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경에 찍은 사진. 왼쪽이 로니 브라운, 오른쪽이 로이 윌리엄슨이다.
멤버 이름 | 생년월일 | 포지션 | 관련항목/키워드 (멤버별) |
로이 윌리엄슨 | 1936.6.25 | 보컬, 기타, 틴 휘슬 등등 | 1990.8.12 사망, 활동기간 1962~1990 |
로니 브라운 | 1937.8.20 | 보컬, 기타, 하모니카 등등 | 활동기간 1962~1990 |
빌 스미스 | 1936 | 보컬, 기타 | 활동기간 1962~1966 |
패디 벨 | 1931.4.8 | 보컬, 밴조, 기타 | 2005.8.3 사망, 활동기간 1962~1965 |
1. 개요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 밴드. 아일랜드 포크 음악 같은 경우 클랜시 브라더스와 더블리너스가 서로 누가 최종 보스인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가운데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 울프 톤스, 아이리시 로버스, 퓨리스 같은 다른 그룹들도 거기에 못지않는 인기를 얻었지만,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은 사실상 코리스가 부동의 1위 최종보스로 군림하고 있는 상황.코리스가 없었다면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은 아일랜드 포크 음악과 같은 하나의 대중음악 장르로 자리잡지 못했을 것이며 그냥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정도로나 취급되었을 것이다. 물론 코리스 이전에도 알렉스 캠벨(Alex Campbell) 같은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가들이 클랜시 브라더스가 스타트를 끊은 아일랜드 포크 리바이벌(전통 음악 부흥 운동)의 영향을 받아 스코틀랜드 포크 리바이벌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 스코틀랜드 포크 리바이벌을 제대로 끓어오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코리스. 현대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을 있게 한 원동력이며 또한 현대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 그 자체가 바로 코리스이다!
아일랜드 포크 음악의 아이콘을 말하라 그러면 클랜시 브라더스와 더블리너스 둘 다 해당이 된다. 그리고 후발 주자들인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나 울프 톤스 같은 다른 인기 그룹들도 결코 거기에 뒤지지 않는 인기를 구가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의 아이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코리스. 코리스와 비교할 만한 그룹을 그나마 하나 들자면 코리스보다 2년 늦게 조직된 매컬먼스(The McCalmans)이다. 매컬먼스는 아일랜드에서 더블리너스가 그러했듯이, 독일과 같은 다른 유럽 국가에서 인기를 끌며 스코틀랜드 음악을 널리 전파하는 데에 앞장섰으니 매컬먼스를 무시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적어도 코리스의 최대 히트곡인 Flower of Scotland가 스코틀랜드의 국가가 되었다는 점에서 코리스는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계의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최종보스라 할 수 있겠다.
코리스가 먼치킨인 또 다른 이유는 다루는 악기 종류가 장난이 아니게 많다는 것. 보통 일반적인 포크 음악 그룹은 한 멤버가 한 가지 악기만 다루거나 많아 봐야 4가지, 5가지 정도이며, 전체 악기의 가짓수도 많아 봐야 10가지를 넘지 않는다. 때문에 앨범 작업을 할 때는 세션을 많이 동원을 하는 것. 그런데 코리스는 2인조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다룬 악기의 가짓수는 20가지가 넘는다! 세션을 단 1명도 동원하지 않고 20여 가지의 다양한 악기를 연주를 했다는 것에 대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코리스 멤버 각각만 봐도 정말 엄청난 먼치킨인데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로이 윌리엄슨은 탁월한 작곡 능력과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감미로운 중저음을 탑재했다. 그런데 그 '다양한 악기' 라는 것이 가짓수가 거짓말 안 치고 10가지를 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악기를 개발하기까지 했다! 로니 브라운은 로이 윌리엄슨만큼의 초능력자라 할 수는 없겠지만 역시 거의 10가지 가까운 악기를 다루며 작곡도 어느 정도 했으니 다른 포크 가수들과 비교하면 역시 먼치킨.
2. 멤버
코리스(The Corries)라는 이름은 1966년 2인조로 전환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62년 처음 조직되었을 때는 코리 포크 트리오와 패디 벨(The Corrie Folk Trio and Paddie Bell)이라고 했다. 코리(Corrie)는 스코틀랜드 북부의 고원 지대에 분포하는 특수한 빙하 지역인 '권곡' 을 뜻하는 스코틀랜드식 영어.코리스 멤버는 다음과 같이 2명. 사실상 '코리스' 라고 하면 이렇게 둘을 두고 하는 말이다.
* 로이 윌리엄슨(1936.6.25.~1990.8.12.): 보컬, 기타, 만돌린, 반두리아[1], 부주키[2], 잉글리시 기타[3], 라우드[4], 치터 기타[자체제작], 28현 기타[자체제작], 콤볼린[7], 바이올린, 틴 휘슬, 플루트, 콘서티나, 노섬브리안 파이프[8], 롤랜드 파이프[9], 바우란
* 로니 브라운(1937.8.20~): 보컬, 기타, 만돌린, 밴조, 솔터리[10], 콤볼린, 틴 휘슬, 하모니카, 바우란
코리 포크 트리오 멤버는 로이 윌리엄슨, 로니 브라운, 빌 스미스이다. 물론 이 때는 저렇게까지 많은 악기를 다루진 않았다. 로니 브라운은 하모니카만 다뤘고(클랜시 브라더스의 패디 클랜시처럼), 로이 윌리엄슨은 기타, 반두리아, 콘서티나를 다뤘다. 또한 이 때는 세션도 동원하였다.
