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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4 10:37:23

카를로 안첼로티/감독 스타일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카를로 안첼로티

1. 개요2. 장점
2.1. 강력한 플랜 A를 구축하는 역량2.2. 덕장
3. 단점
3.1. 좁은 선수 기용 폭3.2. 부족한 세부 전술3.3. 친인척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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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를로 안첼로티의 감독 스타일을 정리한 문서.

카를로 안첼로티의 감독 스타일 변화 분석글

2. 장점

2.1. 강력한 플랜 A를 구축하는 역량

안첼로티가 가진 최대 장점은 가지고 있는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선수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약점은 다른 선수와의 시너지로 가리며 팀에 최적화 된 조합을 단 기간에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밀란에서 두 번째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1], 첼시에서 첫 번째 시즌에 리그 우승, 레알 마드리드 1기 첫 번째 시즌에 코파 델 레이, 챔피언스 리그 우승, 레알 마드리드 2기 첫 번째 시즌에 리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등 단기간에 팀의 성적을 우승권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것.

수비 전술을 강조하는 이탈리아 출신 답게 수비의 안정화를 강조하며[2], 미드필더 출신 답게 최적의 중원 조합을 만들어내 강력한 중원 장악력을 만드는 것에 특출난 실력을 보이는 감독이다.

수비 전술에 있어서는 확실히 현대 축구에서 다수의 강팀들과 전술적으로 세련된 언더독 팀들이 추구하는 적극적인 프레싱과 높은 수비 라인에 비해서는 보수적인 모습이다. 빠른 수비 복귀와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을 강조하지만 높은 수비 라인과 프레싱은 안첼로티의 팀에서는 전력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 촘촘한 간격과 컴팩트한 수비를 강조한다.[4]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라인을 높여서 맞불을 놓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미드필더들이 수비 라인 위에 블록을 쌓아 핵심 공간을 줄인 채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는 데에 집중한다. 하지만 중원의 선수 구성이 점점 젊어짐에 따라 어느 정도 전방 압박을 구사하는 모습이 늘어나고 있긴 하다.

공격 전술은 선수들의 창의성과 개인 역량에 맡기는 편이며, 플레이와 포지션에 있어서 선수들에게 매우 높은 자유도를 부여하는 감독이다. 이 또한 빌드업과 공격 전개를 모두 통제하는 현대 축구의 트렌드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선수의 장점을 극대화해 알맞는 포지션에 배치하고 역할을 부여하며 이들을 위한 공격 루트를 만들어 일관성 있게 그들이 날뛸 수 있는 환경을 깔아주는 것이 안첼로티의 특징이다. 이로 인해 선수들 개개인의 컨디션과 상대의 대응에 따라 때때로 공격이 무질서하고 비효율적으로 변하기도 하며 이로 인해 "해줘 축구"라는 조롱을 받기도 하지만 선수들의 창의성을 억제하지 않고 이들의 강점을 최대의 효율로 뽑아먹는 데에는 안첼로티 만한 감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레알 마드리드 2기 기준 용병술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 강력한 플랜 A를 중시하기 때문에 갑자기 선발 라인업을 크게 뒤엎는 경우는 보기 힘들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답게 경기 전 분석은 물론 경기 중 흐름과 상대 팀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감각이 매우 뛰어나며 경기에 필요한 선수를 알맞은 타이밍에 투입해 흐름을 뒤집는 데에 신기에 가까운 역량을 보여준다. 또한 경기 중에 선수들의 위치나 역할을 세부적으로 조정해 변화를 주는 역량도 우수하다. 이러한 그의 역량으로 챔피언스 리그 21-22 시즌 헬대진에서의 열세를 극복하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해줘 축구 한다고 비판받는 와중에도 전반전을 열세로 보내다가 후반전 전술 변화와 선수 교체로 이를 곧잘 뒤집어내며 명장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란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2. 덕장

