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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선수 경력/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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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의 연도별 시즌 일람
2010년 이전 2011년 2012년

1. 개요2. 시즌 전3. 페넌트 레이스4. 2011년 한국시리즈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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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형우의 2011년 활약상을 서술한 문서.

2. 시즌 전

2011년 3월 15일에 있었던 KBO 시범경기에서 5타수 무안타, 1회 3회 5회 7회 9회에 걸쳐 홀수 이닝마다 이닝을 마무리짓는 괴력(?)을 과시했다.

3. 페넌트 레이스

5월 19일까지의 기록은 타율 0.269에 출루율 0.374 OPS 0.920 홈런 9개(최진행과 공동 1위)로 타격만큼은 자신의 능력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중. 다만 그놈의 수비는 삼성 입장에서 못 써먹겠다고 판단했는지[1] 지명타자로 출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명타자로 출장하면서 폭발..!! 5월에만 홈런 8개를 쳤다!!

5월 22일 두산전에서 쓰리런 홈런을 치며 늘 경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홈런만 치고 스탯관리한다는 영양가 논란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5월 23일 기준, 현재 최진행을 제치고 홈런 11개로 단독 1위에 올라있다.

그 뒤 한참 동안 홈런왕 싸움을 치렀는데, 시즌 중반이 지나면서 그 대상은 이대호로 고정. 이대호가 3연타석 홈런을 두 번이나 기록하며 맹추격했으나, 부상 때문인지 시즌 전반적인 홈런 페이스는 좋지 못했고, 최형우는 그 틈에 치고 나가며 나머지 경쟁자와의 차이를 한껏 벌리며 줄곧 홈런 선두를 달렸다.

2011년 9월 28일 1회초에 2루타, 3회초 3루타, 7회초 단타를 기록하고 9회초에 공을 멀리 날려보냈으나 하필 구장이 잠실이라 담장 바로 앞에서 중견수 정수빈에게 잡히며 사이클링 히트에 실패했다.[2]

그리고 2011년 10월 3일, 시즌 마지막 홈구장 경기인 SK전에서 투런홈런을 때려 내며 30홈런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이로써 삼성은 2003년 이승엽 이후 8년만에 3-30-100(3할, 30홈런, 100타점) 타자를 갖게 되었다!![3] 역대 삼성 타자 중에서는 이승엽(1997, 1998, 1999, 2002, 2003시즌), 마해영(2002시즌)에 이은 세번째 달성자.[4]

정규 시즌을 마치면서 홈런[5], 타점, 장타율 3관왕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KBO 골든글러브를 받게 된다. 이대호는 안타, 타율, 출루율 3관왕을 가지고 갔다.

장타 부문만을 싹쓸이하긴 했지만, 그 이외 분야도 만만찮다. 0.340의 타율은 팀내에서 1999년 김한수 이후 무려 12년만에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고의4구를 15개나 얻으며 이 부분도 1위. 최형우의 바로 뒤인 5번타자들이 죄다 부진했던 것이 그 이유다. 오죽했으면 5번자리를 메운다고 3번타자 박석민을 5번으로 돌리고 2할 초반대 타자를 대신 3번으로 기용하기도 했으니 말 다 한셈. 그렇다고 박석민도 기복이 심한 편이라 2012 시즌에 최형우가 집중 견제를 받지 않으려면 최형우를 확실하게 뒷받쳐 주거나 아니면 그 앞에서 우산을 씌워줄 타자 수급이 시급하다.

숨겨진 기록이라 하면 2루타 37개를 기록, 2006년 이후에 이보다 많이 친 타자는 38개의 전준우뿐이다. 이 2루타에 힘입어 기록한 장타율 .617은 37홈런의 13 박병호보다도 높다!

본인은 수비를 겸하면서 경기에 임할 때 감각이 좋아진다고 밝힌 적 있으나 실제로는 좌익수비에서 많은 부족한 면을 보이며 까인데에 대해 의기소침해진 탓인지 타격도 부진했으나 지명타자로 가게 되면서 타격감이 부쩍 상승하게 되었다. 수비 자체보다도 송구 능력이 처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 지명을 겸하게 된 걸로 보인다.

4. 2011년 한국시리즈

10월 24일 오후 2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1년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전주고등학교 2년 선배인 박정권에게 "플레이오프 MVP를 타서 돈을 많이 버셧으니 이제 쉬게 해 드리겠다"라고 도발을 하였다. 그리고 전주고등학교 1학년 때 선배인 박정권에게 엄청 많이 맞았다고 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의 투수들이 이대호를 견제하는 것을 보았다면서, 무리하게 큰 스윙을 하지 않고 가볍게 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10월 25일 오후 6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말한 것을 실천하였다. 가볍게 쳐서 2루타 2방을 포함하여 3타수 2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했다. 팀은 이날 스코어 0:2로 승리하였다.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8타수 5안타 1홈런 2볼넷 1타점 3득점 타율 .278, 장타율 .556, 출루율 .350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하였다.[6]

5. 관련 문서


[1] 그때 당시 수비실책이 많던 차에 박석민과 도루내기를 했다는 기사가 나면서 성적도 안좋은 것들이 그딴걸로 내기하냐고 세트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기도..[2] 이는 오승환에게 세이브 기록을 올릴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3] 이는 팬들에게도 의미가 큰데 왜냐하면 최형우와 관련해서 자주 나왔던 비난 중 하나가 스탯관리 질만 해서 평생 3할-30홈런-100타점은 찍지 못할 타자라는 것이기 때문.[4] 양준혁도 1999년 당시 이를 달성했으나 그 때는 해태 타이거즈 소속이었으니 노 카운트고, 2003년에는 바로 앞의 타자들이 앞에서 다 쓸어 먹는 바람에 100타점에는 실패했다.[5] KBO 리그 최초 우투좌타 홈런왕이다.[6] 2011년 한국시리즈에선 홈런보다 안타를 치는데 주력하겠다고 인터뷰 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