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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슈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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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c131e><colcolor=#ffffff> 조엘 슈마허
Joel Schumacher
파일:조엘 슈마허.webp
본명 조엘 T. 슈마허
Joel T. Schumacher
출생 1939년 8월 29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사망 2020년 6월 22일 (향년 80세)
미국 뉴욕주 뉴욕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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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91cm
부모 아버지: 프랜시스 슈마허(? ~ 1943)
어머니: 마리안 슈마허(? ~ 1965)
직업 영화 제작자, 영화감독
학력 파슨스 디자인 스쿨 (디자인과 / 졸업)
활동 1972년 – 2020년
데뷔 1981년 영화 '엄마가 작아졌어요'[1]

1. 개요2. 경력3. 작품의 특징4. 배트맨을 망친 빌런?5. 배트맨 시리즈 이후6. 사망7. 연출작8. 수상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유명 영화 제작자, 영화감독.

2. 경력

어려서부터 영화광이었던 슈마허는 패션 공과대학교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디자인과 디스플레이를 전공하고 CF 촬영 등에서 미술감독으로 일하다가, 우디 앨런의 도움으로 1973년 영화 '슬리퍼'의 의상 디자이너로 할리우드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그 뒤 각본가로 활동하다 TV 영화 '버지니아 힐 이야기'로 감독 데뷔. 이후 '유혹의 선', '의뢰인', '타임 투 킬', '로스트 보이', '밀애', '폴링 다운'[2] 등의 영화로 연이은 호평을 받으며 유명 감독으로 떠올랐다.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놈의 배트맨과 로빈의 그림자가 생각보다 너무 컸는지, 얀 드봉, 폴 W. S. 앤더슨 등과 함께 구린 영화 전문 감독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본인 역시 기자회견 등 공적인 자리에 설 때마다 계속 배트맨과 로빈 질문을 받았다.

3. 작품의 특징

연출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할리우드에서 손꼽힐 정도의 비주얼리스트. 이런 특징은 위에서 언급한 경력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리들리 스콧하고도 닮았다. 굉장히 힘있고 강렬한 비주얼을 보여준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직접 극장 세트에다가 샹들리에를 떨어트리는 등 뛰어난 비주얼을 선보였다. 그 중에서도 독특한 색의 사용이 특징. 비슷하게 비주얼리스트형 감독으로 분류되는 팀 버튼의 배트맨과 그의 배트맨을 비교하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쉽게 말해 스타일리스트형 감독.

그렇다고 개성 강한 작가형 감독은 아니고 메이저 감독들 중에선 제작자의 의견을 가장 고분고분 따르는 스폰서 친화형 감독이었다. 그래서 제작감독의 불협화음으로 감독이 하차할 경우 그 자리를 이어받아 감독하는 대타 감독으로도 유명했다. 후술할 배트맨 시리즈도 팀 버튼의 대타로 감독한 것이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명성에 비해 작품 간의 기복이 매우, 매우 심한 것으로 악명높았다. 잘 만든 작품은 잘 만들지만, 못 만든 작품은.....

그래서 긴 경력과 독특한 개성을 지닌 명작을 많이 감독했음에도 만만찮게 말아먹은 작품도 많아서(...) 거장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또한 어둡고 충격적인 내용을 만드는 것도 일가견이 있다. 참고로 그가 가장 많이 기용한 배우는 키퍼 서덜랜드.

4. 배트맨을 망친 빌런?

워너 브라더스배트맨 2의 나쁜 흥행실적으로 인해 팀 버튼을 내팽개치고 슈마허를 후속편의 감독으로 올려놓으면서 그의 커리어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가 감독한 배트맨 포에버발 킬머의 열연으로 그나마 봐줄 만하다.'라는 호평도 있었고 상업 영화로서 흥행성적도 좋은 편이었으나[3] 뒤이어 만든 배트맨과 로빈배트맨 영화사상 최악의 망작이라 불리며 물밀듯이 혹평을 맞은데 이어 흥행마저도 미역국을 먹고 말았다.

