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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 개요
커타(Curta )는 197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던 휴대용 기계식 계산기의 일종이다. 오스트리아의 공학자 쿠르트 헤르츠슈타크(Curt Herzstark )[1]가 설계했다. 위에 회전 레버가 달려있는 원통형이며 한 손으로 쥘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크기를 지녔다.
기계 매니아들이 3D 프린터로 인쇄하기도 한다. 프린터의 해상도, 재질에 한계가 있다 보니 원제품보다 상당히 크다.
2. 역사
쿠르트 헤르츠슈타크는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커타에 들어갈 부품들을 개발하며 특허를 출원했지만, 안슐루스 이후 부친의 회사가 나치에게 압류되어 군수품 생산에 활용되었기 때문에 개발을 계속할 수 없었다. 쿠르트는 아버지가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Buchenwald concentration camp )에 끌려갔다. 환경이 열악하여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쿠르트의 능력을 눈여겨본 나치는 빌헬름 구스틀로프 재단(Wilhelm Gustloff Stiftung )의 공장에서 실무적 노동을 시켰다. 쿠르트는 이후 베네뮌데군사연구소(Heeresversuchsanstalt Peenemünde )에서 정밀 부품 생산 부서장으로 일하며 커타의 개발을 완료했고, 전쟁이 끝난 후 히틀러에게 커타를 바치면 아리아인으로 인정받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준 공장장 뮌헨에게 릴리풋(Liliput)[2]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커타를 선물했다. 나치가 패망하고 자료는 소각되었지만 쿠르트는 커타의 설계도 전체를 머릿속에 넣고 있었다. 리히텐슈타인 대공 프란츠 요제프 2세가 관심을 보였고, 리히텐슈타인에서 커타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커타는 총 140,000 여 개가 생산되었으며 1972년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오늘날에는 전자계산기에 밀려 수집가들의 수집 대상이나 취미 수준으로 취급된다. 오늘날 진품 커타는 1000 달러가 넘는 가격에 판매된다.3. 여담
쿠르트 헤르츠슈타크는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동료들의 목숨을 구했고, 룩셈부르크인을 구한 공로로 룩셈부르그 형제단에게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룩셈부르크 명예 시민권자가 되었다. 나무위키에서 룩셈부르크에서 커타를 생산했다는 근거 없는 가짜 뉴스가 돌고 있는데 이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리히텐슈타인 또한 룩셈부르크 이하 체급의 게르만계 소국이기 때문에 헷갈렸을 수도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 오스트리아에 둘러싸여 있으며 오스트리아에서 독립했고, 룩셈부르크는 벨기에, 독일, 프랑스에 둘러싸여 있으며 네덜란드에서 독립했다.[1] 실제 발음은 커트 허츠슈타크에 가깝다.[2]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난쟁이들의 나라의 이름이다. 이전의 덩치 큰 기계식 계산기보다 크기가 훨씬 작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