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두프 카스바 (성채) | 시내의 우물 조형물 |
1. 개요
아랍어 تندوف베르베르어 ⵜⵉⵏⴷⵓⴼ
영어, 프랑스어 Tindouf
알제리 서남부의 도시이자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의 실질적인 수도. 알제리 최서단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로, 사막 한가운데에 고립되어 있다. 가장 가까운 알제리 도시인 베샤르는 동북쪽으로 무려 600km나 떨어져 있을 정도. 한편 모로코 및 서사하라와의 국경에서는 불과 5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대서양과도 20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모로코와의 국경이 닫혀 있기에 접근할 수 없다.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매우 더울 것 같지만, 해발 400m에 위치한 덕에 의외로 중동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면 많이 덥지는 않은 편이다. 겨울에는 아침에 0도 근처까지 떨어지기도 한다.[1]
절묘하게도 알제리, 모로코, 서사하라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그리고 모리타니까지 4개국의 국경이 만나는 곳에 입지한 덕에 요충지로써 중시된다. 알제리 군대가 주둔하고, 폴리사리오 기지도 있다. 공식적인 인구는 5만명 정도이지만, 동쪽과 남쪽 외곽에 펼쳐진 서사하라 난민촌의 인구까지 집계하면 10만이 넘는다고 한다.[2] 볼거리로는 시내 서부의 카스바와 남쪽 외곽 라부니 난민촌의 폴리사리오 박물관, 그리고 동북쪽으로 120km 떨어진 모로코 국경 지대의 암반 지대에 위치한 와르크지즈 (أوركزيز) 운석 충돌구 정도가 있다. 시가지 서북쪽 외곽에 틴두프 공항이 있다.
2. 역사
1880년경 틴두프
먼 옛날부터 틴두프는 남부 모로코, 중부 알제리, 서아프리카를 이어주는 사하라 횡단 무역의 교차지였다. 16세기부터 성채가 있었고, 1852년 타자칸트 (아랍화된) 베르베르 부족의 셰이크 므라베트 울드 벨라메시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시가 세워졌다. 수천 규모의 대상들이 거쳐가며 번영하던 도시에는 '노예를 제외하고도' 수천의 주민이 거주했다고 한다. 교역 상품은 금, 구리, 상아, 가죽, 향료, 직물, 노예 등이었다. 알제리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외진 곳에 위치한 덕에 틴두프는 20세기 전까지 자치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1894년 프랑스가 팀북투를 장악하고 위험천만한 사막 횡단 대신 세네갈의 다카르로 서아프리카의 물산을 집결시키자 틴두프의 입지는 위태로워졌다. 그리고 1896년, 타자칸트와 경쟁하던 또다른 아랍화된 베르베르 부족인 레귀바트가 1천 2백의 병력으로 틴두프를 공격하였다. 7일간의 전투 끝에 도시는 함락되어 약탈당하였고, 주민들은 학살되었다.
2.1. 국경 분쟁 (모래전쟁)
이후 틴두프는 쇠퇴하여 부족장이 프랑스 당국에 도움을 청할 정도여고, 1925년과 1928년의 정찰 후 1934년 5월 31일 프랑스 군이 도시를 접수할 무렵에는 수십여 주민만이 남아있었다. 이듬해 틴두프는 자체적인 코뮌이 되었고, 1949년에는 틴두프 주가 설치되었다. 다만 1956년 모로코가 독립하며 국경 분쟁이 일었고, 알제리가 독립하고 불과 4일 후인 1962년 7월 7일에는 틴두프 부족 대표단이 라바트 궁정으로 찾아와 하산 2세에게 복속하였다.[3] 모로코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며 문화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모로코에 더 가까운 틴두프에 대한 합병 의지를 드러내었다. 10월 2일에는 틴두프에 주둔하던 알제리 장교가 모로코 측에게 무기를 반납하고 모로코 국기를 카스바에 게양하기도 하였다. 또한 탄자칸트와 레귀바트 부족이 재차 충돌하여 백여명의 사상자가 나기도 하였다. 1963년 10월에는 모로코 군이 도시를 공격했으나 알제리-이집트 수비대의 강한 저항으로 격퇴되었다.
모로코 군은 재차 진격하여 틴두프 서쪽 4km에 주둔, 공격을 준비했으나 하산 2세의 반대로 중단하였다. 이어진 협상으로 1964년 2월, 말리에서 휴전이 체결되며 틴두프를 두고 벌어진 모로코와 알제리 간의 '모래 전쟁'은 막을 내렸다. 1969년 알제리 대통령 우아리 부메디엔이 모코로를 방문, 이프린에서 하산 2세와 우호 조약을 맺으며 양국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1972년에는 이프린 협정으로 양국의 국경을 확정하였고, 이듬해 알제리 정부는 이를 비준하였다. 하지만 모로코 정부는 1975년부터 벌어진 서사하라 분쟁에 치중하며 비준하지 않았고, 이에 알제리는 모로코가 서사하라를 차지하면 인접한 틴두프를 재차 주장할까 염려하여 분리주의 세력인 폴리사리오를 지원하여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을 일종의 완충 지대로 삼았다. 다만 1991년 유엔의 중재로 서사하라 분쟁이 일단락되고, 1992년 모로코 정부가 이프란 협정을 비준하며 틴두프의 긴장감은 완화되었다.
3. 갤러리
틴두프 카스바 내부
서사하라 인민해방군 박물관
와르크지즈 운석 충돌구
- [틴두프 카스바 기타 사진들]
파일:알제리 틴두프 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