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존 맥두걸 John Macdougall |
출생 | 미상 |
스코틀랜드 왕국 아가일 | |
사망 | 1316년 9월 |
잉글랜드 왕국 켄트주 오스프링 | |
아버지 | 알렉산더 맥두걸 |
어머니 | 바데녹 영주 존 코민 3세의 누이 |
부인 | 성명 미상의 여인 |
자녀 | 이웬, 앨런, 메리, 성명 미상의 딸 |
직위 | 아가일의 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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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가일의 영주.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서 아버지 알렉산더 맥두걸과 함께 잉글랜드 왕국을 지지했다가 스코틀랜드 국왕 로버트 1세에게 축출되었다.2. 생애
아버지 알렉산더 맥두걸은 헤브리디스 제도와 멀 섬 등 여러 섬과 아가일, 킨타이어, 론 등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을 다스린 대영주이고, 성명이 알려지지 않은 어머니는 바데녹 영주 존 코민 3세의 누이이다. 1291년 아버지 알렉산더와 함께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에게 스코틀랜드의 영주로서 충성을 맹세했다. 1296년, 존은 서부 하일랜드 지역의 주요 가문인 캠벨 가문의 수장 케일린 모 캠벨을 로크 이비치 전투에서 전사시켰다.1296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침공했을 때, 아버지 알렉산더는 존 발리올 왕을 위해 잉글랜드에 대적하다가 생포되었다. 당시 아이슬레이의 영주이며, 영지 소유권을 놓고 맥두걸 가문과 경쟁하던 알렉산더 맥도날드는 이를 틈타 맥두걸 가문에 속했던 킨타이어 반도를 점거했다. 존은 아버지를 대신해 맥도날드 가문과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
에드워드 1세는 아가일 일대를 복종시키기 위해 1297년 4월 이전에 알렉산더를 석방했다. 이후 알렉산더와 존은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의 지배에 대항하는 싸움을 지원했다. 1301년 이후, 존 맥스윈과 휴 비셋이 이끄는 함대가 에드워드 1세의 의뢰에 따라 맥도날드 가문의 새로운 수장 앵거스 오그를 지원해 맥두걸 가문과 맥루어리 가문을 공격했다. 여기에 캐릭 백작 로버트 브루스 등 여러 스코틀랜드 귀족이 1304년 이후 에드워드 1세에게 복종하자, 알렉산더와 존 부자는 맥루어리 가문과 함께 에드워드 1세에게 복종했다. 에드워드 1세는 1304년에 보낸 편지에서 존 맥두걸의 충성심에 대한 확신을 표현했다.
1306년 2월, 캐릭 백작 로버트 브루스가 존 맥두걸의 외삼촌인 존 코민 3세를 살해했다. 로버트 브루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스코틀랜드 국왕 로버트 1세로 선포하고, 잉글랜드 왕국에 반기를 들었다. 맥두걸 가문은 존 코민 3세를 살해한 로버트 1세를 철천지 원수로 간주하고 로버트 1세에 대적했다. 1306년 여름 메스번 전투에서 에이머 드 발랑스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에게 패배한 뒤, 로버트 1세는 남은 추종자들과 함께 스코틀랜드 서부로 후퇴했다. 그러다가 아가일산맥에서 존 맥두걸이 이끄는 군대와 마주쳤다. 1306년 7월 또는 8월에 벌어진 달리그 전투에서 로버트 1세는 참패하고 그의 추종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전승에 따르면, 로버트 1세는 어느 순간 언덕과 호숫가 사이에서 홀로 남아서 적에게 에워싸였다. 공격자들은 그를 잡아 끌어내리려 했지만, 그의 망토와 못이 박힌 브로치만 벗겨졌고, 로버트 1세는 가까스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이 브로치는 일명 '론의 브로치'로 일컬어졌으며, 맥두걸 가문의 수중에 넘어가서 두놀라 성에 보관되었다가 영국 내전 때 케레라 섬의 가일런 성으로 옮겨졌다가 1647년 뉴어크 영주 데이비드 레슬리가 가일런 성을 함락한 뒤 캠벨 가문의 수중에 들어갔다. 1824년 로크넬의 던컨 캠벨 장군이 맥두걸 가문에 브로치를 돌려줬다.
달리그 전투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로버트 1세는 더 이상 군대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병사들을 해산한 뒤, 아내 엘리자베스 드 버러, 동생 닐 브루스, 아솔 백작 존 드 스트라스보기, 알렉산더 린제이, 로버트 보이드를 데리고 산을 넘어 애버딘 북서쪽의 킬드럼미 성으로 향했고, 나중엔 아솔 백작과 함께 브레달베네 산으로 도피했다. 그 후 아솔 백작은 브루스 가문의 여성들과 함께 도주하다가 테인에서 생포되었고, 런던으로 끌려가 잔인하게 처형되었다. 로버트 1세의 동생 닐 브루스도 체포되어 베릭에서 잔인하게 처형되었다. 로버트 1세의 처남 크리스토퍼 세튼은 로크둔 성에서 체포되어 덤프리스에서 처형되었고, 크리스토퍼의 동생 존 세튼과 버나드 모왓은 8월 4일 뉴캐슬에서 교수형에 처했다. 로버트 1세의 왕비 엘리자베스는 홀더니스에서 가택연금 되었고, 자매인 크리스찬 브루스는 부컨 백작부인 이사벨라 맥더프와 함께 록스버러와 버윅의 성벽에 매달린 철창에 갇혔다. 로버트 1세의 딸 마조리는 당시 12살이 채 되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런던 탑에 갇혔다가 나중에 요크셔의 수녀원으로 보내졌다.
