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楚 서초의 대사마(大司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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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 | 조구 | 용저 | 주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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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직위 | <colbgcolor=#fff,#000>대사마(大司馬) | |||
성씨 | 주(周) | |||
명 | 은(殷) | |||
생몰연도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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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한쟁패기 초의 무장으로 초한쟁패기에서 별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아니나 초한지 말미 초나라를 이탈하여 항우와 초군에게 상당한 실망감을 안 기는 인물.
2. 생애
어느 시기에 초군에 가담한 인물인지 확실치 않으나 영포와의 친분 관계로 미루어 영포군에 있다가 항량 때 같이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무슨 활약을 했는지 기록이 없으나 형양 공방전에서 진평이 반간계를 꾸밀 때 항우가 신뢰하는 4명의 인물 중 한 명으로[1]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초군 내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용저 이후 대사마 관직에 있었다고 하며 초한쟁패 말 회남, 강동 소호 일대[2]를 관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초군은 흥구 협정 후 팽성으로 회군하던 중 한군에게 배신당했는데, 오랜 초한 대치에서 지칠 대로 지친 초군에게 한군의 역습은 상당한 타격이자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때 초군을 응원할 세력으로 가까이 있던 것은 주은 뿐이었지만 주은은 이미 영포와 밀약해 배신한 뒤였다. 한나라쪽으로 돌아선 주은과 휘화 군사들은 영포의 군대와 합류하여 해하 전투까지 합류한다. 해하전투 이후 주은의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잠시 유방과 대치하는 사이 후방으로 돌아간 관영에게 팽성이 함락당한 상황에서 주은까지 등을 돌리자 물러날 곳이 없어진 항우는 멀리 강남으로 원군을 요청 할 수밖에 없었고 초군은 지친 상태에서 싸워 후퇴하며 결국 해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해하 전투에서 그 최후는 이미 알고 있는 그대로...
3. 평가
상술했듯이 진평 피셜 항우가 범증, 종리말, 용저와 함께 신뢰하는 주요 인물로 꼽히며 서초 내에서 상당한 입지를 가졌었거나 항우의 신뢰를 받던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임 대사마였던 조구는 어떤 경로로 신임을 받았는지 기록이 되어있는 반면, 주은은 분명 당시 거물이었음에도 기록이 너무나 부실하다.대사마 직위에 본거지인 초국령을 관장하던 이마저 배신했다는 점에서 항우의 용인술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끝까지 항우에게 충성한 조구와 달리, 주은은 결국 항우를 배신하고 말았는데, 서초의 대사마 두 명의 삽질은 항우에게 뼈아픈 결과로 다가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