* 빌 스미스(1936~): 보컬, 기타
* 패디 벨(1931.4.8~2005.8.3): 보컬, 밴조, 기타
3. 역사
3.1. 코리 포크 트리오 시기
코리 포크 트리오는 1962년 가을에 에딘버러에서 조직되었다. 당시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클랜시 브라더스가 문자 그대로 소녀시대급의 엄청난 인기를 끌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 있었다. 거기에 영향을 받아 영어권 전체의 대중 음악계에서 한참 포크 리바이벌, 곧 전통 음악 부흥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것.원래 코리 포크 트리오는 코리 보이스(The Corrie Voice)라 하여, 에딘버러 예술 대학교(Edinburgh College of Art)를 나온 건축기사 세 명이서 조직한 아마추어 포크 그룹을 그 모체로 하고 있다. 앤디 터너(Andy Turner), 론 코크번(Ron Cockburn), 그리고 빌 스미스. 그러나 아무런 공식 활동(공연이나 음반 작업)도 하지 않았는데 앤디 터너가 탈퇴를 했고, 에딘버러 예대를 졸업한 미술 선생님 로이 윌리엄슨이 합류했다. 론 코크번도 곧 탈퇴하고 역시 미술 선생님이며 1955년부터 7년째 로이 윌리엄슨의 절친한 친구였던 로니 브라운이 그룹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룹 이름은 코리 포크 트리오로 바뀌었다.
로이 윌리엄슨과 로니 브라운은 정말 절친한 친구였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아일랜드에 토미 메이컴과 리엄 클랜시가 있다면, 스코틀랜드에는 로이 윌리엄슨과 로니 브라운이 있다. [11] 같은 ECA를 나왔고(로이 윌리엄슨이 1년 가량 럭비 선수로 뛰다가 들어와서 1살 많지만 학번은 같았다) 미술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에는 모두 미술 선생님을 하고 있었다. 또한, 로이 윌리엄슨과 브라운은 각각 에든버러 원더러스와 보러뮤어라는 럭비팀에서 윙(Wing)으로 활약하며, 럭비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로이 윌리엄슨은 목공예에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뒤에 설명할 코리스 자체 제작 악기도 전부 로이 윌리엄슨이 직접 만든 것이다. 그리고 로니 브라운은 가수 활동을 하면서도 그림도 그리며, 이 그림은 코리스 홈페이지에서 코리스 앨범과 함께 팔고 있다! 음악계에서 은퇴한 지금도 그림은 그린다. 아니,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싶어서 음악계에서 은퇴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바야흐로 스코틀랜드판 탱화백 등장.
아무튼 이렇게 미술 선생님 2명, 건축기사 1명으로 조직된 3인조 그룹에 패디 벨이라는,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스코틀랜드에 건너와 있던 비서가 합류했다. 이에 따라 공식 명칭은 '코리 포크 트리오와 패디 벨'이 되었다. 클랜시 브라더스의 공식 명칭이 '클랜시 브라더스와 토미 메이컴'인 것처럼. 사실 코리 포크 트리오는 클랜시 브라더스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은 정도를 넘어서 클랜시 브라더스의 스코틀랜드 버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은 것이, 다음과 같은 정말 엄청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1. 3+1 체제: 클랜시 브라더스(패디, 톰, 리엄 클랜시)와 토미 메이컴의 3+1 체제가 코리 포크 트리오(로이 윌리엄슨, 로니 브라운, 빌 스미스)와 패디 벨의 3+1 체제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당장 그룹 이름만 봐도...
2. 유니폼: 클랜시 브라더스가 흰색 스웨터를 유니폼으로 입는 것을 그대로 모방하여 코리 포크 트리오도 알록달록한 무늬 있는 유니폼을 채택하였다. 이후 2인조로 전환하고 나서조차도 코리스는 포크 그룹으로는 드물게 유니폼을 착용했다. [12]
클랜시 브라더스 유니폼
코리 포크 트리오 유니폼
3. 레퍼토리: 코리 포크 트리오가 부른 노래들 가운데 상당수가, 심지어 아일랜드 곡이 아니라고 해도, 클랜시 브라더스가 불렀던 곡들이다. 게다가 초기 코리 포크 트리오는 아일랜드 곡들을 굉장히 많이 불렀다. 심지어 아이리시 레벨 송(Irish rebel song)까지도 불렀다!
