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도시의 어원이 된 옥스퍼드 대학교의 컬리지에 대한 내용은 옥스퍼드 대학교/컬리지 문서 참고하십시오.
'''뉴질랜드의 주요도시''' | ||||
오클랜드 | 크라이스트처치 | 웰링턴 | 해밀턴 | 더니든 |
[[뉴질랜드| ]][[틀:국기| ]][[틀:국기| ]] 캔터베리지방의 시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block" | <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크라이스트처치 Christchurch | 오토우타히 Ōtautahi | }}} | ||
<colbgcolor=#012169><colcolor=#fff> 지방 | 캔터베리 지방 | ||||
면적 | 1,426㎢ | ||||
인구 | 396,200명(2023) | ||||
인구 밀도 | 280명/㎢(2023) | ||||
GDP | $315억(2023) | ||||
1인당 GDP | $46,485(2023) | ||||
시장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필 모거 | |||
시간대 | UTC+12:00 | ||||
UTC+13:00[서머타임] | |||||
지역번호 | 03 | ||||
IATA 도시 코드 | CHC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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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역명 Christchurch는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뜻으로 이름의 유래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크라이스트 처치 컬리지에서 왔다. 영국인 이민자들이 옥스퍼드와 지형이 비슷해 보이는 이곳에 옥스퍼드 대학교 컬리지 중 한 곳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3]
2. 상세
뉴질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정원의 도시, 영국보다 더 영국 같은 도시라고 불리던 아름다운 도시였으나…2011년 2월 대지진의 여파로 빅토리아 풍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모두 쓰러져 내렸으며 도심부는 폐허 수준으로 파괴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당하였다. 하지만 동년 발생한 전대미문의 대지진인 동일본 대지진 때문에 묻혔다. 그 전에 2010년 9월에도 동일 규모 강진이 발생한 바 있었다. 애초 뉴질랜드는 판의 경계에 있어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이 여파로 인해 2011년 럭비 월드컵을 개최하지 못하고 사망자가 200명 가까이 나오는 등 피해를 어마어마하게 봤으며 결국 2012년 1월경에야 지진이 완전히 끝났다. 피해액만 약 120억 미국 달러[4]로 추산될 정도로 강력한 지진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크라이스트처치는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이며 뉴질랜드 정부는 크라이스트처치의 랜드마크였던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을 완전히 해체하고 재건축하기로 결정했다.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으려면 최소 3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한다.
참고로 새로 지어지는 건물은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7층 이하로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현재는 주위 해변이나 헤글리 공원, 리스타트 몰 정도 빼곤 그다지 볼 게 많지는 않다. 다만 같은 세계에서 방문하는 여행객이나 유학생이 몰리는 퀸스타운이나 더니든 같은 도시로 통하는 남섬의 관문의 역할을 하는데 의의가 있는 도시.
2019년 3월 15일에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 테러가 발생했다. 이 여파로 생긴 크라이스트처치 콜도 이 도시에서 따온 것이다.
3. 역사
1250년경 뉴질랜드에 서식하던 거대한 새 모아를 쫓아 북섬의 이스트 코스트에서 원주민이 옮겨왔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모아를 쫓아 정착 생활을 시작한 부족의 고고학적 증거가 1876년 크라이스트처치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전설에 의하면 모아를 쫓아 와이타라(Waitaha)라는 부족이 이 지역으로 이주한 것이 16세기라고 한다. 그 후 몇 개의 부족이 들어와 살았으며, 나티 마모에(Ngati Mamoe), 나이 타후(Ngai Tahu) 같은 부족이 정착하였다.유럽 정착민이 온 1830년대까지 이 지역에 정착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39년에 뉴질랜드 회사가 런던에서 설립되어 유럽에서 뉴질랜드로 이민 유입의 역사가 시작된다.
1840년대에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 개척민들이 정착한다. 1840년 와이탕이 조약이 체결되어, 사실상 영국 직할 식민지가 된다. 1850년부터 영국의 식민지가 시작되어, 뉴질랜드의 최초 도시가 되었다. 그 해에는 캔터버리 협회가 결성되어, 영국에서 첫 이민들을 보냈다. 측량사 조지프 토머스는 이 대지를 선택하였고, 다른 측량사 에드워드 졸리와 함께 거리들과 구지 분할 계획을 세웠다. 이 정착은 뉴질랜드에 앵글리칸교회를 새로 창조하는 목적이었다. 목표는 사라지고, 캔터버리 협회도 1855년에 해산되었다. 그러나 영국적인 사람들은 남아있었고, 고딕 건축물인 앵글리칸 성당(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1864년에 시작하여 1901년에 완공)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 건물은 도시의 경계표가 되었다.