"안첼로티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브라질에서 선발로 뛸 수 있도록 많은 조언을 해줬다. 그는 나에게 많은 자신감을 주었다. 그는 필요할 때면 항상 나에게 강경했다. 그는 나의 아버지와 같다."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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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밀란 시절에는 젠나로 가투소에게 걸핏하면 폭행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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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시절. 존 테리드록바에게 쓰다듬당하는 안첼로티.안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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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시절. 엘 클라시코를 이기고 루카 모드리치에게 깜놀당하는 안첼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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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장난질을 당해도 무신경했지만, 치차리토윙크에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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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2기 시절. 21-22 시즌 라리가 우승 퍼레이드 당시의 모습으로, 선글라스를 쓴 채로 시가를 피우는 제스처를 취해 웃음을 자아냈다. 실제로는 시가를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전술 이상으로 안첼로티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한 덕목은 바로 그의 인품과 그로 인해 따라오는 선수들의 충성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선수 개개인을 존중하고 그들과 속깊은 대화를 나누며 깊은 신뢰를 쌓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선수와의 불화는 거의 없으며, 선수들도 안첼로티를 큰형님처럼 생각해서 미스터 혹은 코치로 부르지 않고 카를로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게 장난질의 희생양이 되는 감독이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 선수진은 선수들과의 친화력을 뽐내며 화목하게 지내는 안첼로티에 비해 무뚝뚝하고 단절된 모습을 보이기로 유명한 베니테스가 감독이 되자 하나같이 입을 모아 안첼로티가 너무 그립다고 말했고 특히 크로스와 모드리치는 이적까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 호날두가 직접 "안첼로티 감독은 화를 잘 내지 않는다"라며 친화력에 엄지를 치켜들었을 정도이다. 이에 안첼로티는 "그렇다, 나는 크고 순한 곰이라서 화를 잘 못 낸다."라고 말했다. 특히 안첼로티가 감독으로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팀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는 스타들이 모인 팀인 만큼 선수들을 장악하지 못하면 온갖 불화설과 가십거리가 나오는 팀인데, 안첼로티의 부드러운 리더십은 이런 팀을 원팀으로 만들고 다독이기에는 안성맞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안첼로티가 전술적으로 유연성을 갖추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안첼로티의 대표적인 전술적 묘수였던 안드레아 피를로의 3선 기용인데, 이는 피를로 자신이 자신은 후방에서도 뛸 수 있다면서 먼저 안첼로티를 설득해서 이루어진 포지션 변경이었다. 피를로의 포지션 변경은 안첼로티의 원래 계획에 없었고 처음에는 성공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했음에도, 선수의 요청을 받아들여 본인의 전술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피를로의 포지션 변경은 선수들과 격의 없이 지내며 감독의 전술에 대해서까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안첼로티의 코칭 스타일 덕에 이뤄낸 성과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인터뷰를 해도 다른 빅클럽의 감독과는 달리 상당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어투를 사용한다. 첼시 감독 부임 시절에는 무리뉴 감독의 날카로운 독설을 들어왔던 팬들이 안첼로티는 좀 심심하다는 평이 많았다. 덕분에 언론이나 선수단과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는 편이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 일화로 안첼로티의 딸이 디에고 로페스를 두둔하며 사람들이 카시야스만 신경쓰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논란이 커지기 전에 빠르게 카시야스에게 사과를 전했다. 위 사실은 카시야스가 직접 밝혔다.

첼시에서도 선수단과 굉장히 원만한 사이였다. 존 테리가 말하기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무리뉴지만, 안첼로티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2등이다. 그리고 선수 관리 측면에서는 안첼로티가 내가 본 사람 중 1등이다. 그렇게 탑 레벨에서 오랫동안 감독하면서 요즘 선수들까지도 잘 다루는 모습을 보면 그의 능력을 알 수 있다." 라고 할 정도로 그의 선수단 관리 능력을 상당히 고평가했다.

나폴리에서도 선수단과는 사이가 좋았다. 나폴리에서 함께 했던 알랑 마르케스가 방출 명단에 오른 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제의를 거절하고 안첼로티 하나만 보고 에버튼으로 이적할 정도였다.

