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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1 21:58:40

리 하비 오즈월드

파일:E8379242-641F-4E16-9EC4-4DDE7A61F63B.png 스미스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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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재단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colbgcolor=#000047><colcolor=#FFC224> 개척자들 <colbgcolor=#FFF,#000>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헨리 허드슨 | 아메리고 베스푸치 | 존 스미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존 뮤어 | 메리웨더 루이스 | 사카자위아 | 키트 카슨 | 존 웨슬리 파월 |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 로버트 E. 리 | 토머스 페인 | 존 브라운 | 프레드릭 더글러스 | 수전 B. 앤서니 | W. E. B. 듀보이스 | 테쿰세 | 타탕카 이요탕카 |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 말콤 엑스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 토머스 제퍼슨 | 율리시스 S. 그랜트 | 우드로 윌슨 | 에이브러햄 링컨 | 제임스 매디슨 | 앤드루 잭슨 | 시어도어 루스벨트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W. 부시
첫 여성들 포카혼타스 | 엘리너 루스벨트 | 힐러리 클린턴 | 마사 워싱턴 | 오프라 윈프리 | 헬렌 켈러 | 소저너 트루스 | 제인 애덤스 | 이디스 워튼 | 베티 데이비스 | 세라 페일린
범법자들 베네딕트 아놀드 | 제시 제임스 | 존 윌크스 부스 | 알 카포네 | 빌리 더 키드 | 윌리엄 M. 트위드 | 찰스 맨슨 | 와일드 빌 히콕 | 리 하비 오즈월드 | 러키 루치아노 | 존 딜린저
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앤디 워홀 |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 |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 잭슨 폴록 | 존 제임스 오듀본 | 조지아 오키프 | 토머스 에이킨스 | 토머스 내스트 |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 앤설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 윌리엄 펜 | 브리검 영 | 로저 윌리엄스 | 앤 허치슨 | 조너선 에드워즈 | 라파예트 로널드 허버드 | 엘런 화이트 | 코튼 매더 | 매리 베이커 에디 | 빌리 그레이엄
팝 아이콘들 마크 트웨인 | 엘비스 프레슬리 | 마돈나 | 밥 딜런 | 마이클 잭슨 | 찰리 채플린 | 지미 헨드릭스 | 마릴린 먼로 | 프랭크 시나트라 | 루이 암스트롱 | 메리 픽포드
제국-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 헨리 포드 | 존 D. 록펠러 | J. P. 모건 | 월트 디즈니 | 토머스 에디슨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 하워드 휴즈 | 빌 게이츠 |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 스티브 잡스
운동선수들 베이브 루스 | 무하마드 알리 | 재키 로빈슨 | 제임스 네이스미스 | 아널드 슈워제네거 | 타이 콥 | 마이클 조던 | 헐크 호건 | 짐 도프 | 세크리테리엇 | 빌리 진 킹
출처 }}}}}}}}}
<colcolor=#fff> 리 하비 오즈월드
Lee Harvey Oswald
파일:리 하비 오스왈드.jpg
<colbgcolor=#000> 출생 1939년 10월 18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사망 1963년 11월 24일 (향년 24세)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체포 1963년 11월 22일
범죄 혐의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인명 피해 사망 2명[1]
서명
파일:리 하비 오즈월드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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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신체 173cm
학력 알링턴 하이츠 고등학교[2] (중퇴)
묘소 텍사스 포트워스 로즈힐 묘지
부모 아버지 로버트 에드워드 리 오스왈드 시니어(1896~1939)
어머니 마거리트 프란시스 클라베리(1907~1981)
형제 이복형 존 에드워드 픽(1932~2000)
친형 로버트 오스왈드(1934~2017)
배우자 마리나 오스왈드 포터[3](1941년생)(1961년 결혼)
자녀 장녀 준 리 오스왈드(1962년 2월 15일생)
차녀 오드리 마리나 레이첼 오스왈드(1963년 10월 20일생)
군사 경력
복무 미국 해병대
1956년 ~ 1959년
최종 계급 일등병 }}}}}}}}}

1. 개요2. 생애3.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4. 여담5. 대중문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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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암살범으로 지목받은 인물 중 한 명.

2. 생애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으며 어머니도 이혼재혼을 반복하던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나 정서가 불안하고 정신과 진료를 받은 기록도 있다.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 댈러스, 뉴욕 등지에서 살았으며 학교를 10번도 넘게 옮겨 다녔는데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찍혀 여러 번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15살에 공산주의에 심취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일기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채 1956년 그가 존경하던 큰형을 따라 미합중국 해병대에 입대해 항공전자운영 주특기로 제3해병항공단 1해병항공 관제대대에서 전탐병으로 근무했다. 항공전자병이었지만 "모든 해병은 소총수"라는 해병대 모토에 따라 소총 사격훈련을 받았고 사격기장 중간 등급인 Sharpshooter 기장을, 1959년에는 사격기장 하위 등급인 Marksman 등급을 받았다.[4]

군 복무 중에는 자잘한 사고를 많이 일으켰다. 부대에 22구경 권총을 인가 없이 무단으로 반입하여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자신의 팔꿈치를 쏜 후 함께 있던 선임 병장 탓을 하면서 병장을 폭행하여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고 일병에서 이병으로 강등된 후 군교도소에 수감되는가 하면 필리핀에서 비행장 야간 경계근무 중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대 밖으로 소총을 난사해 처벌을 받기도 했다. 군에서도 그는 친소 성향을 보여서 오스왈드스코비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군 기록에 따르면 그의 키는 173cm 몸무게는 61kg이었다.