다음은 코리 포크 트리오가 불렀던 곡들과 이들이 수록된 앨범을 리스트로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서 볼드체 처리한 것들이 모두 클랜시 브라더스가 불렀던 곡들이다.Around Cape Horn
The Promise Of The Day[13] - ZLP 2050 L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In Retrospect [14] - STAL 5005 LP
Blow Ye Winds, In the Morning
More Folk Songs for the Burds [15]- ELP 132 EP
CFT & PB [16]- Elektra EKL-291 LP
In Retrospect - STAL 5005 LP
Bonnie Lass O' Fyvie [17]
CFT & PB [18]- - ZLP 2042 LP
CFT & PB [19]- - Elektra EKL-291 LP
In Retrospect - STAL 5005 LP
Bonny Earl O' Moray, The[20]
More Folk Songs for the Burds - ELP 132 EP
Bothwell Castle
CFT & PB [21] - Elektra EKL-291 LP
Bungle Rye[22]
Yon Folk Songs is for the Burds [23] - ELP 131 EP
CFT & PB [24]- Elektra EKL-291 LP
Cherry Tree Carol, The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In Retrospect - STAL 5005 LP
Christ Was Born In Bethlehem
Frosty Winds [25] - GEP 8947 EP
In Retrospect - STAL 5005 LP
Come O'er the Water
CFT & PB [26] - ELP 129 EP
CFT & PB [27] - Elektra EKL-291 LP
Coorie Doon
CFT & PB [28]- ZLP 2042 LP
CFT & PB [29]- Elektra EKL-291 LP
Doodle Let Me Go
Yon Folk Songs is for the Burds - ELP 131 EP (6 track version only)
CFT & PB [30]- ZLP 2042 LP
CFT & PB [31]- Elektra EKL-291 LP
Fear A Bhata (The Boatman)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Fine Flowers in the Valley
More Folk Songs for the Burds - ELP 132 EP
CFT & PB [32]- Elektra EKL-291 LP
Fine Girl
CFT & PB [33]- ELP 129 EP (6 track version only)
Gift O' Gowd, The
Frosty Winds - GEP 8947 E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Greenland Fisheries, The
CFT & PB [34]- ZLP 2042 LP
In Retrospect - STAL 5005 LP
I Saw Three Ships A-Sailing
Frosty Winds - GEP 8947 E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Itinerant Cobbler, The[35]
Yon Folk Songs is for the Burds - ELP 131 EP
CFT & PB [36]- ZLP 2042 LP
CFT & PB [37]- Elektra EKL-291 LP
Jock Hawk's Adventures in Glasgow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Jock o' Braidislee
CFT & PB [38] - ZLP 2042 LP
Johnnie Lad[39]
CFT & PB [40] - ELP 129 EP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In Retrospect - STAL 5005 LP
Jug of Punch, The[41]
CFT & PB [42] - ELP 129 EP
CFT & PB [43]- Elektra EKL-291 LP
Killiecrankie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In Retrospect - STAL 5005 LP
Leaving of Liverpool, The[44]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Lock The Door, Lariston
CFT & PB [45]- ELP 129 EP
CFT & PB [46]- ZLP 2042 LP
CFT & PB [47]- Elektra EKL-291 LP
Lord Gregory
CFT & PB [48]- ELP 129 EP (6 track version only)
CFT & PB [49]- ZLP 2042 LP
Lowlands
Yon Folk Songs is for the Burds - ELP 131 EP (6 track version only)
MacPherson's Rant or MacPherson's Farewell[50]
CFT & PB [51]- ZLP 2042 LP
My Love She's But A Lassie Yet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In Retrospect - STAL 5005 LP
Queen Mary, Queen Mary
More Folk Songs for the Burds - ELP 132 EP (5 track version only)
CFT & PB [52]- Elektra EKL-291 LP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Queen's Maries, The
Yon Folk Songs is for the Burds - ELP 131 EP
Roddy McCorly [53]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Shoals O' Herrin' [54]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Singin' Bird [55]
CFT & PB [56]- ELP 129 EP
CFT & PB [57]- Elektra EKL-291 LP
Singing Games, The[58]
CFT & PB [59]- ZLP 2042 LP
CFT & PB [60]- Elektra EKL-291 LP
In Retrospect - STAL 5005 LP
Tiree Love Song
Yon Folk Songs is for the Burds - ELP 131 EP
Trooper and The Maid, The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Twa Corbies, The
More Folk Songs for the Burds - ELP 132 EP
Uist Tramping Song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In Retrospect - STAL 5005 LP
Verdant Braes O' Screen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Whistling Gipsy [61]
The Promise Of The Day - ZLP 2050 LP
The Promise Of The Day - Elektra EKL 304 LP
출처: http://www.theballadeers.com/scots/cft_d12_notes.htm
코리 포크 트리오는 매년 가을에 에딘버러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문화 축제인 에딘버러 페스티벌(Edinburgh Festival)을 통해 음악계에 데뷔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부터 벌써 먼치킨의 feel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첫 공연 때는 관객이 딱 8명이었는데 페스티벌 막판에는 전석이 매진되었다!
