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뉴욕주 스톡브리지의 농장에서 태어났고 골드 러시 시기 캘리포니아주에서 금으로 8,000달러의 이득을 챙겼다. 이후 밀워키, 신시내티에서 비누사업을 시작했다.
남북 전쟁이 발발하자 시카고에서 염장고기를 북군에게 납품해 큰 돈을 벌었고 1863년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아머 사를 창립해 육가공업을 확대했다. 전쟁 이후로도 미군에게 염장고기를 납품했고 가공한 부산물을 통해 세제, 비누를 만들어 시중에 판매했다.
1899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으며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 기부금을 전달하기도 했고 1901년 사망했다.
하지만 아머 사는 급여가 짠 것으로 악명이 높았고 노동자들의 복지를 거의 인정하지 않아 당시에도 블랙기업이라는 혹평을 받았고 미국-스페인 전쟁당시 비위생적인 염장고기를 납품해 수천 명의 미군이 식중독에 시달리는 비전투손실을 겪었다. 이에 정부는 육가공업체의 위생에 관련된 규제를 제정했고 이에 많은 손실을 겪고 아머 일가는 1923년 경영권을 매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