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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7 04:21:53

조숭(삼국지)/기타 창작물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조숭(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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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사연의를 제외한 다른 창작물에 등장하는 조숭을 다루는 문서.

2. 게임

2.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국지 시리즈/장수(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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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영걸전 시리즈

KOEI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그저 아들의 성공을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온다. 물론 등장하자마자 바로 암살당한다(...)

2.3. 토탈 워: 삼국

희귀 지휘관으로 등장하며 천명에서는 개인 세력을 갖고 있으며, 군웅할거에서는 조조의 아버지로 나온다. 조조로 플레이하면 조숭의 세력과 연방이 가능하며, 군웅할거에서는 몇 턴 뒤에 조숭이 죽고 도겸과의 전쟁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게임에서 장개는 공도 세력에 속해있다는 것. 그 딜레마를 없애는 방법도 있는데 좀 패륜적인 방법이지만 조숭을 추방을 시키든 방출을 시키든 내쫓으면 이벤트가 발동하지 않는다. 조조 세력 내에 조숭이 살아있으면 발동하는 이벤트로 보인다.

3. 만화

3.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파일:전략조숭.jpg

조조가 어릴적에 이미 백발노인처럼 그려졌다. 겉모습만 보면 조숭이 아니라 자신의 양아버지, 즉 조조의 양할아버지 조등처럼 보일 정도, 그냥 이 만화 초반부 노인 캐릭터들은 거의 다 이렇게 생겼다. 아들 조조를 이뻐하는 모습이 나온다.

3.2. 삼국전투기

그냥 고양이 귀를 단 금발에 콧수염 난 중년남으로 나온다. 큰 비중은 없고, 그냥 도겸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가 도겸이 실수로 죽여버린 것으로 묘사됐다.

3.3. 삼국지톡

파일:조숭.png
파일:젊은조숭.jpg
노년 젊은 시절

조조의 아버지. 등장할 때마다 아들에게 화를 내거나 발길질을 한다. 본인 말로는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홀로 아들을 업어 키웠는데, 그 아들이 스스로 명줄을 재촉할 짓을 골라 하고 다니니[1] 속이 터져 그런다고. 조조에게 쓸데없는 짓 말고 가늘고 길게 살라고 꾸짖는 걸 보아, 불의와 타협하고 권력에 영합하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생명을 부지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인물상이다.
그래도 아들을 사랑하는 것 자체는 진심이라, 후레자식이니 망둥이 같은 놈이니 하며 구박했으면서도 연락처는 내새끼라고 저장해 두었다. 조조도 아버지 마음을 모르지 않는지 출세하자마자 아버지부터 챙기려 하지만 서주 땅에서 뜻밖에 강도질을 당해 죽고 만다. 하필이면 문제의 강도가 서주자사 도겸의 부하였던 터라, 조조는 이성을 놓고 서주를 침공한다.[2]
시즌 5 36화에서 하후돈의 과거 회상에 한 컷 등장하며, 하후돈은 조조가 조숭을 많이 닮았다고 평한다.[3] 시즌 7에서 승상으로 즉위한 조조가 수염을 기르고 등장하는데 조숭이 다시 살아왔냐는 베댓이 있을 정도로 외모 또한 아버지와 판박이다.

3.4. 창천항로

성우는 야나카 히로시. 조조가 의병을 일으킬 때 사재를 털자, 조숭은 금괴에 대하여 조조가 삼공에 올랐을 때 조부(조등)가 물려준 것이라 하거나 이 재산으로는 모아봤자 5,000밖에 안 된다면서 그런 작은 힘으로 무엇을 하냐면서 만류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사서상 조숭의 재산은 장개한테 살해되기 전에도 수레 100대가 동원될 정도로 컸다고 하니 이는 정사와 다르지만 작품내에서는 원소나 다른 군웅과는 다르게 관직이 없어 정규군을 동원하지 못한다는 언급과 관직을 정가의 10배나 주고 샀다고 조인이 비난하는 장면이나 여백사[4]가 한 언급을 보면 재산을 탕진했다는 설정인 듯 하다. 일단 성격 자체는 사서에서의 언급처럼 모난 데 없지만 어리버리했는지 조숭부터 야심이 없다고 디스했으며 조조가 집에 돌아오자 이번엔 자기 재산을 털려 왔냐며 걱정할 정도로 그릇이 작은 것으로 묘사된다. 그 후 역사에서처럼 조조가 자리를 잡고 부르자 의기양양하게 서주를 지나가다 사망한다.

3.5. 고우영 삼국지

조숭이 죽기 직전에 조조가 죽인 여백사(조숭의 친구기도 하다)의 귀신을 보는 호러 연출이 나온다.

4. 기타

4.1. 배한성, 배칠수의 고전열전 삼국지

조숭과 다른 가족들이 라면을 먹던 도중 조숭의 실수로 장개에게 라면 국물이 튀자, 이에 격분한 장개의 부하들이[5] 이성을 잃고 칼부림을 저지른다.