코리 포크 트리오는 이듬해 1963년부터 앨범 작업을 시작하여, 1963년에는 세 장의 미니앨범을 냈다. 특이한 것은 이 미니앨범들은 같은 제목의 앨범이 4곡짜리 버전과, 그 4곡에 없는 2곡을 추가한 6곡짜리 버전이 각각 따로 있다는 것. 그리고 1964년에는 정규 앨범 <The Corrie Folk Trio and Paddie Bell>과 싱글 <O Waly Waly & Love is Teasing>을 냈다. 1965년에는 <The Corrie Folk Trio and Paddie Bell> 이라는 제목의 또 다른 앨범과 <Frosty Winds> 라는 4곡짜리 미니앨범, 그리고 <The Promise of the Day>라는 앨범을 냈다. [62] 그러나 1965년 중에 패디 벨이 그룹을 탈퇴하게 되었는데, 이는 임신과 출산 때문이었다. 나머지 세 멤버들은 같은 해 <Those Wild Corries!>라는 앨범을 녹음했다. 그리고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는데, 1966년 새해 첫날 빌 스미스가 탈퇴를 선언했다. 그와 동시에 음악계에서도 물러나 건축기사로 복귀했다.
이에 따라 로니 브라운과 로이 윌리엄슨은, 빌 스미스의 대타를 영입하기보다는 2인조로 전환하기를 선택을 했는데...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로니 브라운과 로이 윌리엄슨 모두 자기네들이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계의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1인자 킹왕짱 먼치킨 최종보스가 될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2. 코리스 시기
로니 브라운과 로이 윌리엄슨은 2인조로 전환하면서 지하실에 들어가 전화선 다 끊어 놓고 연습에 집중했다. 물론 이미 녹음해 놓은 <Those Wild Corries> 앨범은 발매를 했다. 이를 통해 기존의 코리 포크 트리오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그룹, 코리스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 코리 포크 트리오와 코리스의 음악 스타일은 굉장히 많이 다르다. 일단 악기 종류만 해도... 로이 윌리엄슨과 로니 브라운이 그렇게 많은 악기를 다루게 된 것은 이 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겠다.뒤에 설명하겠지만 코리스의 특징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초기 뮤직비디오 영역을 개척했다는 것. 물론 요즘 뮤비처럼 진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특정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 비디오 화면에 나와서 연주를 하는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초기 뮤직비디오 영역에 뛰어든 선구자였다. 2인조 그룹으로서의 코리스는 첫 활동을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래 유튜브 클립이 바로 그것. <Braes of Killiecrankie>라는 제목의 곡인데, 이 곡의 배경이 된 실제 킬리크랭키(Killiecrankie)라는 곳에서 길을 걸어가며 촬영했다.
1966년도에 나온 코리스 뮤직비디오 1호.
이듬해에 코리스는 2인조 전환 후 첫 앨범인 <Bonnet, Belt, and Sword>라는 앨범을 발매했다. 그리고 이 해에 아주아주 중요한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뒤에 코리스의 최대 히트곡이 된 것으로도 모자라서 결국에는 스코틀랜드 국가가 되기까지 한 <Flower of Scotland>를 로이 윌리엄슨이 작사, 작곡한 것. 1967년, 이 곡은 앨범이 아닌 뮤직 비디오 형태로 첫 선을 보였다. 다음 유튜브 클립이 바로 그것이다.
1967년, 스코틀랜드 북부의 'Ruthven barracks' 앞에서 <Flower of Scotland>를 연주하고 있는 코리스. 로이 윌리엄슨이 켜고 있는 악기가 부주키이고, 로니 브라운이 치고 있는 프레임 드럼이 바우란이다.
1968년 코리스는 두 번째 정규 앨범인 <Kishmul's Galley>를 발매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먼치킨의 길을 가게 되는데... 이듬해 코리스가 발매한 라이브 앨범 <The Corries in Concert>에서 <Flower of Scotland>가 최초로 앨범 형태로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 코리스는 런던에서 스튜디오 앨범 <Scottish Love Songs>를 녹음하여 이듬해에 발매를 했는데, 이것을 별도로 서술하는 까닭은 이 앨범에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스코틀랜드 고전 포크송 1, 2위를 다투는 <Annie Laurie>(애니 로리)
코리스 버전의 애니 로리.
한편 1969년 여름, 로이 윌리엄슨은 자체 악기인 콤볼린을 개발했다. 이전에도 로이 윌리엄슨은 28현 기타나 치터 기타와 같은 자체 악기를 만들어 연주를 했지만, 이 콤볼린의 경우는 굉장히 특이한 것이 여러 가지 악기를 하나로 합쳤다! 애초에 새로 악기를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나 할 수 없는 발상인데,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로이 윌리엄슨 전용과 로니 브라운 전용을 따로 만들었다. 로이 윌리엄슨 전용 콤볼린은 기타와 반두리아를 합쳐 놓고 거기에 공명현, 곧 그 현을 직접 연주는 하지 않지만 다른 현을 연주할 때 그 공명으로 울리게 되는 현 13줄을 추가했다. 로이 윌리엄슨 콤볼린이 마치 인도의 시타르처럼 한쪽에 줄감개가 잔뜩 튀어나와 있는 것은 이 때문. 로니 브라운 전용 콤볼린은 기타와 만돌린을 합쳐 놓고 거기에 베이스 현을 덧붙였다. 콤볼린은 다음과 같이 생겼다!
