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클라우디우스 실바누스 (Claudius Silvanus) |
출생 | 미상 |
사망 | 355년 9월 |
직위 | 마기스테르 밀리툼 |
반란 대상 | 콘스탄티우스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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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반란자. 콘스탄티우스 2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당했다.2. 생애
콘스탄티누스 1세 휘하에서 리키니우스 황제와 맞섰던 프랑크족 출신 장군 보니투스의 아들로 갈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콘스탄스 황제 휘하 서방 로마군에 입대하였고, 마그넨티우스가 콘스탄스를 암살한 뒤에는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여 351년 트리부누스 밀리툼이 되었다. 그러다 351년 9월 28일 무르사 전투에서 마그넨티우스가 콘스탄티우스 2세에게 패하자, 대세를 읽고 콘스탄티우스 2세에게 귀순했다. 그는 갈리아의 마기스테르 밀리툼으로 승진하였고, 352년에서 353년 사이에 갈리아에서 약탈을 일삼는 알레만니 족을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다. 실바누스는 속주민들에게서 거둬들인 세금으로 알레만니 족장들에게 뇌물을 주며 회유하고, 무력으로 무찌르기도 하였으며, 갈리아 중부와 북부에서 발발한 농민 봉기를 진압하기도 했다.그러나 근위대 사령관 람파디우스와 전 재무관 에우세비우스, 데나미우스 등은 실바누스를 실각시킬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실바누스가 로마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가로챈 뒤,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로마 원로원 내에서 지지자를 모으려 시도하는 내용으로 왜곡한 뒤 콘스탄티우스 2세가 머물던 밀라노로 보냈다. 콘스탄티우스 2세는 남을 믿지 못하고 음험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자연히 편지를 읽자마자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실바누스가 반역을 꾀하는 게 분명하다고 여겼다. 말라리히와 마요바우데스 등은 실바누스가 그럴 리 없다고 탄원했지만, 다수의 궁정 관리들은 황제의 의심을 부추기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콘스탄티우스는 이탈리아 군단을 이끌던 아포데미우스에게 실바누스를 체포하여 밀라노로 보내라고 명령했으며, 우르시키누스를 갈리아의 새 지휘관으로 삼았다. 하지만 아포데미우스는 명령을 이행하는 대신 실바누스의 노예와 친구들을 심문하여 죄를 밝혀내려 했다.
실바누스는 상황을 전해듣고 이대로 있다가는 의심많은 황제에게 끌려가 죽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355년 8월 11일, 그는 콜로니아 아그리피나(오늘날의 독일 쾰른)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황제를 자칭했다.[1] 그 후 우루시키누스가 갈리아에 찾아오자, 실바누스는 오래 전부터 전장에서 동고동락한 그를 환대했다. 그러나 우르시키누스는 실바누스 휘하 장병들 중 일부에게 뇌물을 줘서 회유하였다. 결국 그해 9월, 우르시키누스에게 회유된 장병들은 교회로 가던 실바누스를 습격하여 칼로 찔러 죽였다.
[1]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실바누스가 반란을 일으킨 뒤 황제를 자칭했음을 입증할 근거가 부족하다며(다른 찬탈자들과는 달리 어떠한 동전도 발행하지 않았다.), 황제를 자칭했다는 이야기는 콘스탄티우스 2세 일파의 조작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