원래 조엘 슈마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처럼 진지한 작품인 프랭크 밀러 원작의 배트맨 이어 원을 기반으로 어둡고 진지한 정극 스타일의 배트맨 영화를 만들려고 했으나[4] 워너 측은 "어린애들부터 어른들까지 온 가족이 좋아하는 액션물로 만들라"고 압력을 넣었다. 물론 감독으로서 연출을 엉망으로 한 점은 분명히 있기에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워너측에게 잘 보이려 한 건지 자신의 취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밝고 명쾌한 액션영화를 만드는 법을 몰라서 그랬는지 캐릭터 특성을 전부 기묘하게 꼬아놓은 것도 문제였지만 제일 큰 책임은 워너 브라더스에게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촬영하게 된 배트맨 포에버는 감독이 배우들에게 독단적으로 이러한 설정대로 연기를 하라고 밀어붙이기도 했지만, 제작 도중 배우들도 열불을 냈고 서로간의 불화로 감독이 진땀을 빼야 했다. 특히 발 킬머는 자기 기분대로 촬영을 중간중간 빼먹고 감독에게 나가라고 욕을 하는 등 아주 제멋대로였으며, 투 페이스 역을 맡은 대배우 토미 리 존스도 처음에는 간만에 악역을 맡으니 얼씨구나 하고 감독의 지시에 따라 연기했건만 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진지한 악역이 아닌 노망난 것 같은 모습이어서 감독에게는 성질을 부리고 촬영스텝들을 모질게 갈구는 등 현실에서까지 악역이 되어버리는 사태를 초래했다. 그나마 제일 후배격인 짐 캐리가 열심히 연기해주긴 했지만 그래도 원작의 리들러와는 달리 꽤 엇나간 캐릭터였다. 하여간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제작된 포에버는 흥행만 보면 그럭저럭 성공했으나 평론가들로부터 꽤 박한 평가를 받고 DC 코믹스 팬들에게는 원작을 파괴했다는 소리만 듣는 등 수모를 치러야 했다.

여하튼 배트맨 포에버가 자신이 애초에 원하던 게 아니었고 제작때부터 삐걱였지만 의외의 성공을 했으니까 이제는 워너 브라더스도 설득시키고 본격적으로 배트맨 이어 원을 영화화하고 싶어했기에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에게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제작사는 포에버의 성공 이후 더더욱 어린이 취향에 맞춘 "가족용 배트맨"을 원했고, 그에 맞춰 장난감으로 만들수 있는 캐릭터와 발명품들을 더욱 많이 등장시켜라라며 더더욱 압력을 불어넣었다. 제작사의 갑질이 영화를 말아먹은 케이스인 것이다.[5][6]

배트맨과 로빈은 결국 흥행에 참패하고 2차 수익 시장을 통한 본전치기로 만족해야 했다.[7]

여하튼 워너 브라더스 입맛 대로 배트맨과 로빈을 만들고 나서 조엘 슈마허는 이제 진짜로 《배트맨 이어 원》 영화화를 만들게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설득했지만 이미 시리즈를 말아먹은 감독의 아이디어를 워너 브라더스에서 들어줄 리가 없었다. 지옥의 맛을 본 워너는 당연히 슈마허를 잘라 버렸다. 지들이 그렇게 시켜 놓고서는... 이 뿐만 아니라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 두편과 전작들과 달리 배트맨과 로빈은 배트맨 실사 영화 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 한 부문에서도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이후 다크 나이트 라이즈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찬가지로 한 부문도 지명을 받지 못하기 전까지 15년 동안이나 배트맨 시리즈 중 아카데미 시상식에 지명되지 못한 유일한 배트맨 영화였다.

결국 슈마허로서는 굉장히 억울하게 배트맨 영화를 망친 인간이라는 누명을 쓴 셈. 어찌보면 슈마허는 중간보스격이지만 최종보스인 워너 브라더스에게 꼼짝 못하는 불쌍한 빌런인 것이다. 감독 본인도 캐릭터 하나하나를 특이하게 설정하고 배우들에게 자신이 설정한 대로 연기하라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인게 문제이긴 했지만 그래도 워너 브라더스 간섭이 없었으면 이 정도까진 아니었을 것이다.

5. 배트맨 시리즈 이후

'배트맨과 로빈'의 참패 이후에도 감독 활동을 이어갔지만, 어째 '예전 같지 않다'는 평이 많다.

작품이 갈수록 플롯이 진부해지고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평을 들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무리수적인 설정이나 반전을 넣는데 이마저도 까였다.[8] 전반적으로 1993년 '폴링 다운' 으로 정점을 찍은 후 점점 하락세라는 평가.

2000년에 개봉한 콜린 패럴 주연의 베트남 전쟁 영화 타이거 랜드 흥행 성적이 무려 14만 달러. 슈마허의 다른 영화들 보다 제작비가 적은 1천만달러밖에 안 들었던데다 평가도 괜찮았지만 폭망했다.# 3년후에 콜린 패럴 주연의 폰 부스를 통해 간만에 체면치레를 했지만 커리어를 상승세에 올려놓지는 못했다.