로이 윌리엄슨의 콤볼린. 가운데 긴 지판으로 된 부분이 기타 부분이고 오른쪽 짧은 지판으로 된 부분이 반두리아 부분이다. 왼쪽에 있는 줄감개에는 공명현이 감겨 있다. 무늬 끝이 뾰족하다.
로니 브라운의 콤볼린. 가운데 긴 지판으로 된 부분이 기타 부분이고 오른쪽 짧은 지판으로 된 부분이 만돌린 부분이다. 무늬 끝이 타원형이다.
1983년 스코틀랜드 방송국의 TV 프로에 출연한 코리스. 콤볼린을 연주하며 <Loch Tay Boat Song>을 부르고 있다.
1970년, 코리스는 레이블을 EMI로 바꾸고, 콤볼린을 사용한 트랙이 처음으로 수록된 <Strings and Things> 앨범을 내놓았다. 1971년에는 <Live at the Royal Lyceum Theatre>, 1972년에는 <Sound the Pibroch>과 <Live A Live O>(다른 레이블로 발매), 1973년에는 <A Little of What you Fancy> 앨범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1974년, 코리스는 레이블을 Dara로 바꾸고, 이 해에 <Live from Scotland Volume 1> 앨범을 발매했다. 이 앨범에는 명실상부한 코리스 최대 히트곡인 <Flower of Scotland>가 수록되었고, 로니 브라운이 작사 및 작곡한 <The Roses of Prince Charlie>도 수록되었다. 그리고 이 두 곡은 따로 싱글로도 발매가 되었는데...
문자 그대로 초초초초초초초대박을 터트렸다. 코리스는 문자 그대로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계의 독보적이고 압도적이며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종 보스로 등극을 했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설명하려면, 2007년 하반기(<Tell Me>)와 2008년 하반기(<Nobody>)의 원더걸스 말고는 마땅히 비교할 곳이 없겠다. 이것으로도 모자라서 이 곡이 하도 대박을 터트리다 보니, 스코틀랜드 럭비 국가대표팀 내에서 이 곡이 응원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문자 그대로 슈퍼스타가 된 코리스는 1975년도에는 <Live From Scotland> 앨범의 2권, 3권을 연달아 발매하며 진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스코틀랜드 음악 역사를 통째로 뒤바꿔 놓은 인기를 구가했다. 아래 유튜브 클립은 이 무렵인 1976년에 글래스고에서 공연하는 영상.
1976년 11월, 글래스고에서 <The Lads among Heather>라는 곡을 부르고 있는 코리스. 잘 들어 보면 이 곡이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같은 데 나오는 우리 한국의 전통 음악 비슷하게 들린다. 실제로 연주해 보면 한국 전통 음악처럼 5음계로 이루어져 있다.
1977년 코리스는 스튜디오, 라이브 앨범을 각각 하나씩 발매했다. 스튜디오 앨범은 <Peat Fire Flame>이라는 앨범인데 코리스의 앨범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평가를 받기도 한다. 물론 대표곡인 <Flower of Scotland>와 <The Roses of Prince Charlie>가 포함된 1974년도 <Live from Scotland> 1권이 코리스를 대표하는 앨범이겠지만, 이 앨범도 들어 보면 다양한 악기가 사용되었고 곡들 하나하나도 굉장히 우수한 곡들이다. 그리고 같은 해에 <Live from Scotland> 4권도 발매되었다. 이 무렵이 바야흐로 코리스가 인기 최정상에 등극했을 때인데, 이 때의 공연 비디오를 하나 보면 정말 코리스의 인기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978년, <Peat Fire Flame> 앨범에 1번 트랙으로 수록된 곡인 <Leezie Lindsay>를 부르고 있는 코리스.
1980년대에 들어와서도 코리스의 인기는 여전했다. 이 무렵 스코틀랜드와 영국 중앙정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63] , 잉글랜드에 대한 저항감과 스코틀랜드인들의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코리스 레퍼토리가 잘 먹혀들게 된 것. 1980년에 코리스는 <Stovies>라는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는데, 기존의 스코틀랜드 곡들 레퍼토리도 물론 들어 있지만 미국 컨트리 웨스턴 곡들도 몇 곡 포함되어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1982년에 발매한 앨범 <The Dawning of the Day>에서는, 같은 제목의 타이틀 곡(로이 윌리엄슨이 직접 작사, 작곡했다)에서 노골적으로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며 민족 감정을 자극했다! 결과적으로 코리스는 단순한 가수를 뛰어넘어 완전 애국지사의 경지에 도달했고, 이러한 인기의 절정에서 1983년, 코리스 멤버들이 MC가 되어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인 <The Corries & Other Folk>가 STV 채널에서 방영되었다.
1983년, <The Corries & Other Folk>에 출연하여 <The Roses of Prince Charlie>를 부르고 있는 코리스.
