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용 바오로 몬시뇰 관련 틀 | ||||||||||||||||||||||
|
<colcolor=#000000> 2대 천주교 전주교구장 4대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주재용 바오로 朱在用 | Paul Ju Jae-yong | ||
출생 | 1894년 2월 2일 | |
경상도 함양군 석복면[1] (現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 ||
사망 | 1975년 11월 1일 | |
강원도 춘천시 운교동 까리따스 수녀회 사제관 | ||
국적 | 대한민국 | |
교구장 임명일 | 1941년 11월 21일 전주지목구장 임명, 몬시뇰 승품 | |
1946년 1월 16일 대구대목구장 임명 | ||
재임기간 | 전주지목구장 | 1942년 1월 5일 ~ 1946년 1월 19일 |
대구대목구장 | 1946년 2월 20일 ~ 1948년 5월 21일 | |
SALUS IN CRUCE (십자가로 구원) |
[clearfix]
1. 개요
한국 가톨릭 교회의 제2대 전주교구장, 제4대 대구대교구장. 세례명은 바오로이다.2. 생애
용산예수성심신학교 재학 중 1914년 대구대목구에서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개교하자 성 유스티노 신학과로 편입, 1918년 졸업과 동시에 사제서품을 받았다.1918년부터 22년까지 고향인 함양군 지역의 사목을 전담하였고, 22년부터 31년까지는 목포로 임지를 옮겨 거기서 사목했다.
1931년 대구관구 대신학교 교수신부로 임명되어 대구로 돌아온다.
1941년 교황청으로부터 전주지목구장의 소임을 받고 46년까지 재임하다가, 1946년 제3대 대구대목구장 하야사카 큐베에 주교가 사망하자 이에 대구대목구장을 겸하게 되어 대구대목구장좌에 착좌한다.
1948년 교구장직 사임을 청원하였고, 수리된 후 당시 춘천지목구장이었던 구 토마스 몬시뇰의 요청을 받아 본당 사목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2]의 지도사제로 봉직했다.
1968년 현직에서 물러나 교회사 연구에 전념하여 <한국 가톨릭사의 옹위>, <배론성지> 등의 교회사 서적을 집필하였다.
1975년 11월 1일 사망하였다.
3. 여담
대구대교구에서 제공하는 조금 다른 버전의 주재용 신부의 문장[3]으로, 원 문장의 해상도가 낮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방패 우반부의 첨성대와 좌반부의 십자가와 무궁화 도상은 동일하되 우반부에 도색 표시가 없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문장이 좌우 이분되어 있을 때 양쪽이 같은 색깔인 경우는 없는 것을 감안할 때 도색된 쪽[4]이 정식 문장이고 위의 것은 문장 설명을 위해 도안만 살린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