다만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선수단과의 불화로 경질당했고, 파리 감독 부임 이후부터는 가끔 인터뷰에서 독설을 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덕장, 보살 이미지가 조금씩 깨지기도 했다. 에버튼에서는 아쉬운 성적에도 구단이 안첼로티를 장기적으로 구단을 이끌 적임자로 보고 플랜을 짰는데 레알 마드리드에서 제의가 왔다는 이유로 바로 구단을 떠나버리면서 덕장 이미지에 흠을 남겼다.

3. 단점

3.1. 좁은 선수 기용 폭

AC밀란, 레알 마드리드 시절을 제외하면 안첼로티는 한 팀에 3년 이상 머무르지 않았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무려 5번의 우승을 거둔 것에 비해 항상 빅클럽을 맡았음에도 리그 우승 기록은 6번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화려한 커리어에 유이한 흠집이다. 이로 인해 로테이션에 인색하고 주전급 선수들에 대한 혹사가 많기 때문에 단판전에 비해 장기 레이스에서는 약한 편이고 보수적인 선수 기용과 플랜 A에 대한 고집 및 유망주들에게 주어지는 제한적인 기회로 인해 팀의 장기적인 블루 프린트를 완성시키지 못한다는 비판이 안첼로티의 커리어 내내 따라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안첼로티가 이런 결과에 대해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은 플랜 A의 요구 사항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 선수의 선발 기회를 크게 제한하는 그의 보수적인 경향 및 좁은 선수 기용 폭 때문에 시즌 중 핵심 선수의 결장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지, 안첼로티가 안토니오 콘테 마냥 무조건적으로 베테랑들을 지나치게 선호해 팀의 세대 교체를 방해한다는 비판이나 로테이션에 인색하다는 비판은 그의 커리어를 돌아보면 정확한 비판이라고 하기엔 힘들다. 안첼로티가 윈나우에 특화된 감독은 맞지만, 자신의 플랜 A에 맞는 로테이션 자원들이나 유망주들이 있다면 이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애초에 플랜 A를 선발 선수들의 성향에 맞춤 제작으로 짜면서 그 플랜 A를 짤 때 고려되지 않은 선발이 아닌 선수들도 똑같은 전술 하에 똑같은 경기력을 보이기를 기대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문제이다.

3.2. 부족한 세부 전술

안첼로티는 레알 마드리드 1기까지만 해도 전술적으로는 거의 비판을 받지 않았으나, 바이에른 뮌헨과 나폴리를 거치며 전술적 트렌드에서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레알 마드리드에 복귀해서도 안 풀리는 경기에서는 전술적인 비판을 많이 받는다. 2000년 대 밀란을 지휘하던 시기 안첼로티는 전술적으로 극찬을 받는 감독이었고 첼시에서도 주장 존 테리가 그의 세부 전술에 대해 극찬하는 등 전술적으로 굉장히 세련된 모습을 보여줬지만 2000년 대 말과 2010년 대 초에 펩 과르디올라, 위르겐 클롭, 디에고 시메오네라는 트렌드 세터 3인방의 등장과 함께 전술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것은 물론 팀 컬러를 큰 틀 하에서 획일화하고 감독이 세부적인 것까지 크게 개입하는 추세로 변했는데, 여전히 팀 컬러를 확립하고 그 안에서 세부 전술을 다듬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최적화된 베스트 11을 구축하는 데에 집중하고 선수들에게 크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안첼로티가 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실패는 유프 하인케스, 펩 과르디올라 하에 주도적인 축구를 추구하고 세부 전술의 지속적인 훈련과 발전을 통해 상대를 분쇄하는 강력한 팀컬러를 구축한 바이에른 뮌헨의 컬처와 안첼로티 특유의 선수의 자율성에 맡기는 성향이 마찰을 일으킨 것이 가장 크다고 봐야하며[8], 이때 안첼로티는 커리어 사상 거의 처음으로 선수들과 공개적으로 불화를 겪을 정도로 선수단의 신임을 잃었다. 나폴리에서의 실패 역시 같은 맥락으로, 전임자인 마우리치오 사리는 펩도 한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광적으로 선수들의 플레이를 통제하고 패턴 플레이를 지독하게 주입시키는 감독인데 안첼로티는 이런 전술적 디테일에 크게 투자하지 않는 감독이다 보니 사리의 훈련 및 전술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선수들과 마찰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꺾여가던 커리어를 반전시킨 레알 마드리드 2기에도 조직적인 세부 전술보다는 가장 잘하는 선수들에게 공격 테이블을 깔아주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경기력이 크게 꺾이기도 한다.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안첼로티 체제 하에서 유망주들의 성장 및 팀의 성적에 큰 불만을 품진 않으면서도 안첼로티를 "해 줘 축구하는 감독"이라고 까는 것은 이러한 스타일 때문이다.

