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인천 채씨[1] |
출생 | 1847년[2] |
황해도 평산군 궁위방 산두현리[3] (현 황해남도 청단군 흥산리)[4] | |
사망 | 1907년 12월 24일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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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47년 황해도 평산군 궁위방 산두현리(현 황해남도 청단군 흥산리)에서 태어났다.그는 본래 황해도 연안군의 유생으로서,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고 구한국 군대마저 해산당하는 사태를 보고 김제현(金濟鉉) 의진에 참여하여 황해도 해주 등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우제경·심노식 등과 함께 중국 등주(藤州) 등지를 왕래하면서 탄환 구입 등 의병의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때 이들은 의병장 김제현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활동하였다.
이후 1907년 전반기에는 전 목천군수 박정빈과 박정빈 휘하 중대장 심노술의 참모로 활동했다.#
그해 12월 12일 해주군에서 우제경·심노식 및 김제현과 함께 일본군 수비대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함께 체포된 3명과 함께 12월 23일 밤 탈출을 시도하다가 다음날 24일 오전 6시 30분 경 수비대에 의해 총을 맞고 순국하였다.
2003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