1985년, 코리스는 <Scotland will Flourish> 앨범을 발매했고, 같은 해 STV 방송국에서는 2년 전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의 시즌 2가 방영되었다. 코리스는 이번에도 MC로 출연했는데, 1983년과 다른 점은 이 때 게스트들 가운데에는 클랜시 브라더스가 있었다는 것. 리유니언 투어 기간이어서 1기 체제로 복귀해 있었던 클랜시 브라더스가 출연하여 스코틀랜드 TV에서 공연을 했을 뿐만 아니라 코리스 멤버들과 포크 음악의 가치에 대해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1985년, <The Corries & Other Folk>에 출연하여 <Flower of Scotland>를 부르고 있는 코리스.
1985년, <The Corries & Other Folk>에 출연하여 <Isn't it Grand Boys>를 부르고 있는 클랜시 브라더스.
두 최종보스의 만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클랜시 브라더스 멤버들과 코리스 멤버들.
이렇게 코리스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Barrett's Privateers> 앨범을 발매한 1987년에는 마침내 BBC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것도 프로그램 한 개도 아니고 무려 여섯 개의 시리즈가 이어지는 프로였고, 단순히 스튜디오에서 공연하고 이야기 늘어놓는 프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관련된 장소에 가서 공연을 하는 순서까지 있었다. STV 프로보다 훨씬 더 시각적인 요소가 강하고 훨씬 더 버라이어티한 프로였던 것이다.
1987년, BBC 방송에 출연하여 <Loch Lomond>를 부르고 있는 코리스.
그러나 이 때부터 로이 윌리엄슨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으니... 원래 로이 윌리엄슨은 천식을 앓고 있었다. 때문에 공연을 앞두고 임시 면역 주사를 맞는 경우도 있었다. 당장 1987년도 BBC 프로 방송 화면만 봐도 2년 전까진 서서도 아무 이상 없이 공연을 하던 로이 윌리엄슨이 1987년도엔 거의 대부분 위 유튜브 클립에서처럼 앉아서 공연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도 아무튼 로이 윌리엄슨은 최선을 다해 공연을 했고, 이듬해인 1988년에 코리스는 <The Bonnie Blue>라는 제목의 앨범을 냈다. 그리고 이듬해 1989년에도 정상적으로 투어를 돌았다. 그런데, 1989년도 투어 도중, 로이 윌리엄슨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투어를 마치고 로이 윌리엄슨은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았는데...
뇌종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로이 윌리엄슨이 뇌종양 진단을 받으면서 1990년도 일정은 모두 취소되었고, 로이 윌리엄슨은 치료를 위해 연예계에서 물러났다. 그런 충공깽하고 혼파망한 상황 속에서도 끝내주는 소식이 들어왔으니, 1990년 3월에 열리는 럭비 선수권 대회에서 홈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그랜드슬램을 놓고 격돌하게 된 스코틀랜드 럭비 대표팀이 국가로 <Flower of Scotland>를 부르게 된 것이다! [64] 원래 이 경기를 앞두고 국가 선창은 로이 윌리엄슨과 로니 브라운이 모두 나와 부르기로 했지만, 로이 윌리엄슨의 상태가 하도 좋지 않아서 로니 브라운 혼자 나와 국가를 불렀다. 아래 유튜브 클립이 바로 그 때의 영상.
1990년 3월, Five Nations 대회[65] 결승에서 연주된 <Flower of Scotland>.
그리고 이 새 국가에 버프를 받은 스코틀랜드 대표팀은 잉글랜드를 13-7로 개발살내고 그랜드슬램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끝내주는 사건도 잠시, 로이 윌리엄슨은 1990년 8월 12일, 뇌종양이 악화되어 5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코리스의 향후 거취에 대해, 로니 브라운은 로이 윌리엄슨의 대타를 뽑지 않고 솔로로 활동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따라 코리스는 24년, 코리 포크 트리오까지 포함하면 2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코리스는 비록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레전설로써 스코틀랜드 음악계에서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최종보스로 군림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Flower of Scotland>가 스코틀랜드 국가가 되었기 때문. 이제까지 그 어떤 나라도 대중가요 가수가 부른 노래를 국가로 채택한 경우는 없다. 스코틀랜드가 최초. 그러니 코리스야말로 스코틀랜드 포크 음악계, 아니 스코틀랜드 음악계 전반에 걸쳐 그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최종보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97년 스코틀랜드 축구 대표팀도 <Flower of Scotland>를 국가로 채택하였고, 1998년도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도 이 곡이 국가로 불렸다. 이에 따라 이전까지 국가처럼 불리던 몇몇 곡들을 완전히 밀어내고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스코틀랜드 국가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2006년도에 스코틀랜드 국립 오케스트라(Royal Scottish National Orchestra)에서 온라인 투표를 실시한 결과, 다음과 같이 <Flower of Scotland>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Flower of Scotland 41%
Scotland the Brave 29%
Highland Cathedral 16%
Is There for Honest Poverty 8%
Scots Wha Hae 6%
2010년도 영연방 경기대회 때부터는 <Flower of Scotland>가 공식 국가로 채택되었다. 2014년에 스코틀랜드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될 예정인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찬반 투표 결과에서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을 하게 된다면, 국가로 가장 유력한 곡이 바로 이 <Flower of Scotland>라고 짐작해 볼 수도 있겠다. 이 경우 스코틀랜드는 인류 역사상 두번째로 대중가요를 국가로 채택한 나라가 된다![66]
1990년에는 코리스의 미공개 음원들과 <Flower of Scotland>(1974년도 앨범에 수록된 버전)로 구성된 <Flower of Scotland>라는 제목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나왔다. 그리고 로니 브라운은 1991년 봄부터 솔로로 연예계에 복귀했다. 1992년에는 <The First Time>, 1993년에는 <Scots wha hae>, 1996년에는 <Scottish Love Songs>와 <Battle Songs and Ballads>라는 앨범을 냈다. 또한 1996년에는 영화에도 출연했다. 한편 1995년 <Bonnet, Belts, and Sword>를 시작으로 이전에 LP로 발매되었던 코리스 앨범들이 CD로 재발매되기 시작했는데, 이를 통해 코리스의 인기는 로이 윌리엄슨 사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다.
