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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9 04:40:32

족첸

1. 개요

현성공안, 본래성불[1]을 바탕으로 하는 티베트 불교의 사상.

2. 설명

이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은 무소부재, 또는 모든 곳에 스며 있고 모든 걸 포함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영은 어디에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무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은 바로 여기, 바로 지금 당신의 자각속에서 온전히 존재해야만 한다. 즉 당신 자신의 현재 자각에는 영이 어떤 식으로든 변하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또 완전하게 스며 있는 것이다. 영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보기 위해 깨달을 필요는 없다.

이 말은 당신이 영과 하나인데도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영이 없는 곳이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 족첸에 따르면 당신은 이미 영과 하나다. 이런 자각은 항상 완전히 존재한다.

당신은 자각의 모든 행위에서 영과 함께 영을 직접 보고 있다. 영이 없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영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영원하거나 시작과 끝이 없어야만 한다. 영에시작이 있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그것이 시간적인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영은 영원한 것이 될 수 없다.

우리 자신의 자각과 관련해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당신은 결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의 시작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영과 깨달음은 당신이 바로 이 순간 충분히 자각하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바로 지금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켄 윌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2]
불교에서 본래면목으로 표현되는 절대적 진리, 앎, 깨달음이 이미 현실 속에 드러나 있으며, 우리가 지각하는 것들은 그 무엇이 되었든 본래면목의 부분일 뿐임을 주장한다. 수행의 결과로 인식되는 것은 언제나 공(空)한 것이며, 상대적인 것이다. 현성공안 사상과 마찬가지로, 티베트의 족첸은 이러한 개별자적인 상대성을 떠나, 존재의 절대적 완벽함에 대해서 말한다.

티베트 불교에서 족첸 마스터들은 지적하는 가르침(The Pointing-out Instructions)을 통해 수행자의 시선을 부분이 아닌 본래면목으로 옮겨 놓는다. 샘 해리스는 족첸의 대가인 툴쿠 우르겐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큰 틀에서 조사선불이일원론의 요체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1] 세첸코리아 용수스님 “티베트불교 족첸, 선불교 본래성불과 통해”- 아시아투데이[2] 티벳불교의 '족첸 수행' - 당신은 결코 깨달을 수 없다 :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