4.2. 비열한 성자 조조

자신의 가문을 흥성할 수 있게 온갖 정치 공작을 벌이는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젊은 시절의 조조와 계속해서 대립했다.[6]

4.3. 평설 인물 삼국지

굉장한 바보로 묘사된다. 실속이 없는 명예직인 삼공, 그 중에서도 최하위인 태위 관직을 정가 1,000만 전의 10배인 1억 전을 주고 샀다. 그 와중에 더 높이 불렀어야 된다면서 후회하는 영제까지 나오니 그 장면만 생각해본다면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면서 조숭의 어수룩한 바보성이 강조되었다.

또한 그의 최후가 진행되는 과정은 《삼국지연의》와는 아주 다른데 도겸장개에게 조숭을 납치하라고 시켜서 도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장개에게 저항하다가 죽는 걸로 묘사된다. 이후 도겸은 고기방패로 조조에 맞서지만 조조는 서주 대학살을 일으키며 도겸의 목을 따려고 발악했고 결국 도겸은 유비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야반도주 했다.

4.3.1. 태위직 1억전 매관매직

영제 시기에 매관매직이 성행했는데 각 관직마다 정가가 정해져 있었다. 금액도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는데 기준은 당시 통용되던 주화인 동전 기준이고, 은전으로 환산하면 1/100, 금전으로 환산하면 1/2000로 치환된다. 당연히 저 정도 자리에 오르려면 주화가 아닌 금괴로 지불했겠지만 일부러 금액이 많아 보이도록 하기 위해 동전으로 표기한 것. 더하여서 확실한 보증인만 있다면 가격의 일부를 후불하거나 신용카드 분할납부 같이 후불이 가능했다고 한다.

조숭은 위에 언급했듯이 실속이 없는 명예직인 삼공, 그 중에서도 최하위인 태위 관직을 정가 1,000만 전의 10배인 1억 전을 주고 샀다. 그 와중에 더 높이 불렀어야 된다면서 후회하는 영제까지 나오니 그 장면만 생각해본다면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면서 조숭의 어수룩한 바보성이 강조되었다.

그래서 차라리 그 돈으로 삼공 중에서 가장 직위가 높고 전한 시대의 승상의 대체관직 겸해서 만들어져서 어느 정도의 권력도 있는 사도 관직을 사거나 아예 실권이 있고 군사력 동원이 가능한 대장군 관직이라도 샀으면 바보 소리는 안들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8]
4.3.1.1. 세상이 그대로일 줄 알았는데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조숭이 단순한 바보짓을 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고 복합적인 관점으로 생각해야 한다.

실제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 때 사람들은 삼국시대과 같은 대혼란이 온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단지 십상시 정도만 제거하고 영제을 잘 보좌하며 그의 후계자를 제대로 키운다면 후한이 정상화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원소나 조숭의 아들 조조도 진짜 난세가 펼쳐지기 전까지는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등이 가문을 창업하고 2대째인 조숭이 해야 할 것은 가문의 명예를 높여서 환관가문이라던지 졸부라던지 하는 평가를 희석시키고 3대째인 조조 이후에는 명가의 반열에 올라가서 후한의 귀족계층으로 확실하게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대삼공이라고 불리는 원소네 집안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그에 따라 조숭은 나름대로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이다.

그리고 가문의 영예를 높이려면 고위직을 역임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삼공은 정상적인 황제가 다스리는 경우에는 조숭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얻지 못할 최고위직들이었다. 보통은 조숭이 중간정도의 직위를 역임하고 조조 때에 이르러서야 도전해볼만한 관직인 것이다. 이것도 매우 빠른 테크인데 황제인 영제가 관직을 매관매직한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조숭부터 삼공이 되고 조조가 2대로 삼공을 지내면 조조 아들들도 능력이 좋을 것이니 조비대에는 3대가 삼공이 되므로 원소네 가문처럼 최고위 가문은 아니겠지만 나름 알아주는 후한의 문벌귀족이 될 수 있다.

조숭의 경우에는 조등 덕택에 워낙 돈이 남아돌아서 죽기 직전에도 재보를 가득 실은 수레가 100여 대 있었다고 하니 절대로 무리한 지출을 하여 관직을 산 것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수도인 낙양과 그 근처에만 있었고 실무를 모를 가능성이 높으므로 귀찮거나 부담스러운 나머지 실권이 있는 태수나 사도직은 본인의 능력을 생각해서 마다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태수직이 비싼 이유는 실권이 있어 백성들을 착취해 막대한 재산을 쌓을 수 있어서인데, 조숭같은 부자 입장에선 '백성을 수탈할 수 있다'는 것은 별 메리트가 없다.

