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정치인, 외교관.2. 생애
1924년 3월 15일, 함남 북청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니혼대학을 다녔으나 중퇴하고 해방 이후 소련고급당학교를 다녔다. 1957년 12월, 대외문화련락위원회 부위원장, 1958년 3월, 내각출판총국 국장을 지냈으며 12월에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되었다. 1959년 4월, 강상호의 뒤를 이어 육군소장 계급으로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북측 수석대표로 부임하였다. 1961년 3월에 장정환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 7월에 내각출판총국 총국장으로 돌아왔다.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63년 2월 버마 총영사로 부임하였다.하지만 이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한동안 재선되지 않았고 1967년 외무성 참사, 1972년 5월 대외문화련락위원회 국장을 지내는 등 한직을 떠돌다가 1972년 8월에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서기장 겸 상임위원이 되어 남북적십자회담에 북측대표 부단장으로 7차례 나왔다. 1973년 8월 대외문화련락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다시 승진하였고 1974년 2월, 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 부위원장, 1976년 7월 조선민주법률가협회 부위원장 등 대남 관제단체에서 일했다.
1980년 4월, 유고슬라비아 대사로 부임하였으며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1982년 4월 2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3년 10월 24일, 작별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였으며 후임 대사로는 1984년 3월, 리인규가 임명되었다. 1983년 11월, 조선로동당 6기 8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다. 1984년 1월, 최고인민회의 7기 3차 회의에서 김만금, 지창익과 함께 상설회의 의원으로 보선, 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1984년 3월, 김일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4년 7월, 조선로동당 6기 9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다. 1985년 7월, 남북국회회담 예비접촉대표 대표단 부단장으로 나타났으며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 및 상설회의 의원에 재선되었다. 1987년 4월, 로동신문 책임주필 겸 조선기자동맹 중앙위원장에 임명, 1987년 9월에 로동신문 대표단장으로 루마니아도 다녀왔다. 1986년 4월, 천세봉 장의위원, 1988년 4월, 림춘추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8년 9월 26일, 신인하의 뒤를 이어 주중 대사로 부임하여 무려 12년을 재임함으로 최장기 재임 북한 대사가 되었다.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에 재선되었으며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0년 12월 13일, 중국대사에서 해임되어 최진수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귀국하였다. 2005년 조국통일상을 받은 이후 완전히 은퇴하여 10년간 소식이 없다가 2015년 7월 16일에 사망하였다. 부고 발표는 없었으나 김정은이 화환을 보내주었다.
3. 참고문헌
- 통일부 정보분석국, 2000 북한 주요 인물 자료집(서울: 통일부,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