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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中始祖족보나 성씨의 본관을 말할 때, 시조의 후손으로서 중간에 가문을 일으킨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중조(中祖)라고도 하며, 주로 시조 항목의 1번 의미와 구별되어, 성을 받은 사람은 시조로. 시조의 자손들 중 가문을 번영하게 하거나 중흥시킨 사람들의 경우 중시조로 구분한다.
혹은 쇠퇴한 학문이나 기술 따위를 다시 일으킨 사람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2. 특성
일반적인 가문을 연구하는 계보학에서는 중시조를 주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조는 숭조사업으로 인한 추숭으로 과장 윤색되거나 아예 가공의 인물일 경우가 상당하며 중시조가 실질적인 시조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1] 반대로 이와는 좀 다르게 기록이 부실하여 중시조가 시조로 잘못 알려졌던 경우도 있다. 상나라의 탕왕은 그동안 시조로 알려졌었는데, 지금까지 발굴된 갑골문에 따르면 시조가 아니라 나라를 부흥시킨 중시조라고 한다. 실제 상나라의 시조는 삼황오제 시대 제곡까지 이어진다고 한다.그러나, 왕실과 같이 시조가 확실한 경우는 위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려우며, 왕실의 사례에서 중시조와 관련해서 흥미롭게 보아야 할 부분은 묘호에 '조'를 사용하는지 아니면 '종'을 사용하는지의 여부이다. 원래 예법 상 '조'는 나라를 연 건국군주, 그리고 중시조라고 볼 수 있는 군주 또는 나라의 흐름을 바꾸는 중대한 공적을 쌓은 군주에게만 희귀하게 올려지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고려는 오직 태조만이 '조'를 받았고, 실질적인 중시조이자 여요전쟁이라는 국난을 극복한 현종마저도 '종'을 받았을 정도로 '조'를 붙이는데 신중했다.[2], 반면, 조선은 '조' 를 지나치게 남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3]
[1] 예를 들어, 족보에 따르면 많은 가문들의 시조는 역사적인 위인들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2] 그나마도 원나라의 침입 이후에는 '종'조차도 붙이지 못했다[3] 조선의 역대 국왕 중 조의 시호를 받은 인물은 창업군주인 태조 이성계를 비롯하여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까지 총 7명이나 된다. 단, 영조, 정조는 각각 고종 때 바뀐 것이고(원래는 영종, 정종), 순조 역시 철종 때 바뀐 것으로(원래는 순종), 실제로 죽은 직후 '조'의 묘호를 받은 임금은 태조, 세조, 선조, 인조의 네 명이다. 하지만 어쨌든 여러가지 이유 또는 구실로 선대의 임금의 묘호를 '조'로 격상한 것 역시 조선왕조였다는 점에서 '조'를 다소 남발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