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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20:57:31

쿠와타 야스코

<colbgcolor=#1d3657><colcolor=#fff> 쿠와타 야스코
[ruby(桑田, ruby=くわた)] [ruby(靖子, ruby=やすこ )] | Yasuko Kuwata
파일:Kuwata_Yasuko(1967).jpg
본명 [ruby(池, ruby=いけ)][ruby(田, ruby=だ)][ruby(咲, ruby=さ)][ruby(恵, ruby=え)][ruby(子, ruby=こ)](이케다 사에코, Saeko Ikeda)
출생 1967년 10월 30일 ([age(1967-10-30)]세)
후쿠오카현 노가타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56cm, A형
학력 노가타시립 다이니중학교 (졸업)
호리코시 고등학교 (졸업)
직업 가수, 탤런트
활동 기간 1983년 ~ 현재
소속사 선 뮤직 프로덕션(1982~1988)
레이블 EMI 뮤직 재팬
JVC 켄우드 빅터 엔터테인먼트 주식회사[1]

1. 개요2. 생애
2.1. 데뷔 이전2.2. 데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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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Kuwata Yasuko Main.jpg
이것은 16살의 계엄령이다.
これは、16歳の戒厳令だ。

데뷔 당시 캐치프레차이즈
일본의 쇼와시대 아이돌이자 가수

2. 생애

2.1. 데뷔 이전

초등학생 시절 때부터 노래가 특기였고 NHK 노래자랑 대회에 많이 출연하였고 남들 앞에서 노래를 처음 부른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마을 축제에서 사쿠라다 준코의 ‘나의 파랑새‘였다.

5학년 히라오 마사아키의 미션스쿨 후쿠오카 학교도 다녔었는데 이 당시에 인연으로 시모노세키 출신인 오카무라 유키코와도 같이 레슨을 받고 친하게 지냈었다고 한다.

6학년 때 현지에 있는 마츠다 세이코도 다녔던 음악학원도 다녔었다.

1980년 후쿠오카 가요제에서 아즈사 미치요의 ‘よろしかったら’를 부르고 그랑프리상을 수상하였다.

1981년 문화방송 주최 오디션 ‘전일본 영 선발 스타는 너다’에서 우승하여 동년 8월에 상경과 동시에 약 1년간 마츠다 토시 밑에서 기초 레슨을 쌓았다.

이후 1982년 ‘토시바 탤런트 스카우트 캐러밴’에서 우승하여 선 뮤직 프로덕션에 들어오게 된다. 선 뮤직에서는 직속 선배로는 마츠다 세이코가 있었고, 현재까지도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츠다 세이코였기에 첫 선 뮤직에 왔을 때 “이리 와”라고 하였을 때 가슴이 무지 설레었다고 한다.

2.2. 데뷔 후

1983년 3월 21일 싱글 ‘탈•플라토닉’ 곡과 캐치프레차이즈인 ‘이것은 16살의 계엄령이다.(これは、16歳の戒厳令だ。)’ 토시바EMI에서 데뷔를 하게 된다.[2] 1년 먼저 데뷔한 코이즈미 쿄코, 하야미 유, 마츠모토 이요, 호리 치에미, 나카모리 아키나 들은 ‘꽃의 82년조’라고 불리우는 것에 비하여 데뷔 동기들은 눈에 띄지도 못 하고 잘 팔리지 못한 오오사와 이츠미, 코바야시 치에, 키모토 유코 등이 속한 ‘실패작 83년조’라고 불리운다. 이후 밝은 성격의 소유한 덕분에 라디오 DJ를 맡은 적이 있다.


[1] 12번째 싱글 발매 한정[2] 이 외에도 ‘반에서 5번째로 예쁜 여자아이(クラスで5番目に可愛い女の子)’ 캐치프레이즈가 있으나 자신은 부정하고 있으며 공식이 아니라고 밝힌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