한편 초기 코리 포크 트리오 멤버였던 패디 벨은 1960년대 후반에 앨범을 몇 차례 발매하기도 했지만, 1970년대 들어 알코올 중독이다 뭐다 복잡한 말들이 많이 나와서 연예계에서 은퇴했다. 그러던 패디 벨은 1990년대 가까스로 연예계로 돌아왔고, 1993년에는 <The Dawn of a Brand New Day>, 1997년에는 <Make me Want to Stay>, 1998년에는 <An Irish Kiss>라는 앨범을 발매하였다. 패디 벨은 2005년 8월 3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로니 브라운은 2002년까지 솔로 가수로 활동하다가, 2002년 8월 16일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로니 브라운은 미술 작품 제작에 집중하면서, 재발매된 코리스 앨범을 비롯한 코리스 관련 콘텐츠들에 대한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이따금 축구 경기장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2007년도에 <Flower of Scotland> 40주년을 맞아 그 해 열린 스코틀랜드 축구 대표팀의 유로 2008 예선 경기 거의 대부분이 열릴 때 국가를 선창하러 나왔고, 2009년에는 역시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2010 월드컵 예선 경기 때도 나왔다. [67] 로니 브라운이 공식 은퇴 이후에도 <Flower of Scotland>를 불러야 하는 아주 중요한 자리만 되면 자주 출연하는 것으로 볼 때, 스코틀랜드 대중 음악계의 최종보스로서의 코리스의 입지는 세계 그 어느 나라의 대중 음악가도 따라올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200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코리스가 갑자기 또 다시 뜨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인터넷 때문. 유튜브를 통해 코리스 콘텐츠를 접한 네티즌들이 코리스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2011년부터는 이러한 현상에 고무된 로니 브라운과 아들 개빈 브라운(코리스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코리스 관련 마케팅을 하고 있다)이 다운로드 횟수가 많은 곡들로 구성된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이러한 앨범으로, 2011년에는 <The Essential Corries Collection>, 2012년에는 <The Ultimate Corries Collection>, 2013년에는 <The Definitive Corries Collection>이 발매되었다. 2012년에는 코리스 페이스북 페이지까지 개설되었다. 이를 통해 볼 때 로이 윌리엄슨의 죽음과 로니 브라운의 은퇴 이후에도 코리스가 얼마나 스코틀랜드 음악계에서 최종 보스로 군림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1] 12현으로 된, 만돌린 비슷한 스페인식 현악기[2] 8현으로 되어 있고 만돌린을 크게 확대한 것처럼 생긴 그리스식 현악기[3] 10현으로 되어 있고 만돌린처럼 생긴 영국식 현악기[4] 류트 비슷한 스페인식 현악기[자체제작] 자체 제작한 현악기[자체제작] [7] 자세한 설명은 하단 참고[8] 손으로 바람을 넣는 영국식 소형 백파이프[9] 손으로 바람을 넣는 스코틀랜드 남부 저지대의 백파이프. 흔히 백파이프 하면 떠올리는 입으로 부는 것은 스코틀랜드 북부 고원의 것이다.[10] 삼각형 울림통에 20개가 넘는 줄을 묶고 왼손 위에 올려놓은 채 오른손에 쥔 짧은 활로 켜는 현악기[11] 실제로 토미 메이컴과 리엄 클랜시도 1970년대에 코리스처럼 듀엣으로 활동을 했고, 아일랜드 차트 1위를 한 차례 찍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토미 메이컴, 리엄 클랜시, 클랜시 브라더스 항목 참조.[12] 포크 그룹은 대체로 유니폼을 착용하지 않는다. 2인조 그룹이라면 더더욱.[13] 1965년 앨범[14] 1970년에 나온 컴필레이션 앨범[15] 1963년 미니앨범[16] <The Corrie Folk Trio and Paddie Bell>의 줄임말. 이것은 1963년에 나온 미니앨범이다.[17] 클랜시 브라더스의 1961년도 앨범 <The Clancy Brothers and Tommy Makem>에 등장하는 <Maid of Fife>와 같은 곡이다.[18] <The Corrie Folk Trio and Paddie Bell>의 줄임말. 이것은 1964년에 나온 앨범이다.[19] <The Corrie Folk Trio and Paddie Bell>의 줄임말. 이것은 1965년에 나온 앨범이다.[20] 참고로 이 곡은 몬더그린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바로 그 곡이다. 몬더그린 항목 참조.