2010년대에 만든 작품으론 2011년에 감독한 니콜라스 케이지, 니콜 키드먼 주연의 스릴러 '트레스패스'가 있다.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시즌 1에선 5화와 6화를 맡아 감독했는데, 여기선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전성기 시절의 능력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6. 사망

2020년 6월 22일, 1년간의 암 투병 끝에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7. 연출작


조엘 슈마허 감독 장편 연출 작품
[ 펼치기 · 접기 ]
||<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width=33.3%> 엄마가 작아졌어요
(1981) ||<width=33.3%> DC 택시
(1983) ||<width=33.3%> 세인트 엘모의 열정
(1985) ||
로스트 보이
(1987)
밀애
(1989)
유혹의 선
(1990)
사랑을 위하여
(1991)
폴링 다운
(1993)
의뢰인
(1994)
배트맨 포에버
(1995)
타임 투 킬
(1996)
배트맨과 로빈
(1997)
8미리
(1999)
플로리스
(1999)
타이거랜드
(2000)
폰 부스
(2002)
베로니카 게린
(2003)
오페라의 유령
(2004)
넘버 23
(2007)
타운 크릭
(2009)
트웰브
(2010)
트레스패스
(2011)

상세정보 링크 열기

8. 수상



[1] 연출작으로 데뷔[2]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 영화. 평범한 주인공이 미국 사회에서 스트레스로 폭발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불친절한 한국인 가게 야구방망이로 박살내고 엉터리 사진으로 미끼광고를 하는 패스트푸드에선 점원을 총으로 위협해 제대로 사진처럼 큰 음식을 가져오게 한다든지 길거리를 막는 공사현장을 바주카로 날려버린다. 그렇다고 백인우월주의는 개뿔이라...네오 나치가 동료라고 하자 쏴죽인다. 늬들같이 미친놈처럼 피부빛깔 따위로 잘난 거 따지러 이런지 아냐며...그래서 미국사회 영웅이 되긴커녕 당연히 미국경찰에게 중무장한 당한 채로 수배당하고 결국.... 한국에서는 1993년 당시 추락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가 여론 반발로 금세 막내리고 3년 뒤에 폴링 다운이란 원제로 재개봉했다가 역시 흐지부지 사라졌다. 극중 재미동포 가게 주인이 불친절하고 돈밝힌다고 한국인 비하라고 비난이 많았지만 재미교포 평론가 박흥진은 미국 여론에 비쳐진 한국인 이미지가 그렇게 자랑할 게 있더냐? 라며 현실적으로 잘 봤다고 평했다.[3] 사실 당시에 배트맨 역을 맡았던 발 킬머는 잘생긴 외모로 첫인상은 좋았으나 제멋대로인 성격 때문에 관계자들 사이에서 악평이 자자했다. 오죽하면 제작진이 배트맨과 로빈을 찍을 때 잘생긴 발 킬머를 포기하고 조지 클루니를 캐스팅했겠는가. 오히려 빌런으로 배트맨보다 덜 눈에 띄었을 리들러 역의 짐 캐리가 특유의 캐릭터 해석과 열연으로 눈길을 끌었다. 배트맨 포에버가 짐 캐리의 첫 화제작 마스크로 막 주가를 올리고 난 직후에 개봉한 작품이라 배트맨 포에버의 성공은 짐 캐리 덕이라는 평도 적지 않다.[4] 이 제안은 결국 8년 후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실현된다. 원래 슈마허의 영화들은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2004년에 동명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오페라의 유령, 폰 부스가 있다.[5] 물론 제작사 때문에 말아먹긴 했지만 젖꼭지 슈트와 엉덩이·고간 클로즈업은 본인 취향인 듯하다. 실제로 조엘 슈마허는 게이이다.[6] 사실 배트슈트는 의상담당자가 그리스 조각에서 모티브를 따와 완벽한 근육의 모양을 재현시켰다고 한다. 거기에 원작 코믹스는 나체에 바디페인팅을 바른 모습 같았기에 최대한 원작을 살리고 싶었다고. 그래도 이 슈트를 가지고 충격의 장면들을 만든건 조엘 슈마허 감독이다...[7] 전체적으로는 1억2500만 달러로 2억3800만 달러를 벌었으니 흥행면만 보면 망작같은 실패는 아니다. 2차 수익 시장을 고려하면 오히려 돈을 꽤 번 셈. 다만 흥행이 보증된 배트맨이란 카드로 이 꼴이 났으니...[8] 대표적으로 '넘버 23'인데, 이 영화는 짐 캐리가 악역 연기를 시도한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