3년여의 군생활 후 엄마가 아프다는 이유로 군대를 떠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군 제대 후 모은 돈을 가지고 소련으로 건너갔다. 당시 그의 나이는 20살이었고 그의 이야기는 여러 신문에서 1면으로 보도되기도 하였다.
파일:lee_harvey_oswald.jpg
리 하비 오스왈드의 가족사진. 왼쪽은 아내 마리나 오스왈드. 아기는 그의 큰 딸 준 오스왈드다.

그곳에서 미국 시민권을 버리고 소련 국적을 따기 위해 노력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고 민스크에서 2년 정도 살다가 소련 생활이 지겨움을 느꼈다.[5][6] 소련 당국에서도 이런 오스왈드를 좋게 보지 않았다. 주미 소련 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의 저술에 따르면 오스왈드는 지역 라디오 공장에 배치되었고 소련 정보당국은 처음에는 미국에서 왔다는 점 때문에 잘 대접해 주었다지만 오스왈드가 업무능력과 태도가 꽝인 데다 그렇다고 대인관계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별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여기며 그냥 무시해 버렸다.(...) 그는 스스로를 기술자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대단한 기술도 없었고 모든 분야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했으며 유일하게 열성적으로 참여한 것은 공장의 사격 동호회 활동뿐이었다고 한다. 오스왈드는 현지에서 사귀게 된 약대생 마리나 니콜라예브나 프루사코바와 결혼해 아이를 가진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7] 소련 측에서는 밥벌레 하나 치운다고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결정했을 때 대단히 기뻐하면서 등떠밀어 내보냈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올 때 오스왈드는 언론의 관심을 기대하였으나 언론은 그에게 전과 달리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는데 거만하고 근무 시간에 딴짓을 한다는 이유로 여러 번 직장에서 짤렸다.

돌아온 뒤에도 여기저기 반공 보수 집회를 전전하며 살다가[8] 댈러스, 멕시코, 뉴올리언스 등지에서 보수단체 인원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미국의 대표적인 수꼴[9] 에드윈 워커 장군의 집으로 버스를 타고 가 30m 거리에서 총을 쏘았으나[10] 그의 팔에 경미한 부상을 입히는 데만 그치고 실패한다.[11][12] 그러나 오스왈드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까지 잡히지 않았고 쿠바로 가려고 시도하였지만 거절당했다.

2021년 공개된 기밀문서에 따르면 오즈월드가 멕시코시티에서 소련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소련 입국비자 발급을 요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오즈월드는 이에 더해 주멕시코 쿠바 대사관을 찾아가 소련 비자가 나올 때까지 쿠바에 머물게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과 쿠바는 입국을 거절했고 오즈월드는 1963년 10월 3일 미국으로 돌아왔다. # 나중에 케네디 암살 사건이 터지자마자 도브리닌 대사는 크렘린의 허가를 얻어 딘 러스크에게 소련은 오스왈드의 입국조차 거절했음을 증명하는 서류 일체를 넘겨줌으로 자신들이 케네디 암살에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려고 했다.

3.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파일:lee_harvey_oswald_rifle.jpg
오스왈드가 그의 집 마당에서 촬영한 사진.[13]

워커 암살 음모 8달 후인 1963년 11월 22일 그가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직원으로 일하던 텍사스 댈러스교과서 창고 빌딩 6층에서 이탈리아 라이플카르카노 M91/38로 꽤 먼 거리인 70m 밖에서 헤드샷을 포함해 목표였던 케네디 대통령을 성공적으로 저격하여 암살한 것으로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총을 3번 발사했는데 1발은 리무진을 빗나갔고 1발은 케네디 대통령과 존 코널리 텍사스 주지사를, 1발은 케네디 대통령의 머리를 맞혔다. 당시 그의 나이는 24살이었다.

이때 창고 빌딩 맞은편 길가에 앉아 있던 하워드 브래너라는 시민은 총이 발사되는 것을 보았고 그의 얼굴을 경찰에게 묘사했다. 댈러스 경찰은 이를 경찰관들에게 알렸다. 암살 직후 창고 빌딩 1층에서 그는 한 경찰관과 마주쳤으나 경찰관은 오스왈드의 직원 패스를 보고 그를 그냥 가게 해 줬다. 오스왈드는 빌딩에서 나와서 버스를 탔으나 몇 블럭 안 가서 버스에서 내리고 택시를 타 집으로 갔으며 몇 분 후 셔츠를 입고 집에서 나왔다.

