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만화가이자 여행가. 1945년 경북 안동시 태생.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여 기업사원으로 입사하였고 고향인 안동시에서 호텔을 운영하였다가 1981년 조선일보 산악레져 전문지 월간 산(山)에 독자만화 투고를 계기로 만화가로 데뷔하였다. 이후 각종 여성지에도 연재하였고, 잡지 새소년에 시골 산골짝의 분교에 부임한 여선생과 산골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손바닥 운동장'[1]과, 성인 만화인 달팽씨, 월간 학습지 다달학습에 훈장과 말썽꾼 학동의 이야기를 다룬 '배육떡의 전성시대'[2]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교과서 만화나 각종 학습만화에 작품을 싣기도 했다. 잘 알려진 대표작 중 하나로는 월간조선에 연재한 '조주청의 경제만평'이 있으며, 그 외에도 유명한 작품은 자동차생활이라는 월간지에 개재한 '사발통 복덕방'이라는 만화다. 사발통 복덕방은 여러 모로 존재감이 있었는데, 대략 80~90년대 자동차생활을 본 세대들은 이 만화만큼은 기억에 남는다고 할 정도. 이 때문인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대우자동차 사보에 "르망 여사", "미쓰 씨에로" 같은 작품을 연재했다.
현재 서울 삼청동에 '청청공방' 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중노년 세대들에게는 만화가 박수동, 윤승운 등과 함께 골프나 여행 만화로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그림체로 잘 알려졌던 작가이기도 하다.
만화가로서 화풍은 박수동, 윤승운 등과 상당히 많이 닮았다. 특히나 윤승운 화백이 맹꽁이 서당을 그렸는데 조주청 화백은 "훈장님 훈장님 우리 훈장님"이란 작품도 있는데다가, 타다 남은 성냥개비 하나에 먹을 찍어 흐늘흐늘하게 그리는 박수동 화백 화풍과 인물 데포르메가 다소 극단적인(특히 팔뚝 다리알통은 굵은데 손발이 매우 작다) 조주청 화백 화풍인 얼핏 보면 비슷하게 보일 정도로 유사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 작가의 작품을 서로 혼동하기도 했다.
만화 외에도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여행가이기도 하며, 그 동안 다녀왔던 세계 여행지 경험담을 바탕으로 여행기를 수록하기도 하였다. 주로 세계 오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여행하면서 신문에도 여행기를 연재했는데 콜롬비아 시골 마을에 가서 아나콘다 가죽을 사온 일도 있다. 술집에 갔더니 벽에 걸려있는 생가죽이 탐나서 팔 생각이 없냐고 대충(기초적인 스페인어밖에 못해서 손짓발짓, 영어까지 써가면서 대화했다고) 물어보자 3백달러 달라는 술집주인에게 비싸다하여 흥정 끝에 75달러와 맥주 3병으로 샀다고 한다. 그렇다고 악착스럽게 값을 깎은 게 아니라 주인이 순진하게(?) 흥정했고 75달러와 맥주만으로도 대단히 만족했다고. 여담으로 맥주를 같이 마시다가 더 기분이다 해서 맥주를 사서 마신 이야기도 책에서 재미있게 썼던 바 있다.
이렇게 재미있게 여행한 것도 있지만 극지방 여행가면서 야생의 순수 영화 생각하고 갔다가 이누이트 현지인에게 쓴소리 듣은 적도 있다. 자신이 만화로 그리면서 내가 망령 들었다라고 자신도 경솔했다고 후회했지만. 자세한 건 이누이트 항목 참고할 것.
[1] 약삭빠르고 머리회전이 빠른 독고출. 듬직하지만 다소 미련한 듯도 한 억보 등이 있다. 박수동 화백의 신판 오성과 한음의 구성을 떠올리게 하는데, 박수동 화백이 구축한 기본 틀이 워낙 탁월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2] 지금 생각해보면 윤승운 화백의 걸작 '맹꽁이 서당'이 연상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서당물학원물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나라에선 박수동 화백의 신판 오성과 한음이 고전일 것이다[3] 1947년생 만화가로 1980년대 자유총연맹에서 발간하던 반공 어린이 잡지(그땐 이런 게 있었다)인 "어린이세계"에 "꼴레의 여행" 등을 연재했다. 즉 높으신 분들과도 어느 정도 연줄이 있던 사람인지라 훗날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참고로 조갑제랑 이름이 헷깔려서인지 90년대말이나 2000년대 초반,인터넷에서 월간조선 조관제 편집장이라고 글이 올라오다가 수정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