, AT&T, 디즈니, 컴캐스트 등의 거대 기업들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이들 기업의 독과점과 더불어 콘텐츠 과잉 생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타임지는 이에 대해 FX의 CEO 존 랜드그라프의 발언을 인용해 텔레비전의 도금 시대가 왔다고 표현했고 더 가디언은 디즈니의 21세기 폭스 인수에 대해 영화 산업의 다양성과 개성을 죽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하는 칼럼을 내놓았다.
엘리자베스 워런과 버니 샌더스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21세기 폭스 인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거대 미디어 기업 또한 테크 기업과 비슷하게 반독점법에 의한 규제를 받아야할 필요성이 있음을 역설했다. # #
조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는 바이든의 부자 증세 정책에 찬성하는 '애국하는 백만장자들(Patriotic Millionaires)'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
대전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 등장하는 가공의 국가인 자운을 지배하는 지배층이자 군벌인 화공남작의 모티브로 추정된다.
그리고, 미국 소설의 명작으로 유명한 위대한 개츠비도 자본주의가 만든 강도 귀족 시대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다.
5. 해당 인물
- 철도
- 대니얼 드루 (선박)
- 에드워드 헨리 해리먼
- 제이 굴드
- 제이 쿡 (+채권)
- 찰스 크로커
-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선박)
- 석유
- 언론
- 조셉 퓰리처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1] : 본래 1대 신문왕은 죠셉 퓰리처였고, 황색언론의 창시자로 이름이 높았으나, 나이가 들며 2대 신문왕 허스트의 도전에 패배하고 건강이 나빠지면서 참회, 저널리즘을 중시하는 퓰리처상을 창시하기에 이른다.
- 금융 : 존 피어폰트 모건
- 그 외
[직역] 가격을 물어봐야 한다면, 살 여유가 없는 것이다.[2] JP모건 코퍼레이션을 창업해 미국 금융업계를 독점하여 천문학적인 자산을 축적한 대부호.[3] 이 말이 어찌나 당시 미국 사회에서 화제가 됐던지 그가 죽은 뒤 남긴 재산이 8000만 달러라는 발표가 나오자 록펠러는 "그 사람, 생각해 보니 부자도 아니었구만(To think, he wasn't even a rich man.)" 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기준의 미국에서 8천만 달러가 어느 정도냐면 이 사람이 남북전쟁 때 후방 보급을 담당했던 북군 대령 새뮤얼 듀폰(듀폰 케미컬 가문 사람 맞다)과의 친분을 통해 전황을 파악하여 북군과 남군 사이에서 금 투기를 해 벌어들였던 돈이 16만 달러인데 그게 현재 시세로 한화 2천억 원에 달한다. 그러니 모건의 유산은 현재 기준으로 한화 100조 원에 해당한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문재인 정부가 기업지원책으로 긴급편성하기로 했던 공적자금 규모가 이 정도니 한 나라를 움직일 만한 유산을 남겼다. 허나 그것도 당시 모건-록펠러-듀폰 커넥션(남북전쟁 때 북군 화약을 비롯한 각종 군수물자를 독점생산했다.)의 일원이던 록펠러 앞에선 별 거 아니었다.[4] 킹덤 컴: 딜리버런스나 다크랜드처럼 중세 독일과 그 인근 지역을 배경으로 한 게임에서 강도 기사가 적으로 등장한다.[5] 이러한 용역 깡패 가운데에서도 일종의 자경단 내지 군벌인 핑커튼이 악명을 떨쳤다.[6] 당시의 증권은 실물증권이었고, 주식 역시 소유자가 실물 형태로 보유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강도 귀족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주주나 경쟁 상대가 있으면 무력으로 위협하거나 살해해 주식을 강탈하곤 했다[7] 에릭 홉스봄의 <자본의 시대> 8장 참조.[8] 여기에 넷플릭스만 더하면 MANGAFAANG가 된다. 이중 페이스북은 사명을 메타로 변경했다.[9] 원문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애플과 컴캐스트도 규제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10] 이후 J.P. 모건에게 카네기 철강 지분을 넘기고 자선사업가가 되었다.[11]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는데 언론재벌임에도 불구하고 반 트러스트, 진보주의 성향이었다. FDR 당선 후에야 공화당에 입당한다.[12] 존 애스터 본인이 어마어마한 미국의 부자이긴 했지만, 그 자신은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의 인물로, 강도귀족을 가리키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산업 부흥기 미국'의 부자는 아니다. 오히려 그 시기에는 후손인 존 제이콥 애스터 4세를 비롯한 애스터 가문이 호텔을 비롯한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했다.[13] 헨리 포드와 마찬가지로 사생활까지 완전히 깨끗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었을 뿐 독과점이나 노동착취, 편법 등의 부정과 횡포가 거의 없고, 신앙적으로도 훌륭한 케이스라 다소 애매하고 모호한 부분이 있다.[14] 상술된 록펠러나 카네기와 비슷한 급의 부호였지만 도덕적으로 사적인 문제가 있을지언정 독과점이나 횡포가 그리 심하지 않아서 다소 애매하다. 자동차 업계에는 GM, 닷지 등 경쟁자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노동 강도는 올렸을지언정 봉급은 타사 대비 1.5~2배를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