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나즈 트르판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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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의 축구감독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트나즈 트르판 Tınaz Tırpan | |
출생 | 1939년 4월 28일 ([age(1939-04-28)]세) | |
튀르키예 앙카라 | ||
국적 | [[튀르키예|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감독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감독 | 에르주룸스포르 (1979~1980) 겐츨레르비를리이 SK (1983~1985) 카이세리스포르 (1985~1986) 겐츨레르비를리이 SK (1987~1988) 튀르키예 대표팀 (1988~1989) 볼루스포르 (1990) 페네르바흐체 SK (1991) 반스포르 (1997) MKE 앙카라귀쥐 (1999) 부천 SK (2002~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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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의 축구감독.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부천 SK 감독을 맡았다.2. 감독 경력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주로 활약한 무대는 겐츨레르비를리이 S.K였는데 83/84시즌, 84/85시즌, 87/88시즌 총 3시즌동안 감독을 맡았다. 그러나 성적이 특출난 편은 아니어서, 83/84와 84/85는 연속으로 18개 팀 중 11위를 기록하며 중하위권에 그쳤고, 87/88시즌은 20개 팀 중 19위를 기록하며 소속팀이 강등당했다.[1]
하지만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서는 나름대로 선전, 총 11경기를 소화하며 5승 1무 5패를 기록했다. 특히 이 중 8경기는 1990년 월드컵 유럽 예선 3조에서 소련, 오스트리아, 동독, 아이슬란드를 상대로 치러진 것으로 3승 1무 4패를 기록하며 5개 팀 중 3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2위까지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 티켓 획득에는 실패, 결국 소련에게 0-2로 패한 뒤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활동한 이력 덕분에 튀르키예 축구계의 명문인 페네르바흐체 SK 감독으로 선임되기도 했으나 부임 5주 만에 경질되는 수모를 겪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튀르키예 리그의 여러 팀에서 약 4개월 단위로 기술이사로 활동한 이력과 1999년 UEFA컵에 진출한 MKE 앙카라귀쥐에 단기간 감독으로 활동한 이력은 있으나, 정식 선임되어 팀을 지도한 이력을 없기에 지도자로 잠정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것으로 여겨졌다.
2002년 부천 SK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는데, 부천이 트르판 감독을 영입할 때 말이 많았다. 시즌 중, 멀쩡히 팀을 지도하고 있던 최윤겸 감독을 일방적으로 경질하고 공백기가 긴 지도자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2003 시즌은 개막 후 10경기동안 1무 9패를 기록하며 팬들에게 계란투척까지 당했다. 그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트르판은 부천 감독직을 포기해버렸고 그의 후임으로 하재훈이 감독대행을 했다.
3. 여담
1990년대에는 축구계에서 떠나 베이커리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으니 당시 축구 흐름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람을 찾아낸 당시 SK 프론트가 대단하다 여겨질 지경.이런 이유로 부천 팬들은 SK 구단을 강하게 성토하였고, 부천 SK가 지나고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팬들은 트나즈 트르판의 이름도 부르길 싫어한다. '그 터키서 왔던 빵집 아저씨' 정도로 불리면 다행일 지경..
[1] 그나마 87/88시즌은 변명거리라도 있는게,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88년 3월 튀르키예축구협회가 트르판을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했기 때문. 감독이 없어진 겐츨레르는 잔여 경기에서 그대로 꼬꾸라지며 강등을 면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