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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itsch /kɪtʃ/미학에서 보기에 기이하고, 저속한 ”나쁜 예술“의 미적 가치를 뜻하는 말. 하찮은 모조품, 저급한 것, 나쁜 취미 등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속성을 가진 예술적 작품 또는 싸구려 문화상품 등의 부정적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값싸게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동사 verkitschen이 어원이다.[1]
19세기 중후반 뮌헨의 그림 상인들은 짧은 시간 안에 간단하게 제작된 싸구려 미술품을 내걸고 관광객들에게 팔았는데, 여기에서 유래를 갖고 있다. 당시에는 "저렴하고 저급의 예술품"을 뜻했고, 부정적인 의미의 속어였다. 대량판매용으로 복제되거나 기존의 작품들을 짜깁기해서 만든 조악한 모조품 및 기괴한 작품을 키치라고 불렀다.
2. 키치라는 개념, 그리고 캠프(Camp)와의 비교
키치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려면 캠프(camp)와 비교하면서 그 차이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현대 사회에서 키치는 인터넷 문화에서 흔히 말하는 '병맛'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매우 유치하게 느껴지고, 지나간 트렌드라서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 역시 키치의 공통점이다. 말하자면 저질스러운 고전 B급 호러영화, 싸구려 고전 SF에서 볼 수 있는 쫄쫄이 우주복과 헤어드라이기 같은 광선총, (미국 한정으로)전형적인 클리셰의 구닥다리 소프 오페라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다만 이 때 사람들이 향유하는 '병맛'은 키치와는 차이를 보이게 된다. 병맛 작품의 상당수는 제작자 스스로 병맛임을 숨기지 않으며 감상자도 그렇게 받아들인다. 작가 스스로가 B급을 지향하는 작품들은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키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의 B급 철학, B급 감성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은 '캠프(Camp)'라고 한다.[2]
키치는 B급을 당당히 표방하는 예술이 아니라 겉으로는 A급인 것처럼 포장하는 예술이다. 제작자는 스스로 키치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키치임을 모르고 소비하거나, 안다면 작가의 속임수에 동조한다. 만약 대부분의 감상자가 속임수에 동조하지 않고, '있어보이는 척' 하는 걸 부정한다면, 그 키치는 병맛으로서 소비되거나 캠프 예술로 재창조된다.
키치는 엄밀히 말하자면 고급문화를 흉내내려고 하는 저급문화다. 여기서 말하는 "고급"과 "저급"은 계급적 코드를 뜻하는, 즉 사치스럽고 비싸고 경제적 여유와 사전적인 배경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문화라는 의미의 고급문화가 아니라 작품의 저변에 깔린 사유의 깊이와 의도의 진지함에 있어서의 고급과 저급을 뜻한다. 앤디 워홀이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그의 공장제 연작들은 현대의 철학적 화두, 이를테면 시뮬라크르와 같은 화두들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며 현대성의 문제와 싸우려는 분명한 투쟁이었다. 그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었으며 단순한 키치라고 할 수 없다.
문화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지면서 어디까지가 고급이고 어디까지가 저급인지 따지는 게 점점 무의미해지는 시대지만, 키치는 '얕은 깊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당당한 저급 문화와는 다르다. 키치는 철학적 주제의 껍질만을 가져와 모방하고,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척 기만하면서 대중을 현혹한다. 겉은 화려한 대상을 본떠 그럴듯하게 치장해 두었지만 실제로는 알맹이가 없는 것이다. 마치 고고한 중세의 성 모양으로 지어 놓은 러브호텔과 같은 것이 키치의 본질이다.
