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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1:18:03

텍사스 대학교 시계탑 총기난사 사건

찰스 휘트먼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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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36C93F2A00000578-0-image-a-15_1470088079890.jpg


1. 개요2. 범인3. 사건의 전개
3.1. 악마의 준비3.2. 96분간의 참극3.3. 경찰의 출동과 진압3.4. 결과
4.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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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University of Texas tower shooting

1966년 8월 1일 미국 텍사스 주에 있는 텍사스 대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2. 범인

파일:external/www.nndb.com/charles-whitman-MED.jpg

찰스 휘트먼(Charles Whitman, 1941년 6월 24일 ~ 1966년 8월 1일)

이 사건의 범인인 찰스 휘트먼은 미국의 많은 살인마들처럼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리며 자랐으며 총을 좋아하는 아버지 찰스 아돌퍼스 주니어 덕분에 어릴 때부터 총의 매력에 사로잡햤다. 해병대에 입대한 후 사격실력이 뛰어나 명사수로 통했다.## 복무 중 군 장학금으로 텍사스 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 그는 아내를 만나 결혼했지만 대학 재학 내내 도박에 시달렸고 성적은 바닥을 쳤다. 결국 1963년 장학금을 박탈당하고 다시 군 복무를 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폭력적인 충동을 해소할 방법을 찾게 되었고 종종 높은 타워에 올라가 사람들을 쏘는 망상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후술할 뇌의 종양 때문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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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건의 전개

3.1. 악마의 준비

그러다가 결국 1966년 7월 31일에서 8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 휘트먼은 자신의 아내 캐슬린 프린세스 라이스너 휘트먼(당시 23살)과 어머니 마가렛 엘리자베스 호지스 휘트먼(1922~1966)을 살해하였다. 그가 남긴 노트에 그는 아내와 어머니 모두 사랑한다고 썼고 자신이 범행을 저지른 후 그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해서 그들을 살해했다고 썼다. 날이 밝은 다음 휘트먼은 250달러 가량의 돈을 은행에서 인출한 후 총포상으로 가서 M1 카빈 한 정과 두 개의 탄창, 여유 탄약 여덟 상자를 샀다.[1] 또다른 총포상에서는 4개의 추가 카빈 탄창과 여유 탄약 여섯 상자, 그리고 총기 손질 도구까지 샀으며 마지막으로 Sears 마트에서는 12 게이지 반자동 샷건을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휘트먼은 집에서 원래 가지고 있던 총기들을 추가로 챙긴 뒤 수집한 총기를 손수레에 끌고 집을 나섰다.

3.2. 96분간의 참극

파일:The_Tower,_University_of_Texas_at_Austin_(ca_1980).jpg

휘트먼의 살인 무대가 된 텍사스 대학 본부 건물

오전 11시 25분경 휘트먼은 자신이 다니던 텍사스 대학교에 도착했는데 무기들이 담긴 손수레를 끌고 본부 건물까지 갔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으나 작동하지 않았다. 이때 한 직원이 엘리베이터를 작동시켜 주자 그는 고맙다며 인사까지 하고 27층에서 내렸다. 그 장소에는 시계탑 전망대에서 일하던 직원이 있었는데 휘트먼은 그녀를 밀쳐 넘어뜨린 후 총의 개머리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이때 전망대에서 나와서 내려가는 사람들과 마주쳤는데 휘트먼은 그녀를 소파 뒤로 끌어놓았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휘트먼은 지나가는 두 명에게 인사까지 했는데 그들은 휘트먼의 총을 보고도 '비둘기 사냥하러 올라왔겠지' 라고 생각하며 내려갔다.

이후 휘트먼은 안내데스크를 복도로 옮겨 통로를 막았다. 마침 전망대에 올라온 4명의 일가족이 있었고 통로가 데스크로 막혀있는 것을 보고 지나가려고 하던 찰나 휘트먼과 마주쳤는데 휘트먼은 이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일가족의 아들과 딸을 죽였다.[2] 그는 시계탑 전망대로 나가기 전 처음 공격했던 직원의 머리에 샷건을 쏴 사살했다. 시작부터 3명을 죽인 그는 그의 원래 목적이었던 전망대로 향했다.
당시 보도 영상 당시 사건 현장을 담은 영상

파일:Charlotte_Darehshori_Hiding_Behind_Flagpole.jpg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여성. 부상당해 쓰러진 학생도 보인다.

오전 11시 48분 휘트먼은 시계탑 전망대에서 학교 캠퍼스로 무차별 총기난사를 시작했는데 당시 8개월 아기를 임신 중이었던 클레어 윌슨을 시작으로[3] 학생, 교수, 봉사단원, 상점 주인, 기자, 출동한 경찰까지 가리지 않고 마구 총을 쐈다. 캠퍼스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기둥이나 차 등 몸을 가릴 수 있는 어떠한 것이라도 찾아서 숨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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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경찰의 출동과 진압

최초로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것은 오전 11시 52분으로 휘트먼이 사격을 시작한 지 4분 후였다. 처음으로 출동한 경찰관인 빌리 스피드는 학생들과 함께 기둥 뒤에 엄폐했지만 휘트먼은 기둥 사이의 틈새로 총을 쏴 빌리를 사살했다. 이후 소식을 듣고 모여든 경찰관들 중 일부는 본부 건물 지하 통로를 이용해 진입을 시도했고 그동안 나머지 경관들은 휘트먼에게 엄호 사격을 가했다. 본부 건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 3명의 경찰관은 27층까지 올라갔고 오후 1시 24분경 전망대로 가는 복도에서 형광등 너머로 휘트먼의 머리를 발견했는데 한 명이 사격을 가해 휘트먼의 미간을 맞췄고 휘트먼은 즉시 사망했다. 경찰관들의 확인사살로 이 끔찍한 살인극은 끝났다.

