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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5 14:33:39

지미 영

파일:jimmy-young.jpg
지미 영
Jimmy Young
<colbgcolor=#000000><colcolor=#aa9872,#8c7a55> 본명 제임스 영
James Young
출생 1948년 11월 14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사망 2005년 2월 20일 (향년 56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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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전적
57전 35승(11KO) 18패(2KO) 3무 1무효
신장/리치 188cm / 188cm
체급 헤비급
스탠스 오서독스

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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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권투 선수.

2. 전적

3. 커리어

1969년 데뷔해 8년간 17승 4패 2무를 기록했는데, 이때까지 인상깊은 승리를 꼽자면 1975년 론 라일을 상대로 10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둔 것이 있다.

1976년 4월 30일, 영은 WBA, WBC, The Ring 3개의 타이틀을 걸고 무하마드 알리[1]와 맞붙었다. 영은 알리의 타이밍을 뺏고 카운터를 패리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알리가 압박을 가해 코너로 몰아넣는 데 성공할 때마다 상체를 링 밖으로 내미는[2]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다. 결국 경기는 알리의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끝났는데, 링 아나운서가 판정결과를 발표했을 때 경기장에서 수많은 관중들의 야유소리가 빗발쳤다. AP통신이 채점한 바에 따르면 3점 차로 영이 승리하는 게 맞겠지만, 경기 중간 중간 보여준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동들이 패배의 요인이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했다.

이후 라일과의 재경기에서 12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둔 영은 1977년 3월 17일,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서 조지 포먼과 맞붙었다. 이 경기에서 영은 모두의 예상을 깨며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고, 링 매거진은 이 경기를 올해의 경기로 선정하였다.

조디 발라드를 상대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둔 후 1977년 11월 5일 켄 노턴과의 경기에서 15라운드[3] 스플릿 판정패를 하였다. 하지만 경기 후 주심이었던 카를로스 파딜라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영의 승리를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이 경기 역시 판정논란을 빚었다. 영은 노턴에게 패배한 후 1980년까지 3승 4패를 기록하며 타이틀과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1981년 한해에만 무려 5연승을 거두었고, 링 매거진으로부터 올해의 컴백 파이터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그렉 페이지, 토니 텁스, 토니 터커같은 신예들에게 줄줄이 패배했으며, 1988년에 39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이후 1990년에 치른 복귀전에서 칼 포터를 상대로 2라운드 TKO승을 거두며 커리어를 완전히 마무리지었다.

은퇴후엔 금전, 약물 문제로 곤혹을 치렀고, 의사로부터 뇌손상 진단까지 받았다.

2005년 2월 20일, 6일 간의 병원치료 끝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4. 파이팅 스타일

변칙적인 움직임과 카운터 펀치로 승부를 본 무버였다.

5. 여담

경력 초기에 조 프레이저, 켄 노턴, 제리 쿼리의 스파링 파트너였다.

1998년 링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최고의 헤비급 선수 37위에 올랐다.


[1] 알리는 경기 전까지 영을 과소평가하였고, 체중이 230파운드가 나갔을 정도로 훈련을 게을리 하였다.[2] 영은 이러한 행동을 7라운드에 1회, 8라운드에 1회, 12라운드에 1회, 13라운드에 2회, 15라운드에 1회, 총 6회 저질렀다. 12라운드에 영이 이 행동을 또 했을 때 참다 못한 주심은 다운 처리를 하며 카운트를 셌다.[3] 이 경기의 승자에게는 WBC 타이틀 도전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에 논 타이틀전이였음에도 이례적으로 15라운드까지 예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