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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2 17:21:46

컴팩

파일:Compaq.svg

1. 개요2. 역사
2.1. 초창기2.2. 쫓겨난 설립자2.3. 성장2.4. 몰락2.5. 합병

1. 개요


컴팩 컴퓨터는 1982년텍사스 해리스 카운티에 세운 미국개인용 컴퓨터 회사였다.

이 회사는 로드 캐니언, 짐 헤리스, 빌 머토가 창립하였으며, 이들은 이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고위 관리자였다. "COMPAQ"이라는 이름은 "Compatibility and Quality"에서 따온 말이라고 했지만, 이건 훗날에 만든 설명이며, 실제로는 홍보 대행사에 의뢰해 나온 회사명 제안들 중 설립자들이 가장 거부감이 적은 것을 선택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개인용 컴퓨터 공급업체들 중의 하나였던 컴팩은 2002년까지 독립 회사로 존재해 오다가, 끝내 휴렛 팩커드에 합병되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순에 진출하여 TV 광고로 건물마다 컴퓨터를 창밖으로 내던져 부수는데 컴팩은 무사한 해외 광고를 그대로 방영한 바 있었다.

2. 역사

2.1. 초창기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를 그만둔 세 설립자는 처음에 IBM PC 호환기종 컴퓨터를 판매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 당시 IBM PC 호환 기종을 만드는 신생 기업들이 많았지만, 컴팩은 새로운 기능과 성능 더 나은 그래픽의 IBM PC 호환 기종을 만들어 다른 신생 기업들과 차별화했다.

특히 이듬해인 1983년 3월에 출시한 컴팩 포터블(Compaq Portable)이 그 예 중 하나인데, 컴팩은 세계 최초로 랩톱 규격의 IBM PC 호환 기종을 만들었다. 지금의 랩톱은 곧 노트북을 뜻하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는데, 당시 기술적인 문제로 좀 두꺼운 서류 가방 형태의 컴퓨터를 랩톱이라 불렀다. IBM은 컴팩이 자신들의 BIOS의 저작권을 침해해 만들었다고 판단하고 소송을 걸었지만, 곧 컴팩이 100만 달러를 투자해 BIOS를 역설계로 저작권 침해 없이 만들어졌음이 밝혀져 패소하기도 했다.

그리고 컴팩은 1986년 세계 최초로 인텔 80386 CPU를 넣은 IBM PC 호환 기종, 컴팩 데스크프로 386(Compaq Deskpro 386)를 출시했다. 이때 마이크로소프트 Windows/386과 같이 판매했다. 당시 인텔 80386은 성능도 괜찮고 가상 8086 모드라는 가상화 기술을 선보였는데, 이 때문에 IBM과 갈등이 일었다. IBM은 당시에 인텔의 가상화 기술이 비록 초보적이었지만, 훗날 IBM의 종속성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System/36이나 System/38 같은 미니컴퓨터 사업을 위협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빌 게이츠는 이에 대해 이렇게 인터뷰한 적이 있다.
A big milestone was that the folks at IBM didn't trust the 386. They didn't think it would get done. So we encouraged Compaq to go ahead and just do a 386 machine. That was the first time people started to get a sense that it wasn't just IBM setting the standards, that this industry had a life of its own, and that companies like Compaq and Intel were in there doing new things that people should pay attention to.

IBM 사람들이 386을 신뢰하지 않았던 것이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컴팩이 계속해서 386 머신을 만들도록 권장했습니다. IBM만이 표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산업에 고유한 생명이 있으며, 컴팩 및 인텔과 같은 기업이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PC Magazine 1997년 3월 25일호, 230p

또한 IBM은 인텔의 라이선스를 받아 80286을 생산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PC에 80386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컴팩의 데스크프로 386 출시를 계기로 IBM PC의 규격 주도를 IBM이 아닌 흔히 Wintel로 불리었던, 인텔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IBM PC 호환 기종 기업들로 넘어가게 됐으며, 컴팩이 IBM PC 호환 기종 기업들 중 선두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됐다.

이후 IBM은 IBM PS/2OS/2로 PC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길 바랐고, MCA(Micro Channel Architecture) 32비트 버스 확장 슬롯을 만들어 PS/2에 넣었다. 컴팩은 이에 대항해 다른 8개의 IBM PC 호환 기종 기업들과 컨소시엄, Gang of Nine[1]을 구성해 32비트 버스 확장 슬롯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EISA(Extended Industry Standard Architecture)이다. 그리고 이 슬롯을 세계 최초로 탑재한 컴퓨터, 컴팩 시스템 프로(Compaq SystemPro)를 1989년 말에 출시했다. 이 컴퓨터는 서버로 RAID 구성을 지원했다. 그러나 MCA와 EISA는 사이좋게 망했고, 32비트 슬롯 규격은 VESA 로컬버스를 거쳐서 인텔에서 만든 PCI를 사용하게 되었다.

