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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01:46:32

제프리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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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px-Angl-Canterbury-Arms.png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
파일:제프리 피셔 초상화.jpg
제98대 윌리엄 템플 제99대 제프리 피셔 제100대 마이클 램지

<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제99대 캔터베리 대주교
제프리 프랜시스 피셔
Geoffrey Francis Fisher
파일:제프리 피셔 초상화.jpg
출생 1887년 5월 5일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잉글랜드 레스터셔 하이엄 온 더 힐
사망 1972년 9월 15일 (향년 85세)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매장지 잉글랜드 도싯 트렌트 세인트 앤드류 교회
재임기간 체스터교구장
1932년 ~ 1939년
런던교구장
1939년 ~ 1945년
제99대 캔터베리 대주교
1945년 ~ 1961년
서명 파일:제프리 피셔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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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부모 아버지 헨리 피셔
어머니 캐서린 피셔[1]
형제자매 10명 중 막내
배우자 로자몬드 피셔
자녀 슬하 6명[2]
학력 말버러 컬리지
옥스퍼드 대학교 엑스터 컬리지
웰스 신학대학
종교 성공회 (잉글랜드 국교회)
부제서품 1912년
사제서품 1913년
주교서품 1932년 9월 21일
서명 파일:제프리 피셔 서명.svg }}}}}}}}}
1. 개요2. 캔터베리 대주교 시절
2.1. 엘리자베스 2세 및 왕실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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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제프리 피셔 캔터베리 대주교.jpg
The Most Reverend[3] and The Right Honourable.[4]
Geoffrey Francis Fisher
제프리 피셔(Geoffrey Francis Fisher)는 제99대 캔터베리 대주교로서 전임 캔터베리 대주교윌리엄 템플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선출되었다.

2. 캔터베리 대주교 시절

고교회 앵글로 가톨릭보다는 저교회 복음주의자였지만 어느 쪽도 우위에 있을 권리가 없다고 믿은 피셔 대주교는 캔터베리 대주교 재임기간 동안 교회 간 연합에 주력했다.

다른 기독교 교회들과의 대화에 힘썼는데, 영국 종교 개혁[5] 이래 처음으로 가톨릭 교황을 만난 캔터베리 대주교이기도 하다.

성공회 내에서도 잉글랜드 국교회의 행정을 개편하고 타국가 성공회와의 관계를 강화했다.

이혼•동성애•수에즈 위기•핵폐기 등 사회적 문제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2.1. 엘리자베스 2세 및 왕실과의 관계

피셔 대주교는 캔터베리 대주교 재임기간 동안 엘리자베스 2세의 결혼과 대관식을 주례한 인물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동생인 마거릿 로즈 공주가 이혼한 전력이 있는 남성인 피터 타운젠드와 연인 관계를 맺으면서 논란이 되었을 때에도 캔터베리 대주교직에 있었다.[6] 마거릿 공주는 결국 결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편, 제프리 대주교는 왕실 주요 구성원들의 신학적 입장에 대해 이야기한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ey’re all Low Church’, Dr Geoffrey Fisher, the Archbishop of Canterbury who crowned her, once told James Pope-Hennessy. ‘It’s because they come from abroad.’ Although the Queen Mother and Princess Margaret were more High Church, they were paradoxically less friendly towards Roman Catholics. But, like the Queen, they maintained the Low Church tradition of receiving Holy Communion relatively infrequently, and then always in private.
'그들은 모두 저교회입니다.' 그녀에게 왕관을 씌운 캔터베리 대주교 제프리 피셔 박사가 제임스 호프-헤네시에게 말했다. 그들은 해외에서 왔기 때문입니다.[7] 모후(母后)와 마거릿 공주고교회파에 더 가까웠지만, 역설적으로 로마 가톨릭교도에게는 덜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여왕처럼 그들은 성찬을 비교적 드물게, 그리고 비공개로 받는 저교회 전통을 유지했다.
# 스펙테이터, <Why Queen Elizabeth was a Presbyterian when she died>

[1] 혼전 성은 리치몬드(Richmond).[2] 이름은 각각 헨리, 프랜시스, 찰스, 험프리, 로버트, 템플.[3] 주교 본인에 대한 경칭[4] 캔터베리 대주교 본인에 대한 경칭[5] 헨리 8세에 의해 영국 국교회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한 것.[6] 당시 잉글랜드 국교회 교회법에서는 이혼한 사람의 국교회에서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영국 왕족은 스코틀랜드 장로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7] 독일계인 현 영국 왕실의 혈통을 의미한다. 왕조 명칭이 아예 작센코부르크고타였던 시절도 있었다. 바이에른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독일은 역사적으로 개신교(루터교회/개혁교회) 지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