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C0000><colcolor=gold> 제88독립보병여단 88-я отдельная стрелковая бригада 苏联远东方面军独立第88步兵旅 88th Separate Rifle Brigade | |
창설일 | <colbgcolor=#f5f5f5,#191919>1942년 7월 22일 |
해산일 | 1945년 10월 12일 |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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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소련 육군 |
역할 | 보병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수뇌부 | |
여단장 | 소장 저우바오중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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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여단 소속 김일성 (제일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1] |
2. 상세
1930년대 만주에서 활동하다 일본군의 토벌에 쫓겨 소련으로 망명한 동북항일연군 잔존세력들을 수용하기 위해 1942년 7월 창설한 부대이며, 북한의 김일성을 비롯한 "혁명 1세대"의 모태이다.김일성, 김책, 최용건, 안길, 최현, 강건, 류경수, 김일, 오진우, 리을설, 최광 등 만주파로 지칭되는 88여단 출신들은 훗날 당의 권력을 장악하는 북한 내 핵심세력이 된다.
부대 지휘관은 저우바오중이었다. 소련군 장교로 복무하던 당시 김일성은 '진지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계급은 '대위'였다. 부대원 중 90%는 중국인이었고, 10%는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김책과 최용건은 김일성 보다 계급이 더 높은 상관이었다.
해방 이후 소련군의 김일성 대위는 스탈린에 의해 북한의 지도자로 임명되었고 #, 88여단 출신의 만주파는 훗날 북한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북한의 지배세력이 된다.[3]
북한 정권 탄생 과정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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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평양 소련군 장교들에게 적기훈장을 수여받는 김일성 대위[4] |
3. 기타
[1] 1943년 10월 5일 야전 훈련 후 촬영한 제88여단 대원 사진[2] 또다른 명칭으로는 '88국제여단', '항일연군 교도여단’, ‘소련 원동방면군 제 88보병여단’, ‘8641보병특별여단’이 있다.[3] 그 중에서도 88여단의 조선공작단이라는 조직이 중심이 되었다. 단장은 최용건이 맡았고, 김일성은 정치군사 책임자였다. 김책은 이 둘을 관리했다. 이 조직의 본래 목적은 정권 장악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김일성이 스탈린에 의해 지도자로 발탁되면서 이 조직을 중심으로 정권이 꾸려졌다.[4] 양 옆에 있는 소련군 장교들은 김일성 보다 계급이 높은 미하일 강 소령과 그리고리 메클레르 중령이다.[5] 소련군정이 조선공산당에 찬탁 지령을 내리고 미소공동위원회에서 반탁운동을 하는 우익세력을 민주임시정부에서 제외시킬 것을 주장한 이유도 김일성을 민주임시정부 수장으로 앉히기 위함이었다. 찬탁/반탁 대치 상황은 소련군정이 일으킨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