대장군 같은 관직은 실력도 있어야 하고 군사력을 다루기 때문에 돈 있다고 아무나 시켜주는 관직이 아니며 정치적인 능력까지 있어야 하므로 자기 아들인 조조급 능력이 있지 않으면 담당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논외대상이다.

정가보다 10배 주고 산 것도 나름대로 잘 한거다. 현직 황제에게 합법적으로 뇌물 주는 것과 마찬가지고 이를 통해 황제의 신임을 받으면서 태위직 산 것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희석시킬 수 있다. 그리고 영제의 사람됨을 보건데 정가 낸 후에 이런저런 이유로 더 뜯김을 당하느니 그냥 한번에 큰 돈 주고 사고 더 이상 말나오는 일이 없게 하는 것도 좋았다. 여기에 더해서 조숭처럼 어마어마한 부자는 정가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뇌물을 질러 자신의 재력과 배포에 대해 과시 +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전략으로 쓸 수도 있다. 어차피 죽을때까지 돈이 남아도는 양반이었으니 말이다.
4.3.1.2. 난세가 모든 것을 망치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난세로 흘러갔고 조숭은 아무런 쓸모 없는 명예직에 거금을 낭비한 셈이 되었다.

차라리 태수자리를 사거나 대장군 밑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군직중 하나라도 매관매직했으면 나았을 수도 있다는 설도 있다. 아무런 공식적인 직함 없이 돈만 가지고 병력을 대규모 동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반동탁연합만 봐도 지방의 태수나 자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관직으로 정규군을 동원해서 동탁을 공격한 것이다. 단 조숭의 태위직은 영제 사망전 이미 파면 되어 날아갔기 때문에 난세가 막 시작 되었을때는 태위직이 이미 없었기도 했을 것이고, 또한 청류파의 수장이였던 아버지를 가진 조숭에게 병권까지 주는 것은 아무리 돈에 미친 영제라도 그리 쉽게 결정할 사항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단 역사적 기록을 봐도 역제가 아무리 막나갔어도 지방관직을 판 기록은 있어도 반란 위험성이 있는 장군직을 매관 매직 했다는 기록은 없다. 지방관직을 사는 선택지도 사실상 청류파로서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숭에게 황제에게서 스스로 멀어지는 선택지는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1] 20세 때는 십상시의 친척을 건드리고(아무리 상대가 위법자였다지만), 이후에는 동탁을 암살하려 시도하는 등. 상단의 이미지가 바로, 조조가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지명수배자가 됐다가 겨우 돌아와서는 거병을 해서 동탁을 치겠다고 말하자 부친이 열불이 터져서 진궁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장면이다. 뒤에서 하후돈이 막아섰기에 망정이지 말이다.[2] 승승장구하면서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명령을 내려놓고 "이 망둥이 효도도 받으셔야지?"라며 실실 웃으며 잔치상을 상다리 부러져라 차리라며 준비하다가, 비보를 듣고 순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있다가 이성이 끊어지는 묘사가 나오고, 군사를 동원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죽은 눈으로 "서주를...칠테다."라고 나지막하게 말한다.[3] 이는 독자들도 모두 인정하는 바다. 조숭을 보면 조조가 늙어서 어떤 얼굴이 될지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나이가 들더니 하는 행동도 아버지를 닮아가서, 아들 조비가 황제를 대놓고 무시하는 발언을 하자 누굴 닮아 이렇게 망둥이 같냐고 구박을 하면서도 아들이 눈치가 빠른 점을 내심 흡족해하는 것이 조숭이 하던 행동과 똑같다.[4] 심각한 조조바라기인 창천항로에서 사실은 조조가 죽이지 않았고 배후에서 재산을 지원하게 한다.[5] 사실 라면을 끓여먹을 때 조숭이 자신의 식구들만 챙겨 먹여서 분노가 폭발한 상태였다.[6] 어쩔때는 조조를 채찍으로 두들겨 팰려다가 변씨가 손자 조비를 보여주며 어그로를 끌어서 겨우 화가 풀어지기도 했다.[7] 참고로 소설 《포청천》에서도 포청천이 현령으로 공무원 일을 시작했는데 뇌물을 안 바쳐서 괘씸죄로 승진을 못 한 걸로 되어 있다. 이게 그저 소설이 아니라 사실에 가까울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데, 50대 후반까지 중상급 관료 정도의 5품에 머물다가 송인종에 의해 한번에 3품으로 승진한 후 개봉부윤(수도의 시장)에 특별 발탁되기 때문이다.[8] 전한 시기 삼공은 승상, 어사대부, 태위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태위직은 공석이 되고, 승상직도 실질적인 권한을 외척들이 임명되던 대장군에게 빼앗기면서 유명무실화되었다가 후한 시기 사도, 사공, 태위로 다시 부활하였다. 그러나 이후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면서 '상국' 관직을 부활시켰고, 조조가 화북을 평정한 이후 승상직을 부활시켜 조정의 일을 좌지우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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