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8-10 11:15:24

투굴티-닌우르타 1세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5B444E, #8B0000 20%, #8B0000 80%, #5B444E); color: #FFF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0px"
고아시리아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푸주르아슈르 1세 샤림아훔 일루슈마 에리슘 1세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이쿠눔 사르곤 1세 푸주르아슈르 1세 나람신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에리슘 2세 샴시아다드 1세 이시메다간 1세 무트아슈쿠르 1세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리무쉬 아시눔 푸주르신 아슈르두굴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아슈르압라이디 나시르신 신나미르 입키이슈타르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아다드사루루 아다시 벨바니 리바야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샤르마아다드 1세 입타르신 바자야 룰라야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슈니누아 샤르마아다드 2세 에리슘 3세 샴시아다드 2세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이시메다간 2세 샴시아다드 3세 아슈르니라리 1세 푸주르아슈르 3세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엔릴나시르 1세 누르일리 아슈르샤두니 아슈르라비 1세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아슈르나딘아헤 1세 엔릴나시르 2세 아슈르니라리 2세 아슈르벨니시에슈
제45대 제46대 제47대
아슈르림니시에슈 아슈르나딘아헤 2세 에리바아다드 1세
중아시리아
제48대 제49대 제50대 제51대
아슈르우발리트 1세 엔릴니라리 아리크덴일리 아다드니라리 1세
제52대 제53대 제54대 제55대
샬마네세르 1세 투쿨티니누르타 1세 아슈르나딘압리 아슈르니라리 3세
제56대 제57대 제58대 제59대
엔릴쿠두리우수르 니누르타아팔에쿠르 아슈르단 1세 니누르타투쿨티 아슈르
제60대 제61대 제62대 제63대
무타킬누스쿠 아슈르레시이시이 1세 티글라트필레세르 1세 아샤리드아팔에쿠르
제64대 제65대 제66대 제67대
아슈르벨카라 에리바아다드 2세 샴시아다드 4세 아슈르나시르팔 1세
제68대 제69대 제70대 제71대
샬마네세르 2세 아슈르니라리 4세 아슈르라비 2세 아슈르레시이시이 1세
제72대 제73대
티글라트필레세르 2세 아슈르단 2세
신아시리아
제74대 제75대 제76대 제77대
아다드니라리 2세 투쿨티니누르타 2세 아슈르나시르팔 2세 샬마네세르 3세
제78대 제79대 제80대 제81대
샴시아다드 5세 아다드니라리 3세
삼무 라마트
샬마네세르 4세 아슈르단 3세
제82대 제83대 제84대 제85대
아슈르니라리 5세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 샬마네세르 5세 사르곤 2세
제86대 제87대 제88대 제89대
센나케립 에사르하돈 아슈르바니팔 아슈르에틸일라니
제90대 제91대
신샤르이슈쿤 아슈르우발리트 2세 }}}}}}}}}
이름 Tukulti-Ninurta I
생몰년도 ? ~ 기원전 1207년
재위기간 기원전 1243년 ~ 기원전 1207년
호칭 왕중왕(šar šarrāni)

1. 개요

고대 아시리아의 왕.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군주들 중 처음으로 왕중왕을 칭한 인물이었다.

2. 생애

미탄니 제국을 멸망시킨 샬만에세르 1세의 2남으로 태어났다. 기원전 1243년, 아버지 샬만에세르 1세가 사망하자 아시리아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재위 초반에 아시리아 제국과 히타이트 제국 간 벌어진 나흐리야 전투에서 승리했으며, 우라르투에 대한 아시리아의 패권을 유지했다.

이후 바빌로니아카시트 왕조를 상대로 정복 전쟁을 일으켜 바빌론을 함락시키고, 당시 카시트 왕조 바빌로니아 국왕 카슈틸리아슈(Kaštiliašu IV)을 폐위시키고 아시리아로 끌고갔다. 바빌론 함락 후에는 걸프 만에 있었던 딜문, 멜루하까지 원정을 단행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바빌로니아 전역을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으며, 바빌론 함락 당시 바빌론의 신전을 약탈한 일이 신성모독으로 간주되어 많은 이들의 원망을 사게 되었다. 아슈르의 사제들과 사이가 껄끄러워진 투굴티-닌우르타는 아예 수도를 아수르(Ashur)에서 카르-투굴티-닌우르타[1]로 천도했고, 그곳에서 25년간 다스리다가 그의 아들들과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살해당하고 말았다.

3. 기타



[1] 투굴티 닌우르타의 항구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