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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9 21:10:24

주문(초한쟁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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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文
주문
성씨 <colbgcolor=#fff,#000>주(周)
(文)
생몰연도 ? ~ 기원전 209년 11월
사망지 민지(澠池)

1. 개요

초한쟁패기에 진승 밑에서 활약한 장초의 장군.

2. 생애

2.1. 초기 생애

과거 초나라 명장 항연의 밑에서 시일(視日)[1]의 직책에 있었으며, 춘신군(春信君) 황헐(黃歇)의 밑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진승·오광의 난이 터지자, 진승을 섬겨 장초의 신하가 된다.

2.2. 서쪽 원정군의 사령관으로 함곡관을 넘다

장초의 군대가 여러 방면으로 진군할 때, 주문은 한 가래의 부대를 맡아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공략하라는 명을 받는다. 주문은 서쪽으로 진군하는 중에도 지나가는 곳마다 진나라를 타도하자며 모병을 계속했고,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통하는 관문인 함곡관(函谷關) 근처에 이를 무렵에는 전차 1,000승, 병력 수십만명에 이를 정도로 불어났다. 이게 어느 정도의 규모냐면 춘추전국시대에 제후국은 '천승지국'으로 불렸는데, 천승지국의 천승이 바로 마차 1,000승의 그 천승이며 전국 7웅 최약체인 한나라는 30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즉, 이 시점에서 장초군의 규모는 이미 숫자상으론 춘추전국시대의 제후국이나 전국 7웅의 한나라 수준쯤으로는 불어난 셈이다. 그것도 전 병력이 아니라 원정대의 한 갈래가 말이다.[2]

그렇게 9월, 주문은 군대를 이끌고 반란군 중 최초로 함곡관을 넘어 관중에 입성해 희 지역[3]까지 도달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암군 이세황제와 간신조고역시 위기를 감지하고, 서둘러 반격할 준비를 하는데...

2.3. 최후: 장한의 등장과 삼연패 이후 자살

당시 진나라에서 소부(少府)를 맡던 장한이 죄수, 노예들로 구성된 진압군의 대장이되어 반격에 나서게 된다. 첫 전투에서 주문은 대패하여 조양(曹陽)[4]으로 후퇴하게 된다. 그러나 장한의 군대는 2달만에 주문을 추격하여 조양에서 주문의 군대를 격파한다. 두 번이나 장한에게 패한 주문은 다시 민지(澠池)[5]까지달아났다. 그러나 10여일만에 장한의 추격이 이어졌고, 3차전에서도 장한에게 패배한 주문은 끝내 자살한다. 주문의 장초군 역시 와해되고 만다.

3. 평가

운 좋게 함곡관까지는 넘었으나, 끝내 숫적 우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장한에게 세 차례나 패배한 장수이다. 그러나 주문이 마냥 무능하다고만은 못하는 것이 당시 상대는 진나라 최후의 희망인 장한이었다. 이후 장한의 전공을 생각해보면 장한에게 패했다고 해서 평가절하당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주문의 군대가 장한의 군대에 비해 마냥 우세했다고 보기도 하기도 애매하다.

주문과 장한의 3차례에 걸친 전투의 전황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당시 어떤 방식의 싸움이 벌어졌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주어진 자료들과 시대상을 반영하여 당시 양측 전력을 추측해볼 수는 있다.

주문의 군대는 전차 1,000승, 병력 수십만명의 대군이라지만, 훈련된 정규군이 아니라 진격하는 중에 모여든 백성들로 인해 머릿수만 많을 뿐이었다. 장한의 부대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장한의 군대 역시 정규군이 아니라 급하게 끌어모은 인부들로 구성되어있었다. 그러니 병사들의 질 자체만 보자면 양측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썩어도 경제력만큼은 천하 제일인 진나라였으니 장한의 군대는 주문의 군대보다 장비나 보급 등이 더 나으면 나았지 모자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병사들의 마음가짐 면에서 오히려 한몫이나 챙겨보려고 주문을 따라온 병사들에 비하면 죄 짓고 노역을 하다가 희망을 얻은 병사들이 더 강력할 수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지휘관의 능력 차이가 너무나 컸다.

몇 번 전투를 치러봤다지만 출신이 불분명한 주문과는 다르게, 그래도 글을 읽을 줄 알고 병법이나 기타 행정에 대해 해박한 장한인 만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소부라는 관직이 매체에서는 한직으로 묘사되고는 하는데, 삼공 다음으로 높은 구경에 해당하는 관직 중 하나로 위치상 조선으로 치면 삼공은 삼정승에 빗댈 수 있고 구경은 판서에 비유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6조판서와 좌우참찬 그리고 한성판윤까지 이 아홉 관직을 묶어 구경이라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자리에 오를 정도면 이미 진시황 시기에 뭔가 활약을 해서 승진을 거듭해 올라왔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머릿수에서만 앞서는 주문의 군대가 3차례나 대패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양상의 전투가 팽성에서도 벌어진다.

4. 여담

주문이 만약 함양 점령에 성공했다면, 과연 다른 제후들과는 다르게 진승에게 끝까지 충성했을지도 의문이다. 그 역시 왕을 참칭했을 가능성이 높다.

[1] 전문적으로 천상(天象)을 관찰해서 점을 쳐 전투나 행사에 대한 길흉을 점치던 사람.[2] 물론, 다른 원정군들은 대부분 독립해버렸고, 주문의 부대가 가장 주력 원정대이긴 했다.[3] 진나라 수도 함양에서 불과 50Km떨어진 곳이다.[4] 지금의 허난성 싼먼샤 시 링바오 시[5] 삼천군의 속현으로, 지금의 허난성 싼먼샤 시 몐츠(민지)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