3.3. 친인척 관리

선수단 운영 및 전술 외적으로 지적되는 안첼로티의 문제는 친인척 관리다. 사실 안첼로티는 원래부터 자기의 사위를 자신의 직장에 고용해 왔었을 정도로 이 부분에 있어서 모든 이가 그러려니하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레알 1기, 2기 모두 사위 베니아미노 풀코영양사로 재직할 정도였다.[9]

다만, 문제가 불거진 것은 자격이 없는 자신의 아들 다비데 안첼로티폴 클레멘트의 후임 수석 코치로 임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리 자신의 아들이 능력이 좋아도 자격이 있는 이가 하는 게 맞는데 그게 아니다 보니 팀의 분란과 반목이 생기면서 제대로 무너지게 된게 뮌헨 시절 안첼로티이다. 어찌 보면 덕장과 라커룸을 잘 관리한다는 안첼로티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 이는 나폴리에서도 그대로 반복하여 그 시즌 나폴리는 전 시즌만도 못 한 성적을 거두고 온갖 잡음 끝에 안첼로티는 다시 경질되었다. 그러나 에버튼에서도 아들과 사위를 그대로 데려온다고 하니 이 가족주의는 절대 못 고칠 듯하다. 그나마 다비데는 레알 마드리드 수석 코치 부임 이후에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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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시즌은 챔피언스 리그가 아닌 UEFA컵에 참가했고 4강까지 진출했다.[2] 안첼로티가 이끌어온 팀들 중 풀 시즌 기준으로 경기당 1실점이 넘어가는 팀은 안첼로티 커리어 최저점이었던 20-21 시즌 에버튼이 유일하다.[3] 특히 11-12 시즌 4강에서 맞붙은 바이에른 뮌헨이나 12-13 시즌 4강에서 맞붙은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이런 경향이 강했으며, 심지어는 16강에서 만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퀄리티 떨어지는 중원에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4] 21-22 시즌 후반기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여러 경기에서 오른쪽 윙어로 나선 발베르데를 수비 시에는 빠른 기동력을 앞세워 종종 오른쪽 윙백에 가까운 위치에 배치시켜 백5를 만들게끔 주문하는 등 세부적인 조정을 통해 수비적인 안정성을 확보하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감독이다.[5] 02-03 시즌 우승, 03-04 시즌 8강, 04-05 시즌 준우승, 05-06 시즌 4강, 06-07 시즌 우승[6] 대표적으로 안첼로티는 팀의 전술을 바꿔 윙어를 기용하기 위해 프랑크 리베리 영입을 요청했었으나, 보드진이 이를 거절하고 공격수인 알레샨드리 파투를 영입한 예가 있다.[7] 물론 디펜딩 챔피언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이벌 바르셀로나가 전반기에 크게 무너지며 일찌감치 격차를 벌릴 수 있기도 했다.[8] 펩의 빡세고 복잡한 훈련에 익숙해져 있던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 안첼로티의 느슨한 훈련에 불만을 가졌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9]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안첼로티는 "내 딸이 걔랑 결혼한 게 그렇게 잘못이야?"라고 꽤 불쾌해했다. 그러나 이 사위도 장인이 일이 없는 경우엔 쭉 무직 상태였기에 낙하산 취급받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