1856년 7월 31일 영국 국왕의 칙령으로 크라이스트처치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탄생한다. 초기 정착민들의 대부분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 크라이스트 칼리지 출신이었기 때문에 처치로 명명된다. 영국인 건축가 벤자민 마운트호트가 설계한 네오고딕 양식의 건물이 시내 중심부에 건설된다. 영국인의 이주의 역사에서, 영국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거리로 현재에 이른다. 1853년부터 1876년까지 캔터버리 주의 주도였지만, 현재는 주 제도는 폐지되고 지방 의회로 전환하였다.
4. 경제
캔터버리 평원을 중심으로 낙농업, 축산업, 농업이 성행하고 있다. 제조업, 부동산, 도매업도 활발하며, 최근에는 유럽, 아시아, 북미 지역에서 관광객을 중심으로 관광, 여행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남섬의 상업 도시이며 금융업, 소프트웨어 개발업, 봉제업이 활발하다.5. 교통
대중교통이 빈약한 편이며, 렌트카가 훨씬 낫다. 북섬에 존재하는 통근열차도 여기에는 없고 크라이스트처치역에서 운행하는 장거리열차도 단 2편만[5]이 운행 중인 실정이다. 시내버스는 배차 간격이 길고 이용이 불편하며, 택시도 콜 택시 뿐이다. 차 없이 생활이 불가능하다시피한 로스앤젤레스 수준의 도시이다. 인구가 애초 희박하니 어쩔 수 없다.크라이스트처치 국제공항이 있으며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호주 등 주변국이나 뉴질랜드 각지로 연결된다. 대한민국에서 오는 길로는 대한항공이 방학철에 한해 유학생들을 위해 직항 전세기를 띄웠으나 현재는 운항하지 않는다. 캐세이패시픽항공으로 홍콩을 거치거나 싱가포르항공으로 싱가포르를 거치거나 오클랜드에서 환승해야 한다.
6. 관광
도심에 위치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은 도시의 상징으로 유명하다. 주변은 가장 번화한 도심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비즈니스, 상업, 관광의 중심지로 많은 관광객, 시민들로 활기를 가지는 곳이다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을 중심으로 관광용 전차를 탈 수도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센터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 명소이다. 크라이스트처치 식물원은 도보로 접근할 수 있고, 인접한 캔터베리 박물관에서는 캔터베리 지역의 마오리 문화, 역사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또 지금은 멸종된 거대한 새 모아에 관련된 전시 외에, 캔터베리 지역 개척 시대의 역사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성당에서 서쪽에는 해글리 공원이 있다. 165 헥타르의 넓은 부지에 골프장, 럭비 경기장 축구 연습장, 크리켓 경기장, 테니스 코트 등 스포츠 시설이 있다. 이 공원에서 주말이면 많은 스포츠 경기가 개최된다. 공원을 흐르는 에이번 강에서 바지선을 타고 유람하거나, 카누를 탈 수도 있다. 매년 2월에 열리는 "정원 축제"에서는 거리가 꽃과 녹음에 휩싸인다. 또한 이 정원 축제의 일부로 개최되는 〈크라이스트 가든 아워즈〉는 일반 가정의 정원 구조 콘테스트가 열린다. 평가 부문은 종합 부문, 도로 종류, 잔디 종류 등 많은 종류가 있고 참가자 관광객으로 활기를 보인다.
교외로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가면, 온천 시설로 유명한 핸머스프링스, 고래로 유명한 카이코우라, 아카로아, 마운트헛 스키장 등으로 각종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다. 각 도시마다 관광정보센터(i센터)에서 숙박과 엑티비티등을 한번에 예약하여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다.
7. 여담
호주와 뉴질랜드가 참여하는 럭비 유니언 프로 리그인 슈퍼 럭비 퍼시픽의 최고 명문팀 크루세이더스가 이곳 연고지로 한다. 홈구장은 오렌지씨어리 스타디움으로, 경기장은 2011년 당시 지진 피해를 입기도 했다.[서머타임] 서머타임[2] 사실 크리이스트처치가 웰링턴보다 더 인구가 많다.[3] 크라이스트처치가 속한 지방의 이름인 '캔터베리'도 영국의 캔터베리에서 비롯됐다.[4] 그 당시 환율 기준 한화로 14조 2830억이나 되는 금액이다.[5] 코스탈 퍼시픽, 트랜즈 알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