3. 키치의 미학
값싸고 신속하게 제품을 제작하는 생산자들은 구매자에게 자신의 생산물, 즉 키치(Kitsch)를 제공하는 데 있어 아주 최소한의 노동과 수단만을 사용한다. 키치의 입장에서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제품이 오히려 미적으로 떨어진다고 여긴다. 이후 이것은 팝아트의 근간이 된다. 미학에서 키치어는 키치 생산물의 가치절하, 윤리성의 추락, 진품에 대한 부정 등의 철학적 주제를 제시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키치는 예술이고자 하지만, 예술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유사 예술 또는 사이비 예술로 간주된다.키치는 현대사회의 대중 문화에서 점점 뚜렷해진 현상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흥미 위주의 대중적인 취향에 대해서, 사회가 그걸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났는데 여기서 시작된 것이 키치다. 문화적으로 정통성과 철학성을 인정받은 '고급' 취향, 그리고 일반적인 대중들이 좋아하는 재미와 짜릿함 위주의 '저급' 취향이 양분화되었고, 어느 쪽이 문화를 주도하는가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키치가 발생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키치는 고급 취향의 결과물을 내놓지만 실상은 저급 취향의 방식을 이용하며, 이것은 결국 문화를 주도할 (혹은 더 나아가 사회를 지배할)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키치라는 용어의 사용은 매우 다양하며 키치적인 표현은 단지 미술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모든 예술 작업에 적용되고 있다. 문학, 음악, TV 드라마, 제품디자인, 시각디자인, 실내디자인, 건축, 그리고 공예품 등을 위시하여 일상의 모든 문화 용품과 생필품 등, 키치는 단순히 대상뿐만 아니라 ‘키치 상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구성하는 모든 축과 관련된 사회적․문화적 현상이다.[3][4]
특히 키치는 20세기 초반 이후 가장 널리 쓰여지는 하나의 국제적인 용어가 되었다. 키치는 예술을 소모하려는 대중들의 소박한 욕구와 산업화된 기술에 의해 탄생된 모방적인 형태의 급격한 증가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모나 리자(Mona Lisa)>와 같은 과거의 걸작품을 개인들이 소유하고 소모하게 되었다. 키치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기만’의 해석이 20세기 문화의 질적 저하 현상에 부응하여 확대되면서 심지어 키치가 ‘나쁜 취미’가 게재된 모든 예술산물이 대중문화와 동일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부잣집 엘리베이터에 걸려 있는 렘브란트에서부터 가장 싸구려 모조품 팔찌에 이르기까지 키치라는 용어로 지칭되는 것이다.
4. 밀란 쿤데라가 정의한 키치
키치는 두 가지 감동의 눈물을 흘러내리게 한다. 첫 번째 눈물이 말한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 번째 눈물이 말한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전 인류와 함께 감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두 번째 눈물만이 키치를 키치로 만든다. 모든 인간의 우애는 키치를 바탕으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저술한 표현으로, 사물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이상이나 감동적 이미지로 왜곡하고 추어올려 신봉하는 태도를 일컬은 것이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이런 경항은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현실을 아름답고 완벽한 환상으로 대신하려는 사람의 욕구에서 기인한다. 그리하여 체험적 감정이나 이성은 소외되고 관념적인, 형이상학적인 견지로 보자면 저급하기까지한 미적인 가치로 포장되는 것이다. 즉, 실질적인 감동이 아닌 관념적인 감동에 호소하는 것이다.
관찰자는 주관적이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성찰을 얻는 대신 손쉬운 해석을 얻고 심지어 이를 맹목적으로 신봉하기도 한다. 거기서 집단 수준으로 발전하면 인류애나 미덕을 바탕으로 개인에게 정형적인 감상과 이미지에 공감하고 따를 것을 강요하는 파시즘이나 전체주의에 마저 이르기도 한다. 작중에서 작가는 전술한 이유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둘 다 비판한다. [5]
다른 작품인 <불멸>에서는 이마골로기(imagology)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현대에 대중은 논리나 이성적인 생각보다 감성적인 이미지, 혹은 암시에 의거해 판단한다는 생각이다.
5. 관련 문서
[1] 가장 보편적인 설은 이것이지만 미학 계열에서는 역사가 짧은 단어, 즉 "신조어"에 속하기 때문에 다른 어원을 주장하는 학설도 존재한다.[2] 예를 들면 자기 스스로를 키치적이라고 표현하는 가수 이승환이 그렇다. 입으로는 키치적이라고 하지만 그의 가치관은 키치의 원래 뜻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킹스맨도 그렇다. 작품 자체가 가볍고 자극적인 오락 영화를 지향하며, 저속함에 대해 변명하기 바쁜 오락 영화들과는 달리 당당하게 오락성을 표방하기 때문에 더 높이 평가받는다.[3] 포르노 영화의 한 장면. 이것이 저급하다고 느껴지는가? 그것은 구분을 만드는 힘이 '저급하다'라고 하기 때문이다.[4] BMW 포스터. 우리는 왜 BMW를 고가의 사치붐으로 보는가? 부러움의 시선 속에서 존재를 확인하는 고급차이기때문.[5] 창세기 맨 처음에 나오는 '존재의 긍정'에 대해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