3.4. 결과

96분간 12명이 사망했고[4] 31명이 부상당했다. 부인과 어머니, 그리고 들어갈 때 죽인 사람의 수를 합치면 총 17명, 본인까지 포함하면 18명이 사망했다. 일반적인 학교 내 총기난사 사건들과 다르게 움직이면서 총을 쏘지 않았고 높은 장소에 올라가 저격을 했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5]

휘트먼이 범행 직전 남긴 편지에서 극심한 두통과 이상한 생각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망 후 꼭 부검해 달라는 말을 남겼는데 실제 뇌를 해부해본 결과 작은 호두 크기의 종양이 발견되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정신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과 그 상관관계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아이러니하다.

파일:NURSCO4FMZB3TKPQI3UQRAE3WU.jpg

그가 범행에 사용한 총기는 다음과 같다. 총덕답게 종류별로 가져갔음을 알 수 있다.

1. 레밍턴 M700 볼트액션 소총 - 6mm 레밍턴 탄약을 장전하고 빰밭이가 있는 개머리판 사양이며 총번은 149037, 루폴드 사의 M8-4 망원조준경과 가죽 재질의 슬링이 장착되었다.
2. Sears/J.C. Higgins 사의 모델 60 12게이지 반자동 산탄총 - 2.75인치 산탄 약실 사양이며[6] 개머리판과 총열이 단축되었다.
3. 레밍턴 모델 141 펌프액션 소총 - .35구경 레밍턴 사양, 총번은 1859.
4. M1 카빈 - 슬링이 장착되었으며, 총번은 69799
5. S&W M19 - 크롬 도금된 4.5인치 총열 사양. 총번은 K391583.
6. 루거 P08 - 9mm 파라벨럼, 총번은 2010.
7. Galesi-brescia 25구경 권총 - 총번 366869.

이 인간 때문에 사건 발생 후 몇 년 동안 해병대 이미지가 극도로 나빠졌으며 해병 예비역들이 휘트먼의 사격 솜씨를 칭찬하듯 "역시 해병이야 사격실력이 가차 없지"라는 식의 허세를 떨어서 극심한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아버지 찰스 아돌퍼스는 아내와 아들, 며느리를 잃었지만 35년이나 더 살았다. 아들을 저렇게 만든 주역인 그도 참 말이 많았는데 이 사건이 일어난지 몇 달 안돼 47살 나이로 딸 뻘인 23살인 엘렌 워드와 재혼했다! 하지만 겨우 1년만에 이혼했고 나중에 3번째 결혼을 했으나 또 이혼했으며 늘그막에 알츠하이머를 앓고 요양소에서 2001년 만 82세로 쓸쓸히 죽었다.

찰스 휘트먼에게는 두 동생이 있었는데 이들도 불우하게 살았다. 4살 밑인 아우 패트릭 그레이디 휘트먼은 1965년 결혼해 딸을 낳았지만 이혼하고 커밍아웃하여 게이로 살아가다가 에이즈로 인하여 1989년 44살로 죽었으며 막내 존 마이클 휘트먼은 이 참극이 벌어진 지 겨우 7년만인 1973년에 다른 사람에게 총에 맞아 24살로 죽었다.

찰스 휘트먼의 장인, 장모인 라이스너 부부는 둘 다 장수했지만 죽을 때까지 찰스에게 살해당한 딸을 그리워했다. 장인인 레이먼드 윌리엄 라이스너는 만 93살인 2010년까지 살았으며 장모 프랜시스 코넬리아 머피 라이스너는 2008년 만 88살로 사망했다. 레이먼드는 이혼하고 1975년 플로렌스 폴린 폴스라는 여성과 재혼했는데 플로렌스도 2013년 만 92살까지 장수했다.

4. 창작물에서


[1] 총포상 점원에게는 야생 멧돼지를 사냥하러 간다고 했다.[2] 일가의 할머니는 원래 같이 있었는데 잠시 마실 것을 사 오겠다며 먼저 올라가라고 한 뒤 근처 마트에서 음료를 사느라 현장에 없어 참변을 피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총에 맞아 의식을 잃었다가 극적으로 생존했고 어머니는 휘트먼이 잠시 한눈이 팔린 사이 옆으로 기어가 숨었는데 다행히도 휘트먼이 그녀를 발견하지 못해 살 수 있었다고 한다.[3] 복부에 총을 맞아 아기는 사망했고, 산모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4] 부상당한 윌슨의 뱃속에 있던 태아까지 포함한 숫자[5] 반세기 후 비슷한 양상의 사건인 2017년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6] 당시 일반적인 산탄총들은 현재의 산탄총들과는 다르게 2.75인치(70mm) 산탄까지만을 사용 가능했다. 윈체스터 사의 유명한 산탄총인 모델 1897이나 1912 같은 총기들도 3인치 이상의 탄약은 장전하지 못한다. 3인치 탄약은 "매그넘"같은 이름이 붙은 모델을 따로 생산했는데 지금의 3.5인치 탄약을 장전하는 바리에이션들을 생각하면 편하다. 경찰용 레밍턴 870이 Police Magnum이라 불렸던 이유이기도 하다.[7] 이 때 언급된 다른 인물들 중 하나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의 범인인 리 하비 오즈월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