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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사파 잉카 파차쿠티 Pachakutiq Inka Yupanki | |
잉카 제국 초대 황제 | |
<colbgcolor=#DAA520><colcolor=#fff,#fff> 출생 | 1418년 |
잉카 제국 쿠스코 | |
사망 | 1471년/1472년 (향년 52~54세) |
잉카 제국 쿠스코 | |
재위 기간 | 제9대 사파 잉카 |
1438년 ~ 1471년/1472년 (34년) | |
전임자 | 비라코차 잉카 |
후임자 | 투팍 잉카 유판키 |
칭호 | 세상의 재건자 |
부모 | 아버지 : 비라코차 잉카 황제 어머니 : 마마 룬투 |
종교 | 잉카 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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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카 제국의 초대 황제이자 제9대 사파 잉카.재위 기간은 1438년부터 1471년까지이며, 지방의 소왕국에 불과했던 잉카를 본격적인 대제국으로 탈바꿈시킨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때문에 파차쿠티의 치세부터를 잉카 제국의 성립으로 보며, 그 이전의 잉카는 '쿠스코 왕국'으로 따로 구분한다.
어릴 때의 이름은 '쿠시 유판키'(Cusi Yupanqui)였는데, 케추아어로 '유판키'는 '명예롭게'라는 뜻이었으며, 즉위하자 '파차쿠티'로 바꾸었다. '파차쿠티'란 이름은 '대지' 또는 '시간'을 뜻하는 'pacha'와 '뒤집는다'는 뜻인 'cuti'의 결합으로 '대지를 흔드는 자'(Earthshaker)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영문 위키피디아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결정판> 등에선 좀더 직역해서 "시공을 뒤집는 자"라는 번역을 제시하기도 했다.
2. 생애
파차쿠티가 즉위하기 이전의 잉카인들은 쿠스코 계곡과 그 일대만을 통치하는 쿠스코 왕국을 이루며 살고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대제국으로서의 잉카 제국은 아니었다. 한편 부왕이자 당시 쿠스코의 국왕이었던 비라코차 잉카는 활발한 정복 사업을 펼치면서 인근 부족들로부터 하여금 경계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했던 창카족이 수도인 쿠스코로 쳐들어오면서 쿠스코 왕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비라코차 잉카는 수도를 버리고 왕자들과 함께 도망쳤으나, 세 번째 왕자였던 파차쿠티는 끝까지 수도에 남아서 창카족에 대한 저항을 진두지휘했다. 결국 창카족은 쿠스코를 함락시키는 데 실패하고 물러갔으며, 이로 인해서 파차쿠티의 국내 위상이 하늘 끝까지 치솟게 되었다. 자연스레 수도를 버리고 튄 왕과 끝까지 수도를 지킨 왕자는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비라코차 잉카는 1438년에 강제적으로 왕위를 파차쿠티에게 양위했다.파차쿠티는 즉위한 직후부터 극도로 강력한 정복을 벌이면서 한때 왕국을 위협하던 창카족을 멸망시키는 데 성공했고, 아이마라족과 카하마르카 지역 등을 공격했으며, 티티카카 호 연안의 아이마라족, 잉카 동부의 쿤티수유 지방, 페루 중부 및 북부의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 덕분에 파차쿠티는 주변의 '쿠라카'[1]들로부터 '태양의 아들'로 불렸으며, 수많은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남기면서 변두리의 소왕국에 불과하던 쿠스코 왕국을 페루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만드는 밑바탕을 마련했다. 또한 파차쿠티는 수도인 쿠스코를 거대한 제국의 수도에 걸맞게 대부분의 건물들을 개축하고 다시 지었으며, 수많은 탑들과 궁전을 지어 위엄을 과시했다. 또한 사회 계급을 엄격하게 나누어 사회 통제와 안정을 가능케 했으며, 복속시킨 지방의 엘리트층을 쿠스코로 올라와 거주하게 하면서 점령지의 안정을 도모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자신이 정복했던 지역의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사민정책을 펼쳤으며, 세금을 낼 분봉의 숫자를 정해 족장을 임명하고 지방 정부를 세워 세금을 징수해 관리하게 하면서 지방 귀족들이 협조적이면 그들의 특권을 유지하도록 하여 협조에 대한 보상을 했다. 하지만 잉카에 비협조적인 자들에 대해서는 추종자까지 포함해 모두 죽여버리는 등 잔혹한 억압정책을 동시에 실시하기도 했다. 파차쿠티는 이렇게 지속적으로 정복지들을 늘려나가다가, 1471년에 코차밤바를 공격하던 중 병으로 붕어[2]했다. 사후 아들인 투팍 잉카 유판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3. 매체에서
3.1. 드라마
3.1.1. <에이전트 오브 쉴드>
시즌 6에서 사지(콜슨)가 각성하여 '파차쿠티'가 된다.3.2. 게임
3.2.1. 문명 시리즈
문명 3, 문명 5, 문명 6에서 잉카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이 항목과 이 항목, 이 항목 참조.3.2.2. <Europa Universalis 시리즈>
- 3편은 정치, 외교, 군사 능력치가 8, 7, 9로 높다.
- 4편은 5, 4, 6이다.[3] 4편에서는 쿠스코 왕국의 국왕 및 장군으로 쓸 수 있고, 후계자인 아들 투팍 잉카 유판키도 능력치가 높다. 운이 나빠서 초반에 죽지 않는다면 같은 시기 남•북아메리카에서 파차쿠티보다 높은 능력치를 가진 국왕과 장군은 아즈텍의 몬테수마 1세뿐이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초반에 잉카와 아즈텍은 마주칠 일이 없다.
3.2.3.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결정판>
엘도라도 캠페인을 대체하여 추가되었다. 총 5장으로 파차쿠티 휘하에 있던 장군 아푸 마이타가 여행객에게 그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캠페인의 스토리다.3.2.4. <도미네이션즈>
파타쿠티의 잉카 보석이 유물로 등장한다.4. 기타
- 잉카 건축의 걸작으로 유명한 마추픽추를 건설한 황제이기도 하다.
- 태양신 인티를 모시는 대신전인 코리칸차를 개건한 업적을 남겼다. 이전의 코리칸차가 그저그런 신전이었다면, 파차쿠티 이후의 코리칸차는 제국 전역에서 건너온 황금으로 만들어진 보물들로 가득찬 대신전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 쿠스코 중심의 아르마스 광장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 파차쿠티의 동상은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 페루의 Aguas Calientes에 세워져 있다. 이곳 근처의 잉카 유적지로 마추픽추가 있다.