[21] 1964년 앨범[22] 클랜시 브라더스의 1961년도 앨범 <The Clancy Brothers and Tommy Makem>에 등장하는 <Quare Bungle Rye>와 같은 곡이다.[23] 1963년 미니앨범[24] 1965년 앨범[25] 1965년 미니앨범[26] 1963년 미니앨범[27] 1965년 앨범[28] 1964년 앨범[29] 1965년 앨범[30] 1964년 앨범[31] 1965년 앨범[32] 1965년 앨범[33] 1963년 미니앨범[34] 1964년 앨범[35] 토미 메이컴이 1955년도에 <Lark in the Morning> 앨범에 출연했을 때 불렀던 곡으로, 이후 클랜시 브라더스의 1966년도 앨범 <Isn't it Grand, Boys>에 공식 수록되었다.[36] 1964년 앨범[37] 1965년 앨범[38] 1964년 앨범[39] 클랜시 브라더스의 1961년도 앨범 <A Spotaneous Performance Recording>에 수록된 <Johnny Lad>와 스펠링만 다르다.[40] 1963년 미니앨범[41] 클랜시 브라더스의 1962년도 앨범 <Hearty ad Hellish!>에 수록된 <23rd of June>과 같은 곡이다.[42] 1963년 미니앨범[43] 1965년 앨범[44] 클랜시 브라더스의 1964년도 앨범 <The First Hurrah!>에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45] 1963년 미니앨범[46] 1964년 앨범[47] 1965년 앨범[48] 1963년 미니앨범[49] 1964년 앨범[50] 클랜시 브라더스의 1962년도 앨범 <The Boys Won't Leave the Girls Alone>에도 같은 곡이 수록되어 있다.[51] 1964년 앨범[52] 1965년 앨범[53] 클랜시 브라더스의 1961년도 앨범 <A Spotaneous Performance Recording>에 수록된 <Youn Roddy McCorley>, 1961년도 앨범 <The Clancy Brothers and Tommy Makem>에 수록된 <Roddy McCorley>와 제목만 다르고 같은 곡이다.[54] 클랜시 브라더스의 1962년도 앨범 <The Boys Won't Leave the Girls Alone>에도 같은 곡이 <Shoals of Herring>이라는 제목으로 스펠링만 다르게 수록되어 있다.[55] 클랜시 브라더스의 1962년도 앨범 <The Boys Won't Leave the Girls Alone>에도 같은 곡이 스펠링까지 똑같이 수록되어 있다.[56] 1963년 미니앨범[57] 1965년 앨범[58] 동요 메들리인데, 첫 번째 곡이 클랜시 브라더스의 <The Boys Won't Leave the Girls Alone>에 수록된 <I'll Tell me Ma>이다.[59] 1964년 앨범[60] 1965년 앨범[61] 클랜시 브라더스의 1961년도 앨범 <A Spotaneous Performance Recording>에 수록된 <Whistling Gypsy>와 스펠링만 다르다. 아일랜드의 포크 음악 항목에서 설명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급의 이야기' 라고 한 바로 그 곡이다.[62] <The Promise of the Day> 앨범에서 세션 반주자로 참여하여 밴조를 연주한 스코틀랜드 음악가 아치 피셔(Archie Fisher)는 뒤에 토미 메이컴과 리엄 클랜시 듀엣의 PD이며 기타 반주자였다. 1977년도에 아일랜드 차트 1위에 오른 <And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 싱글을 프로듀스하고, 기타를 연주한 사람도 아치 피셔이다.[63] 스코틀랜드인들은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도 아일랜드인들이 잉글랜드에 대해 품는 것만큼 클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인들에 대해 상당한 우월 의식을 갖고 있어서 원래부터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1980년대 출범한 영국 중앙정부의 대처 총리가 보수적인 정책을 내놓고 스코틀랜드에 대해 차별 대우를 가하면서 진보적인 성향에 민족 감정이 강한 스코틀랜드인들과 마찰을 일으켰고, 이전부터 나오고 있던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곧 스코틀랜드가 영국 연합에서 탈퇴해 독립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64] 원래 스코틀랜드 국가는(물론 공식적인 국가는 아니다) <Scotland the Brave>가 주로 많이 불렸다.[65] 現 식스 네이션스[66] 최초는 1956년 작곡된 대중가요인 카자흐스탄의 국가 나의 카자흐스탄이다. 단, 나의 카자흐스탄의 경우 건전가요의 성격이 짙기에 순수한 의미로의 대중가요는 아니다.[67] 2010년부터는 국가 선창자가 에이미 맥도널드(1987년생)라는 여자 록 가수로 교체되었는데, 이 가수가 다름아닌 당시 국가대표 선수인 스티브 러벨(Steve Lovell)의 여자친구였다.(스티브 러벨은 2011년에 은퇴했고, 2012년에는 에이미 맥도널드와도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