1989년이 되면 뉴욕 타임즈는 컴팩이 업계 선두 주자가 됐다는 기사를 실었으며, InfoWorld는 PC 사업면에서 IBM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다고도 평가했다.

2.2. 쫓겨난 설립자

컴팩은 1980년대까지 고성능 고급 PC로 차별화해 사실상 IBM PC 호환기종 업계의 선두 주자가 됐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이 전략이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데 컴팩처럼 BIOS를 역설계해 라이선스만 판매한 아메리칸 메가트렌즈(現 AMI), 피닉스 테크놀로지, 어워드 소프트웨어 등이 속속 생겨나 IBM PC 호환 기종의 기술 장벽이 낮아지기 시작하면서 저렴한 IBM PC 호환 기종 기업들, 대표적으로 이나 심지어 대만 컴퓨터들도 괜찮은 품질 수준의 저렴한 PC들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1991년 기업 역사상 최초로 7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결국 컴팩은 비용 절감 방안을 고민해야 했는데, 여기서 설립자인 로드 캐니언과 이사회의 갈등이 시작됐다. 로드 캐니언은 적어도 품질과 성능 보증을 위해 자체 부품 개발을 고집한 반면, 이사회는 컴퓨터를 표준 부품들로 구성해 더 저렴하게 만들어 더 빠른 주기로 신제품을 만들어 판매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1991년 4월 이사회는 설립자였던 로드 캐니언을 해임했고, 후임으로 에커드 파이퍼(Eckhard Pfeifer) COO를 CEO로 승진시켰다.

2.3. 성장

CEO가 된 에커드 파이퍼는 본체 가격 1000달러 미만의 저렴한 컴퓨터 제품군들을 출시하면서 컴퓨터 가격 전쟁을 시작했다. 코모도어 64 이후 2번째 컴퓨터 가격 전쟁이었다. 컴팩 프리자리오(Compaq Presario) 브랜드도 이때 탄생했는데, 1990년대 중반에 가장 많이 팔려 유명해진 컴퓨터 브랜드가 되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다른 PC 대기업들은 고려하지 않던 AMDCyrix의 CPU도 기꺼이 탑재해 팔았고, 부품들은 대부분 대만에서 구했으며, 심지어 중국 선전시에 공장을 지어 컴퓨터 케이스를 생산하고 컴퓨터를 조립하기도 했다. 에커드 파이퍼가 1999년 이사회에 의해 해임될 때까지 비용 절감에 매진했던 기조는 계속되었다. 이 덕에 1993년에는 컴퓨터 판매량에서 애플을, 이듬해에는 IBM을 제칠 수 있었다.

당시 컴팩은 비용 절감과 가격 전쟁 전략이 오랫동안 성공해 경쟁 기업들이었던 IBM과 휴렛 팩커드는 PC 사업에서 손실을 입었고 이를 IBM의 경우 IT서비스 사업이나 휴렛 팩커드는 사무 자동화 사업으로 벌충해야 했다. 하지만, 컴팩은 수익도 견고하게 내면서 매출액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또 이때 탠디 코퍼레이션이나 AST 리서치(AST Research)[2] 같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던 많은 PC 회사들은 고사해 사업을 중단하기도 했으며, 다른 PC 회사들은 컴팩의 비용 절감 사례를 벤치마킹해 반영하기도 했다.

또한 랙마운트 서버라 불리는 19인치 랙 형태의 서버도 컴팩에서 최초로 1993년에 만들었다. 인텔 펜티엄 II 제온 450MHz와 256MB DRAM로 구성한 서버였다. 컴팩은 이 서버 제품의 이름을 프로라이언트(ProLiant)로 지었는데, 현재 HPE의 x86 서버 상표로 유명하다. 원래 휴렛 팩커드에서도 넷서버(NetServer)라는 상표로 서버를 판매하고 있었으나, 아래 설명한 컴팩과의 인수 합병 후 프로라이언트로 대체해 사용하고 있다. 또한 1997년에는 금융권 전산망에서 중간 전산기로 필수로 구성했던 논스톱 서버(NonStop Server)로 유명한 탠덤 컴퓨터도 인수했다.

