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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FF>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제7대 데스포티스 Giovanni II Orsini | 조반니 2세 오르시니 | |
칭호 | 데스포티스 |
출생 | 1300년 |
사망 | 1335년 (향년 34~35세) |
재위기간 | 1323년 ~ 1335년 |
가문 | 오르시니 |
휘 | 조반니 오르시니(Giovanni Orsini) 요안니스 콤니노스 두카스(Ἰωάννης Κομνηνός Δούκας) |
아버지 | 조반니 1세 오르시니 |
어머니 | 마리아 앙겔리나 콤니니 두케나 |
배우자 | 안나 팔레올로기나 |
형제 | 니콜로 오르시니 |
자녀 | 니키포로스 2세 오르시니 토마이스 오르시니 |
종교 | 가톨릭 → 정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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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제7대 데스포티스.2. 생애
나폴리 왕국의 군주 카를로 2세의 신하로서 케팔로니아 궁정백국을 통치한 조반니 1세 오르시니와 이피로스 군주 니키포로스 1세 콤니노스 두카스의 딸 마리아 사이의 차남으로 출생했다.[1] 1323년 케팔로니아 궁정백이자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데스포티스인 형 니콜로 오르시니를 암살하고 형의 직위를 탈취했다. 그러나 1324년 그라비나의 조반니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동로마 제국과 전쟁을 벌이러 진군하던 중 케팔로니아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아버렸다. 이에 안드로니코스 2세와 평화 협약을 체결해 동로마 제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이피로스의 통치권을 인정받았다. 또한 미하일 2세 콤니노스 두카스의 아들인 디미트리오스 두카스의 손녀 안나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했으며, 정교회에 입교했다.1331년 브리엔 공작이자 아테네의 명목상 공작 고티에 6세는 타란토의 필리포 1세와 연합하여 이피로스를 협공했다. 고티에 6세가 아르타를 포위하여 압박을 가해오자, 조반니는 필리포 1세에 접근하여 그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군대를 물리게 하였다. 1332년, 스테판 가브릴로풀로스가 사망한 후 공위 상태가 된 테살리아를 공략했으나, 안드로니코스 3세가 테살리아의 동부 지역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귀족들은 황제의 명을 따르자는 파와 필리포 1세와 손잡고 동로마 제국에 대항하자는 파로 갈렸다. 그는 어느 쪽을 택할지 결정 못하다가 1335년경 갑자기 사망했다. 향간에는 그의 아내 안나가 아들 니키포로스 2세 오르시니를 한시바삐 군주 자리에 앉히고 섭정을 맡으려고 독살했다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증거는 없다.
[1] 때문에 그는 훗날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군주에 오르고도 케팔로니아 궁정백국의 넘버링을 이어써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 1세가 아닌 2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