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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30 18:51:30

체탐인

1. 개요2. 상세3. 매체에서

1. 개요

體探人

세종 15년에 조직한 조선의 특수부대/첩보부대.

2. 상세

조선-명 국경을 비밀리에 넘나들며 특수정찰이나 첩보 수집 등, 특수전을 통해 여진족의 동태를 파악할 목적으로 창설되었다.[1]

처음에는 압록강 인근에 은신처를 만들어놓고 정보 수집 활동을 주로했으나 나중에는 퉁화 환인 등 여진족 본거지에 직접 잠입해 작전을 수행했다. 김장의 부대가 특히 유명한데 이들은 압록강에서 250km 이상 떨어진 오녀산성 일대까지 침투해 일종의 특수전을 벌였다. 발각돼 탈출하는 과정에서 김옥로가 낙오돼 사망한 것 외에 희생자는 없었다고 한다. 보통 5~10인 소규모 부대로 움직였으며 주간에 쉬고 야간에 이동했으며 현재 특수부대 공작원들이 그렇듯 최소 식량 최소 무장만 갖고 목숨 걸고 침투했다.

이들이 파악한 여진족에 대한 정보를 통하여 조선은 여진에 대한 국방을 강화했으나 여진족의 침공이 누그러들고 나서부터는 성종 때 이들이 해체되었다. 허나 그 여진족의 침공이 누그러들게 한 원인을 스스로 제거해 버렸으니 결국 다시 변방에서 여진족의 침략이 매우 크게 늘었다고 한다. 수군에 들어가기 전의 이순신도 그 피해자 중 하나였다.[2]

현대로 치면 특수부대인만큼 많은 보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3] 정식으로 특수전정보작전 체계가 정립되고 태동하였던 냉전기보다도 훨씬 이전의 초기 중세에 이런 기초적인 형태의 특수전을 수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쟁사적인 관점에서 매우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직종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죽거나 다친 체탐인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했던 직업임을 알 수 있다.

3. 매체에서


내가 조선의 007이로소이다


[1] 현대 대한민국으로 치자면 특수부대나 정보기관에 해당되는 이들인데 아무래도 근세인 만큼 초기 형태의 비정규전 임무를 맡은 이들을 현대 대한민국의 특정 기관에 비유하는건 옳지 않다.[2] 이후 선조 때 대대적으로 여진족 마을에 대한 소탕에 들어갔으나 훗날 여진족 국가인 청나라가 들어서게 되면서 북쪽 변방은 조선 말엽까지 안정기에 접어든다. 대신 정묘호란병자호란을 겪었지만.[3] 다만 죽기 딱 좋은 일에, 사후 보상은 보잘것없었다고 한다. 2차 여진 정벌 때 체탐 중 전사한 김옥로의 유족에게는 주택에 붙는 세금 면제 및 쌀과 콩 2석 정도 혜택이 주어졌는데 5인 가족 기준 한 달 정도 식량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6품 이하 산관직을 보통 주었으나 이걸 받는다고 실제 양반이 되는 건 아니었으므로 큰 의미는 없었다. 어떻게 후손들이나 조상이나 똑같다.[4] 사이퍼즈의 배경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이나 사이퍼즈의 세계는 조선 왕조가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채 유지되고 있으며, 체탐인이라는 직업도 남아있는 일종의 평행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