컴팩의 전성기는 1998년이었다. 1998년에는 한때 미니 컴퓨터와 알파 프로세서로 유명했던 기업인 Digital Equipment Corporation(DEC)을 무려 90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2.4. 몰락

이런 컴팩에게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기성 유통망을 이용하지 않고 소비자 직접 판매 방식으로 컴퓨터를 판매했던 이 인터넷의 수혜를 입으면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이전까지 델은 컴퓨터 잡지로 광고해 전화로 주문을 받고 택배로 컴퓨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컴퓨터를 판매했으나, 1996년에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소비자들에게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아 판매하기 시작했다. 기성 유통망을 활용하지 않아 유통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강했다. 컴팩은 델과 경쟁하기 위해 비용 절감에 매몰되었고, 이로 인해 컴퓨터 품질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1998년부터 반품 재고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

또한 컴팩의 DEC 인수도 문제였다. 컴팩이 DEC를 인수한 것은 IT서비스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에커드 파이퍼는 결합된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라던가 서로 다른 사내 문화를 어떻게 화학적으로 결합해야 할지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1998년에 인수한 후 컴팩과 DEC는 사내 권력 암투 때문에 오랫동안 혼란에 휩싸였다.

결국 1999년 1분기 수익은 월가의 예상보다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결국 4월에 에커드 파이퍼는 이사회에 의해 해임되었다. 경쟁 기업인 델은 닷컴 버블 수혜를 톡톡히 입어 1999년 1분기 미국 PC 판매량이 55%나 성장했지만 컴팩은 10%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후임으로 마이클 카펠라스(Michael Capellas) CIO(Chief Information Officer, 정보관리책임자)를 CEO로 승진시켰다.

2001년 컴팩은 델에게 세계 최대 PC 기업을 내주었고, 같은 해 닷컴 버블 붕괴로 PC와 서버 수요가 큰 타격을 입으며 고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iPAQ PocketPC는 시장에 좋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2001년 Alpha 프로세서 개발을 포기하고 인텔에 매각하고, 인텔과 휴렛 팩커드가 공동 개발하고 있던 아이태니엄 프로세서 진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2.5. 합병

2001년 9월 3일, 휴렛 팩커드가 컴팩을 242억 달러에 인수 합병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 대해 업계와 월가는 비판적이었다. 사업 중복이 많아 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적은 데다가 규모만 커져 고정 비용이 폭증할 위험성이 컸으며 당시 컴팩의 부채가 꽤 많은 편이라 재무 건전성 면에서도 불안정해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휴렛 팩커드의 주주들 중 일부와 심지어 휴렛 팩커드의 설립자 중 한 명의 아들이었던 데이비드 W 패커드 마저 인수 합병 거래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휴렛 팩커드의 CEO였던 칼리 피오리나는 뜻을 관철했고, 결국 2002년 5월 3일 합병을 완료했다.

합병 후 휴렛 팩커드는 컴팩을 저가 컴퓨터 브랜드로 한동안 사용했다가[3], 2013년 미국 지역부터 단종시켰다.


[1] 중국의 4인방을 빗대 만든 말이다. 컨소시엄에 참가한 기업 중에 휴렛 팩커드, 세이코 엡손, 탠디 코퍼레이션, NEC, WYSE 등이 있다.[2] 1993년 탠디 코퍼레이션의 컴퓨터 사업을 인수해 1995년까지만 해도 세계 5번째 컴퓨터 회사였던 곳. 1995년 삼성전자에서 3억 7700만 달러에 인수했으나 원래부터 컴팩의 가격 전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긴 했지만 삼성전자의 어설픈 운영으로 빠르게 몰락했고, 3년 남짓만인 1999년 고작 1250만 달러에 팩커드 벨(Packard Bell)에 매각했다.[3] 이때 종전의 컴팩 노트북 매니아들 사이에서 반발이 엄청났는데, 컴팩의 고급 비즈니스 제품군인 아마다 시리즈가 HP에 인수 되면서 사실상 끝장 나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잠시동안 비즈니스 제품군으로 컴팩 에보 시리즈가 나오기는 했지만 일부 제품군이 소비자용 제품군인 프리자리오의 리뱃징으로 때우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다가 결국 2003년에 단종되면서 컴팩은 아예 HP의 저가 브랜드로 전략해 버렸다. 특히 HP 합병 이전인 1999년에 출시되어 2001년 말 까지 생산된 아마다 M300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씽크패드 240, 570은 물론이고 1년 후에 등장한 씽크패드 X20과 견줄만한 명기라는 평가를 받았으니 더더욱 반발이 심했을 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