암살이 일어난 지 약 45분 후 오스왈드의 외모가 하워드 브래너가 증언한 외모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경찰관 J.D 티핏은 오스왈드의 집에서 1.6km 떨어진 곳에서 걷고 있던 오스왈드를 멈춰 세웠다. 티핏이 오스왈드와 잠깐 얘기를 하고 경찰차에서 나올 때 오스왈드는 그를 권총 4발을 쏴서 죽였다. 이후 그는 영화관으로 가 좌석에 앉았지만 곧 경찰들에게 체포되었으며 경찰에서 수사를 받게 되었고 케네디 대통령을 죽인 것과 티핏 경찰관을 죽인 것을 모두 부인하였다.

이틀 후 재판을 받기 위해 이동 중 갑자기 나타난 나이트 클럽 주인 잭 루비라는 사람에게 총탄에 맞아 복부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유언은 '오, 젠장!(Oh,fuck!)'

워런 위원회는 평소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오즈월드가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결국 정확한 동기나 진상은 말하지 않은 채로 사망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묻혔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그의 영화 《JFK》에서 그의 사격 솜씨가 형편없다고 주장했지만 오스왈드의 진범 의혹 여부를 떠나서 그는 1956년 12월에 해병대 복무 중에 200야드(183m) 떨어진 거리에서 50발 중 49발을 적중시킬 정도의 사격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케네디와 교과서 창고 간의 거리는 80야드(73m) 정도였다.

여러 가지로 의혹이 많이 남는 인물이라 여러 음모론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4. 여담

5. 대중문화에서



[1] 존 F. 케네디, J. D. 티핏(경찰관).[2] 총 12개의 학교를 다녔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17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해병대에 입대했다.[3] 1965년 케네스 제스 포터와 재혼했다.[4] 사격기장은 모든 해병이 다 받아야만 하는 것으로 비전투병과도 매년 의무적으로 측정하는데 오스왈드의 사격 실력은 해병대에서 중하위권에 해당한다.[5] 이때 오스왈드에게 민스크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쳐 준 사람이 훗날 독립 벨라루스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스타니슬라우 슈시케비치다.[6] "술집도 별로 없고 나이트 클럽도 별로 없다"는 불만을 일기에 쓰기도 했다.[7] CIA스파이(혹은 이중첩자)였다는 말도 있다. 이 가정을 토대로 "오즈월드를 현장에 배치만 시켜 놓고 다른 사람이 사살"했다는 가설도 제기되었다.[8] 상당히 많이 인터뷰를 했고 보수단체 시위에서 행진하는 사진이 남았다. 음모론자들은 이것이 연막이라고 한다.[9] 얼마나 문제인가 하면 아이젠하워 시대에 흑인 학생 입학에 대해 주방위군을 출동시킨 걸 정면으로 반대했으며 이후 루스벨트부터 아이젠하워까지 빨갱이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을 정도였다.[10]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할 때 쓴 총이다.[11] 많은 음모론자들은 오즈월드 희생양 설 때문에 이 부분을 빼놓는다. 물론 이것도 연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12] 워커 암살 음모는 스티븐 킹의 11/22/63에서 주요한 사건으로 다루어진다.[13] 이 사진은 영화 JFK에서 합성사진으로 의심받았지만 실제로 합성사진이라는 포렌식 근거는 없으며 오히려 오스왈드의 카메라로 찍은 오스왈드의 사진이 맞다는 근거가 충분히 있다. 주요 근거로는 오스왈드의 카메라에서만 나타나는 자국이 해당 사진에서도 나타난다는 점, 오즈왈드의 부인이 자신이 찍은 사진이 맞다고 인정한 점, 그리고 만약 사진이 조작되었다면 당시의 조악한 사진 조작 기술이 현대 포렌식 기술로 적발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점이 있다. 음모론자들은 오스왈드의 그림자는 뒤로 가 있는데 뒤의 계단이나 다른 사물들의 그림자는 방향이 다른 점을 지적하지만 이런 이중 그림자 방향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증명되었다. 참고[14] 스포일러: 주인공은 케네디 암살을 막았지만, 이후 소련과의 냉전이 핵무기를 사용한 열전으로 발전하고 타임슬립의 후유증으로 인한 전 지구적인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나라들이 멸망한다. 주인공이 돌아간 2011년의 미국은 핵겨울이 이어지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였다.[15] 1980년대 후반 데탕트를 추구한 소련 서기장과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는 음모로 치환했다. 여기서 진짜 저격수는 당시 무명이었던 토미 리 존스.[16] 사실 이 뮤지컬 자체가 서로 다른 시대에 존재했던 암살자들을 가상으로 한 데 모아 놓은 구성이긴 하다.[17] 스포를 하자면 주인공 알렉스 메이슨이 소련 장교인 드라고비치의 의해 세뇌되었고 이후 케네디를 암살했다는 설정이다, 게임 상에서 메이슨이 오스왈드는 실패했다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메이슨과 오스왈드가 같이 케네디 암살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