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 지미 디킨슨 Jimmy Dickinson | |
본명 | 제임스 윌리엄 디킨슨 James William Dickinson, MBE | |
출생 | 1925년 4월 25일 | |
잉글랜드 햄프셔주 알턴 | ||
사망 | 1982년 11월 8일 (향년 57세) | |
잉글랜드 햄프셔주 알턴 | ||
국적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
포지션 | 레프트 윙 하프 | |
신체조건 | 178cm | 70kg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 포츠머스 FC (1949~1965) |
감독 | 포츠머스 FC (1977~1979) | |
국가대표 | 48경기 (잉글랜드 / 1949~1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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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디킨슨은 제2차 세계 대전 때에 영국 해군에서 3년간 복무했다. 그는 연습생으로 포츠머스와 인연을 맺었고 레프트 하프백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디킨슨은 포츠머스의 전성기였던 1948-49, 1949-50 시즌의 잉글랜드 퍼스트 디비전 우승 당시 주역이었고 모든 선수 생활을 포츠머스에서만 보낸 선수였다. 그는 클럽과 A매치에서 퇴장당한 적이 없어서 젠틀맨 짐이란 별명도 얻었다.
포츠머스는 영광의 순간이 끝나고 1961-62 시즌에는 3부 리그까지 떨어졌지만 디킨슨은 팀과의 의리를 끝까지 지켰다. 디킨슨은 1964년, 대영제국 훈장 5등급에 서훈되었고 그의 마지막 현역 시즌인 1964-65 시즌, 포츠머스는 마지막 경기에서 스윈던 타운, 스완지 타운과 2부 리그 잔류의 향배가 갈렸다. 스윈던 타운은 포츠머스와 승점은 같고 골득실에서 앞서서 경기 결과가 같으면 포츠머스가 다시 3부 리그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포츠머스는 1부 리그 진출을 확정 지은 노스햄튼 타운과 1대1로 비기면서 사우스햄튼에 1대2로 패한 스윈던 타운을 3부 리그로 미끄러뜨리고 잔류에 성공했다.
2.1.2. 국가대표
디킨슨은 소속팀이 처음으로 잉글랜드 퍼스트 디비전에서 우승하던 1949년, 삼사자 군단의 흰 유니폼을 처음으로 입었다.디킨슨은 1950년과 1954년,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1954년 월드컵 벨기에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했다. 그는 현재까지 잉글랜드 대표팀 역사상 유일한 월드컵 본선 자책골 기록자이다.
2.2. 이후
디킨슨은 은퇴 후에도 친정팀의 홍보 대사나 비서 등을 맡으며 포츠머스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다 1977년, 디킨슨은 3부 리그 소속이던 포츠머스의 감독을 맡았지만 시즌을 마친 포츠머스는 4부 리그로 떨어졌다. 디킨슨은 건강 문제로 1979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디킨슨은 세 번의 심장마비를 겪다가 1982년에 사망했다.
2023년 9월 23일, 포츠머스의 홈구장 프래턴 파크에서 디킨슨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디킨슨은 항상 꾸준한 선수였고 90분간 항상 최선을 다하던 선수였다. 그는 볼 컨트롤에 뛰어나지 못했고 속도와 공중볼 경합 능력은 평범했지만 깔끔한 태클, 힘, 위치 선정 능력으로 상대 공격수들이 쉽게 제치기 힘든 선수였다.디킨슨은 포츠머스의 역대 최다 출전 기록과 포츠머스 소속으로 잉글랜드 대표팀 최다 출전 기록을 가진, 포츠머스의 레전드이다.
4. 수상
4.1. 클럽[2]
- 잉글랜드 디비전 1 우승 2회: 1948-49, 1949-50
- 잉글랜드 디비전 3 우승 1회: 1961-62
-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1회: 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