그 후 로버트 1세는 렌녹스를 거쳐 스코틀랜드 남서쪽의 킨타이어 반도로 도주했다. 이후 두나버티 성에 잠시 머물렀다가, 잉글랜드군이 거기까지 몰려오자 배를 타고 탈출했다. 그가 그다음 6개월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코틀랜드 서부 섬들이나 아일랜드로 망명했을 것이다. 1307년 4월,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에 돌아온 로버트 1세는 1308년까지 종횡무진하며 스코틀랜드 대부분 지역을 재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1308년 8월, 로버트 1세는 군대를 이끌고 아가일로 진군했다. 이에 존 맥두걸은 로흐 호수를 발원지로 삼은 오 강이 벤 크루아찬 산을 지나면서 형성된 남쪽 경사면을 가로지르는 브랜더 고개에 주둔했다. 그는 이 고개에 숨어서 고개를 통과하는 좁은 길을 지나가는 로버트 1세를 습격하려 했다.
그러나 로버트 1세는 달리그 전투 때처럼 매복 공격을 순순히 당할 생각이 없었다. 로버트 1세의 심복인 제임스 더글러스가 지휘하는 스코틀랜드 궁수대는 벤 크루아찬 산을 훨씬 더 높이 올라가서 적의 후방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로버트 1세가 고개 아래에서 적을 향해 공세를 개시했고, 존 맥두걸이 이들을 요격했다. 그 때 제임스 더글러스의 명령을 받든 궁수대가 적의 후미를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화살 세례를 얻어맞은 존 맥두걸의 부하들은 동요하다가 이내 무너졌다.
브랜더 고개 전투에서 참패한 뒤, 존 맥두걸은 갤리선을 타고 로크 강을 따라 도주한 뒤 잉글랜드로 망명했다. 한편, 그의 아버지 알렉산더 맥두걸은 로버트 1세에게 복종했지만, 1309년 8월에서 10월 사이에 잉글랜드와 내통한 사실이 발각되는 바람에 로버트 1세와 로버트 1세의 최측근 제임스 더글러스의 공세를 피해 잉글랜드로 달아났다. 로버트 1세는 맥두걸 가문의 영지를 모조리 몰수한 뒤 지지자들에게 나눠줬다. 영지 일부는 캠벨 가문에 귀속되었고, 나머지는 맥도날드 가문의 수중에 넘어갔다.
1310년 6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열린 의회에 참석한 존은 아버지 알렉산더, 잉그렘 드 움프라빌, 알렉산더 애버네시와 함께 에드워드 2세에게 로버트 1세를 토벌해 달라고 간청했다. 에드워드 2세는 맥두걸 가문에게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 서부 섬을 탈환하기 위한 싸움을 지속하도록 위임했다. 1311년 2월 말, 에드워드 2세는 존 맥두걸이 지휘하는 경기병 500명을 포함한 4,000 병력을 선박 60척에 태운 뒤,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서부에서 출항해 스코틀랜드 남서부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 공격은 실제로 실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존 맥두걸은 헤브리디스 제도를 공격해 약탈을 벌였다.
1311년 아일랜드 해의 제독과 선장으로 임명되었고, 1312년 8월 다른 망명자들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열린 의회에 참석했다. 1314년 여름, 에드워드 2세가 스코틀랜드를 향한 원정을 계획했을 때, 존은 서부 함대의 제독으로서 칼라일 근처의 스킨버네스까지 군인과 군수품을 수송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배넉번 전투에 참여했는지는 불확실하다. 1315년 2월 15일, 존 맥두걸은 더블린 함대와 군대를 이끌고 맨섬을 공략했고, 그해 3월에는 아이슬레이의 도널드를 격파했다. 그러나 1316년에 중병에 걸려 잉글랜드로 이송되었고, 스코틀랜드군은 그가 부재한 틈을 타 아일랜드 해를 장악했다. 1316년, 에드워드 2세는 연간 200마크의 연금을 존과 후손들에게 지급해주기로 했다. 그 후 존은 캔터베리 순례를 떠났다가 1316년 9월 잉글랜드 남부 켄트의 오스프링에서 사망했다. 그는 죽기 직전에 자신처럼 로버트 1세에게 축출되어 잉글랜드로 망명한 갤러웨이 출신의 스코틀랜드 귀족 둔갈 맥도월을 유언 집행자로 지명했다.
3. 가족
- 성명 미상의 아내
- 이웬 맥두걸: 1332년 제2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이 벌어졌을 때 가문의 영지를 되찾고자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 앨런 맥두걸
- 메리 맥두걸: 라토란의 존 스털링의 부인.
- 성명 미상의 딸: 패트릭 그레이엄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