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8DAF9><colcolor=#000> 노스티츠라이네크 백작부인 조피 폰 호엔베르크 Fürstin Sophie von Hohenberg | |
이름 | 조피 마리 프란치스카 안토니아 이그나티아 알베르타 폰 호엔베르크 (Sophie Marie Franziska Antonia Ignatia Alberta von Hohenberg) |
출생 | 1901년 7월 24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왕국 코노피슈테 성 |
사망 | 1990년 10월 27일 (향년 89세)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주 탄하우젠 |
배우자 | 프리드리히 폰 노스티츠라이네크 백작 (1920년 결혼 / 1973년 사망) |
자녀 | 에르바인, 프란츠, 알로이스, 조피 |
아버지 |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
어머니 |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 |
형제 | 막시밀리안, 에른스트 |
종교 | 가톨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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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라예보 사건의 피해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의 2남 1녀 중 장녀.2. 생애
14살 때 사라예보 사건으로 부모가 모두 암살당하면서 고아가 되었다. 이후 삼남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물론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없지는 않는데 문제는 다 부동산이어서 정작 당장 써야 할 현금은 없었다. 게다가 본가인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그녀의 어머니가 겨우(...) 백작의 딸이라는 이유로 귀천상혼이니 그녀의 어머니를 아버지의 정식 배우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조피를 포함한 삼남매를 합스부르크의 정식 황족이 아니라며, 연금도 지급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의붓친할머니인 마리아 테레사 대공비[1]가 크게 반대해서 간신히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연금도 얼마 못가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망하면서 날아가 버린다.1990년, 향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냉전이 끝나는 것까지 목격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야말로 20세기 역사의 산증인이었던 셈. 삼남매 중 가장 오래 살았다.
3. 가계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자녀 |
1남 | 에르바인 (Erwein) | 1921년 6월 29일 | 1949년 9월 11일 | |
2남 | 프란츠 (Franz) | 1923년 2월 2일 | 1945년 2월 23일 | |
3남 | 알로이스 (Alois) | 1925년 8월 12일 | 2003년 4월 22일 | 테레지아 폰 발트부르크 추 자일 운트 트라우히부르크 슬하 3남 1녀 |
1녀 | 조피 (Sophie) | 1929년 7월 24일 | 2024년 4월 19일 | 에른스트 폰 구데누스 슬하 2남 2녀 |
그 후 1920년에 프리드리히 폰 노스티츠라이네크 백작과 결혼해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으나, 독소전쟁에 참전했던 차남 프란츠는 1945년 전쟁터에서 22세로 전사하고 같이 참전한 장남인 에르바인은 소련 굴라크에서 1949년 28세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래도 삼남 알로이스 카를 요제프(1925 ~ 2003)가 슬하 3남 1녀, 장녀 조피 아말리아 테레지아(1929 ~ 2024)가 슬하 2남 2녀를 두었다.
막내인 조피는 1929년생으로 2024년 4월 19일 사망했다.[2] 남동생들인 막시밀리안과 에른스트가 각각 아들만 6명, 2명씩 있으므로 조피의 막내딸인 조피는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유일한 여자 손주다.
[1] 아버지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계모.[2] 조피 아말리아 테레지아의 부고. 1990년 당시 조피 폰 호엔베르크의 부고도 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